공정하고 전문적인 심의위원회가 되려면
학교폭력 사안은 어떻게 처리될까?
학교는 학교폭력을 인지하면 즉시 사안을 접수하고 보호자에게 통보한다. 학교에는 학교폭력 업무를 담당하는 ‘학교폭력 전담기구’라는 것이 있는데, 여기서 학교폭력 사안처리가 진행된다.
피해 관련학생이 ‘학교장 자체해결’을 원하고 요건도 충족하면, 교육청으로 가지 않고 학교 내에서 절차를 끝낼 수 있다.
피해 관련학생이 심의를 원하거나 자체해결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 경우, 교육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심의위원회, 일명 ‘학폭위’)에서 사안을 심의한다. 심의위원회에서 학교폭력으로 인정되면, 가해학생은 (흔히 ‘처벌’이라고 표현하는) 선도조치를 받고, 필요한 경우 피해학생도 보호조치를 받는다.
그렇다면 심의위원회는 어떻게 구성될까?
학교폭력예방법은 교육지원청에 심의위원회를 두어 관할 학교 내의 학교폭력 사안을 심의하도록 하고 있다. 심의위원회는 관할지역의 규모 등에 따라 10명 이상 50명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되는데, 위원들이 심의를 통해 학폭 여부와 학생들에게 내릴 조치 내용을 결정한다. 학폭 심의 결과는 학생들 간의 관계는 물론 장래에도 영향이 크기 때문에, 심의위원들은 ‘공정’할 뿐 아니라 ‘전문적인' 심의를 할 것이 요구된다. 학교폭력 예방법에서 심의위원의 자격을 청소년 보호 업무 담당자, 학교폭력 또는 생활지도 업무 경력 2년 이상의 교원, 교육전문직원, 학부모, 판사 검사 변호사 등의 법조인, 해당 관할 소속 경찰공무원, 관련 단체 소속 청소년보호활동 경력 2년 이상인 자 등 ‘학교폭력 예방 및 청소년보호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는 이유다.
그런데 법에서 정한 경험과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심의에 대한 열정(?)’이다.
여기 두 명의 심의위원이 있다.
한 명은 청소년 보호 분야에서 20년 이상 활동한 소위 ‘전문가’다. 교육청에서는 이 분이 전문성을 발휘해서 많은 활약을 해줄 거라며 기대가 컸다.
그런데 실제로 이 분을 위원으로 위촉해 보니 어려운 점이 많았다. 우선은 너무 바빴다. 각종 단체활동, 연구활동, 강의활동 등 본업에 바쁘다 보니 심의위원회 참석할 시간 자체를 내기 어려웠다.
어렵게 시간을 내어 참석해도 다른 일정 때문에 시간에 쫓기다 보니 심의자료가 많거나 심의가 길어지면 심의에 제대로 집중하기 어려워하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오히려 관련 분야 경력이 적은 다른 위원들에 비해 사안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다른 한 명은 학부모 위원이다. 관련 경력은 없지만,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심의에 참여한다. 연락받은 시간보다 일찍 와서 자료를 꼼꼼히 검토하고, 필요한 질문을 빠짐없이 한다. 심의위원 역량강화 연수에도 빠짐없이 참여해서 관련 법령과 심의 방법, 불복 사례와 판례를 공부하고, 틈날 때마다 학폭 관련 자료나 기사를 찾아 읽어본다. 학생인 자녀들에게 요즘 관심사는 무엇인지, 어떤 점이 어려운지 물으며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한다. 이러한 노력들이 심의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공정하고 전문적인’ 심의로 이어진다.
한 번은 아침 일찍부터 심의가 있었다. 담당 간사님이 심의 준비를 하려고 평소보다 일찍 출근했는데, 심의실 앞에 위원 한 분이 서 있다가 문 좀 열어달라며 다가온다. 황급히 문을 열어주며 왜 이렇게 일찍 오셨냐고 하니, 위원님은 멋쩍은 얼굴로 대답했다.
“오전부터 하는 건 자료가 많잖아요. 전 읽는 게 좀 느려서... 시간이 부족할까 봐 일찍 왔어요.”
간사님이 문을 열어주자, 위원님은 기다린 시간이 아깝다는 듯 후다닥 자리에 앉아 줄을 쳐 가며 열심히 자료를 읽기 시작했다. 잠시 후 다른 위원들도 하나둘씩 자리를 채우고 자료 검토를 시작한다. 대부분 안내받은 시간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했다. ‘공부를 이렇게 열심히 했으면 서울대 갔겠다’는 농담조의 이야기가 어울리는 풍경이다.
학교폭력은 무겁다. 관련 학생과 보호자들에게는 더 그렇다. 그 무게에 공감하는 심의위원들은 더욱 진지하게 심의에 임한다. 본인이 내린 결정이 어떤 영향을 줄지 고민하고, 아침부터 밤까지 회의를 하고도 집에 돌아가 그 결정이 최선이었는지 돌아보기도 한다. 어떤 위원은 본인이 감당하기에는 그 무게가 너무 버겁다며 그만두기도 했다. 어떤 경우든 아이들을 생각하는 건 마찬가지다. 이런 열정과 노력, 고민들이 모여 더 좋은 심의를 만든다. 교육청 심의위원회가 출범한 지 수년이 흐른 지금, 여전히 더 나은 심의를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