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하는 엄마, 놀고 싶은 아이
초등학교 2학년 남학생 B가 초등학교 1학년 남학생 A를 때렸다.
같은 아파트에 살았고, 종종 놀이터에서 만나 같이 놀던 사이였다. 그 날은 B가 A에게 태권도 학원에서 새로 배운 기술을 가르쳐주겠다며 손발을 휘두르다가 A의 얼굴에 맞았다고 했다.
A가 코피를 흘리며 울자, B는 A는 수돗가로 데려가 얼굴을 씻어주고 아파트 동호수를 물어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B의 손을 잡고 집 앞에 도착한 A는 초인종 소리를 듣고 나온 엄마를 보자 울음을 터뜨렸다.
“어머, 왜 울어? 넌 누구니?”
“저 앞동 사는데, 놀이터에서 같이 놀다가 코피 났어요.”
B는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A의 어머니가 일단 집에 가라고 하자, B는 죄송하다고 꾸벅 인사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A의 어머니는 B를 학교폭력으로 신고했다. 알지도 못하는 애가 한참 어린 애를 폭행해서 코피까지 터졌다며, 학폭위에서 조치를 받게 하겠다고 했다.
교육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에서도 어머니는 강경했다. 엄마들 사이에서 B는 동네 깡패 같은 애로 소문났다며, 전학을 보내고 다른 아파트로 이사도 시켜야 한다고 했다.
“A는 어때? 요즘 잘 지내니?”
“네, 잘 지내요.”
심의위원의 물음에 A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잘 못지내요. 집에서 맨날 뽀○로 담요를 뒤집어쓰고 있어요. 애가 맞아서 불안해서 얼굴도 내보이기 싫은 거예요. 속상해 죽겠어요.”
“그거 뽀○로놀이 하는 건데...” A는 흥분한 어머니의 말에 주눅든 듯 조용히 말했다.
“A야, 요즘 힘든 거 있어? 상담 선생님이랑 힘든 거 얘기할 수 있게 도와줄까?”
“아뇨, 선생님이 안 도와줘도 돼요.”
“선생님은 괜찮아? 그럼 뭘 해주면 좋겠어?”
심의위원의 물음에 A는 옆에 앉아있는 엄마가 신경쓰이는 듯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형아가 태권도 가르쳐줘서 재밌었어요. 형아가 또 놀아줬으면 좋겠어요.”
“B형이랑 놀고 싶어?”
“네, 요새 놀이터 가도 형아가 없어서 심심해요.”
A 어머니는 화들짝 놀라 말을 막았다.
“애가 뭘 몰라서 그래요, 걔 완전 일진이래요. 다시는 못 놀게 떨어뜨려 주세요. 또 맞고 올지도 몰라요.”
이어서 들어온 B와 부모님은 시종일관 반성하는 모습이었다.
“저도 애엄마도 일하느라 신경을 많이 못썼어요. 애가 졸라서 태권도를 보낸 지 얼마 안 됐는데, 좀 배웠다고 동생한테 자랑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실수로라도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는 건 나쁜 일이라고 혼을 많이 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학생과 부모님들이 모두 돌아간 후, 심의위원들은 고민에 빠졌다.
학교폭력은 가해학생이 피해학생에게 신체적, 정신적, 재산적 피해를 입히려는 의도가 있어야 한다. 같이 놀거나 장난치다가 다치는 경우는 학교폭력이 아니라 안전사고에 해당한다. 심의위원회는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이 경계를 잘 구분해 주어야 한다.
학교폭력 아님 결정 후, 한 심의위원이 걱정을 내비쳤다.
“혹시 어머니 말이 사실이면 어쩌죠? 아이가 소문대로 폭력성이 심하다거나...”
“A가 형이랑 같이 놀고 싶다고 했어요. 아이가 겪은 일은 아이가 가장 정확해요. 아이들과 부모님 다 직접 만나봤고 선생님의 의견도 둘 다 착한 아이라고 하셨으니, 걱정 안해도 될 거예요.”
심의위원회의 결정이 통보된 후 A어머니는 불만을 이야기했지만, 곧 생각을 바꾸었다.
“아이가 형아 만나러 가자고 어찌나 조르는지... 제가 같이 가서 노는 거 지켜보고 저쪽 엄마랑도 얘기해 보고 하니까 걱정한 만큼은 아니긴 했어요. 그래도 엄마들이 걱정하는 이야기가 있었으니 좀 더 지켜보려고요.”
선생님을 통해 들은 A와 어머니의 후일담은 이러했다.
아이들 관계에 정답은 없다. A의 바람대로 B와 계속 잘 놀수도, 싸우게 될 수도 있다. B가 또다시 태권도에서 배운 고급 신기술을 보여주다가 A를 하고, 그래서 또 학폭위에 오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말 그대로 기우, 쓸데없는 걱정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A는 여전히 형아인 B를 잘 따르고, B는 형제가 없는 A와 친형처럼 잘 놀아준다. 어른들의 역할은 이 아이들이 앞으로도 잘 지낼 수 있도록 지켜보면서, 어려움이 생겼을 때 바로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