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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과씨 May 02. 2024

변호사님을 오해한 적도 있었어

학교폭력 변호사, 교육청의 '트러블 메이커'가 되다

‘조직 내 변호사는 미움받는다.’

변호사들이 농담처럼 하는 말 중 하나다.


법률사무소를 찾아오는 의뢰인들은 대부분 소송 등 이미 발생한 문제를 들고 와서 해결해 줄 것을 요청한다. 그래서 의뢰인들은 변호사를 '문제를 해결해 주는 사람'으로 인식한다.


회사나 기관에서의 인식은 조금 다르다. 변호사가 이미 발생한 문제를 다루는 경우도 있지만, 업무나 절차 진행에 앞서 문제가 없는지 사전적으로 검토하는 '리스크 관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갈등이 발생한다.


변호사는 실무자에게 '법령이나 절차를 철저히 지켜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문제가 생긴다'라고 말한다. 실무자 입장에서는 답답하다. 빠르고 효율적인 일처리를 원하는 실무자에게 변호사는 일을 도와주기는커녕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가정해서 겁을 주고, 규정과 절차를 들이대며 업무 진행을 방해하는 존재로 인식된다.


교육청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법무법인에서 소송업무를 했던 나는 법령과 절차를 지키지 않았을 때 어렵고 귀찮은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이러면 안 된다, 저러면 안 된다, 그렇게 하면 법령위반이고 절차에 어긋난다 등등,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실무를 하는 분들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교육청 심의위원회(학폭위)가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교육청 관계자들이 심의에 참관할 수 있느냐를 두고 의견이 갈렸다. 실무를 맡으신 분들은 심의위원들이 어느 정도 경험이 쌓여 심의 진행이 원활해질 때까지 심의를 참관하면서 절차 진행을 돕고 싶다고 했다. 나는 반대했다. 학폭법에 따라 심의는 비공개이고, 위원이나 간사 이외의 사람이 참석하여 심의 내용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미 법에 따라 절차 진행을 위한 간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절차를 돕는다는 것은 근거가 되기 어려웠다.


나는 이것이 공정성을 해칠 수 있는 중요한 문제라고 보았지만, 실무자 분들의 생각은 달랐다. 내용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절차 진행을 돕는 것이 왜 문제가 될 수 있냐는 것이었다. 급기야 나에게 ‘왜 맨날 안된다고만 하고 일을 어렵게 만드냐’며 화를 내시는 분까지 등장(?)했다.


이 문제는 여러 번의 의견 대립과 시행착오 끝에, 심의위원회에서 법령이나 절차 관련 설명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학폭 담당 장학사나 변호사를 참고인으로 요청하여 자문을 듣고 퇴장시키는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결론지었다.


교육청에서 일한 지 반년 정도 지나 팀 회식을 하던 날, 한 장학사님이 말했다.


“한때는 변호사님을 오해한 적도 있었어. 괜한 고집을 부리는 것 같았거든. 지금은 고맙게 생각해. 여기서 10년 일해. 집도 가깝고 좋잖아.”


그 뒤로 장학사님은 인사이동으로 떠나시기 전까지 나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주셨다.


갈등은 어렵다. 관계의 깨짐도, 마음의 상처도 생긴다. 하지만 회복의 길은 있다. 방법이 다를 뿐 심의위원회가 잘 운영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같다는 것. 그 마음을 이해하자 회복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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