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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과씨 May 06. 2024

[학폭이야기]돈 안받기로했는데 그러면 제가 뭐가됩니까?

아버지가 학폭위 취소를 요구한 이유

중3 남학생 A, B가 싸웠다. 


친한 사이였고, 서로 장난치고 투닥거릴 때도 있었지만 잘 지내던 아이들이었다.


그날은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했고,  B가 홧김에 A의 어깨를 밀쳐 넘어뜨렸다. A는 넘어지면서 바닥에 손을 짚어 상처가 나고 다리를 부딪혀 멍이 들었다.


A의 다친 모습을 본 아버지는 속상했다. 키우면서 한 번도 내손으로 때려본 적 없는 아이인데, 누군가에게 맞아서 다쳤다는 것에 화가 났다. A가 친한 친구랑 얘기하다가 잠깐 다툰 거고 많이 안 아프니까 괜찮다고 말했지만, A 아버지는 바로 A를 병원에 데려가 전치 2주 상해진단서를 발급받아 학교에 제출하고 B를 학교폭력으로 신고했다. 학교는 A 아버지의 신고 즉시 사안을 접수하고 학교폭력 사안처리 절차를 진행했다.


그런데 며칠 후 A의 아버지가 학교로 전화했다. “선생님, 상대 학생 아버지가 학생 데리고 찾아와서 울면서 사과하시길래 같이 소주 한 잔 하고 화해했습니다. 우리 아들도 B랑 잘 지내고 있으니 이제 괜찮습니다. 신고 취소해 주시죠.”라고.


하지만 두 학생과 아버지는 결국 교육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까지 와야 했다. 2주 상해진단서가 제출된 경우 학교폭력예방법상 경미한 사안이 아니라고 보아 심의위원회를 반드시 개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제출된 진단서를 회수해도 소용없다. 학교폭력예방법은 2주 이상의 상해진단서를 '발급'한 경우 심의위원회를 개최하도록 되어 있는데, 진단서를 '제출'하면 이미 '발급'이 확인되어 경미한 사안이 아닌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괜찮다는데 왜 이렇게까지 해서 애들을 벌줘야 합니까? 애들도 부모도 다 화해했어요.”


아버지는 안타까워했지만, 법은 법이다. 학교에 법이 들어온 이상,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아버지의 뜻에 따르려면 '2주 이상 진단서가 제출되었더라도 피해자가 원하지 않을 경우 심의위원회를 개최하지 않을 수 있다'는 내용으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


심의실에서 B학생과 아버지는 다시 한번 사과했고, 치료비도 다 보상하겠다고 했다.


A학생과 아버지는 이제 다 괜찮다고 했다. 같이 놀다 보면 싸울 수도 있다고, 사과받고 마음이 풀려 더 친해졌다고 했다.


“애가 어려서 다친 것도 금방 나았어요. 저쪽 아버지가 치료비 배상해 준다고 했는데 병원비도 얼마 안 나와서 됐다고 했습니다.”


“아버님, 다친 부분에 대해서는 학교안전공제회에서 병원비 지급받으실 수 있게 조치해 드릴 수 있어요. 그러면 상대 학생 측에 구상이 들어가서 편하실 거예요.”


심의위원의 말에 아버지는 질색을 했다. “내가 이미 안 받겠다고 했어요. 그거 얼마나 된다고 구상이 가게 하면, 내가 뭐가 됩니까? 애들 사이도 안 좋아져요. 절대 해주지 마세요.”

몇 번을 확인해도 아버지는 완강했다.


당사자들이 돌아간 후, 위원들은 고민에 빠졌다.


“어떡하죠? 그래도 만약을 위해서 치료조치 해야 할까요?”

“학생들도 잘 지내고 있고 아버님들도 좋은 뜻으로 합의하신 건데 존중합시다.”

“그래요, 큰돈도 아닌데 관계만 나빠질 것 같아요.”

“저희 조치가 없더라도 필요하면 민사로 해결할 수 있으니 괜찮을 거예요.”


심의위원회는 때린 학생에게 서면사과 조치를 의결했다. 피해학생 보호조치(제16조 제1항 제3호 치료 및 치료를 위한 요양)는 내리지 않았다. 아버님의 뜻을 존중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친구가 된 A와 B. 복잡한 법과 절차 안에서도 서로에 대한 진심은 길을 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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