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가 학기 초부터 3개월간 지속적으로 A를 괴롭혔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뒤에서 몰래 다가와 어깨를 치고 도망가거나 별명을 지어 부르는 정도였고, A도 장난이라고 생각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장난’의 정도는 날로 심해졌고, 최근에는 반 친구들이 다 있는 곳에서 A에게 이리 와보라며 명령조로 말하고 A가 거부하면 버릇이 없다며 머리를 때리거나 발로 엉덩이를 차는 등의 모욕적인 말과 행동을 하기에 이르렀다고 했다.
신고를 당한 B는 처음에는 ‘다 장난이었다, A랑 친하다’며 억울하다고 했다.
하지만 A가 그동안 많이 힘들어했다는 이야기를 듣자, ‘사실은 A가 나보다 약한 것 같아서 괴롭히고 싶었다’며 잘못을 인정했다.
심의위원회에서 A의 아버지는 슬프기도 하고 화도 난다고 했다. 아들인 A가 오랜 기간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엄마 아빠가 걱정할까 봐 말을 못 했다고 이야기했다며, 그동안 힘들었을 A를 생각해서 B에게 엄벌을 내려달라고 했다.
심의위원들도 어린아이인 A가 말없이 겪었을 고통에 공감했다. 자기보다 약하다는 이유로 친구를 괴롭힌, 전형적인 학교폭력 사안이었다.
그런데 다음 순서로 들어온 B의 어머니가 조금 다른 방향의 이야기를 했다. 평소 B의 아버지가 엄한 편이어서 B와 자주 충돌하던 와중에 B에게 폭언과 폭력을 해왔다는 것이었다.
이 사실을 몰랐던 B의 어머니는 최근 B가 말수가 적어지고 충동적인 언행을 해서 ‘사춘기가 빨리 왔나 보다’라고만 생각했는데, 학폭으로 신고되고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더니 B가 ‘아빠에게 들은 욕과 맞은 것을 친구에게 그대로 했다, 아빠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너무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학교에서 약한 친구에게 화풀이를 했다’고 털어놓았다는 것이었다.
B의 어머니는 그날로 남편인B의 아버지와 이야기하고 가족상담을 받으며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고 했다.
“아들이 순하고 착하기만 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빠를 닮아 가고 있었더라고요.
상담에서 애아빠가 아들한테 미안하다고 하고 아들이랑 같이 펑펑 울었어요. 우리 가족 문제로 다른 가족까지 상처 주게 된 것 같아 죄송합니다. 이제 알게 되었으니 이런 일 없도록 잘 키우겠습니다.”
어머니는 떨리지만 희망과 의지가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는 격언은 오래됐지만 어느 시대에나 울림을 준다. 아이들은 변하고, 부모는 그 변화의 기준이 된다. 아이가 스스로를 아름답게 여길 수 있도록 아름다운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주는 것,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