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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과씨 May 20. 2024

[학폭제도] 이런 게 사과라면 받을 수 없습니다

서면사과 선도조치의 명과 암

초3 남학생 A와 B가 싸웠다. 


처음에는 서로 별명을 부르며 놀다가 기분이 상해서 욕설까지 했다. A가 B를 밀쳐 엉덩방아를 찧게 했고, B도 A에게 똑같이 했다. 누가 더 잘한 것도 잘못한 것도 없는, 전형적인 쌍방 사안이었다.


친한 사이였지만, 한 번 벌어진 싸움에서 주고받은 상처와 감정의 골은 깊었다. A와 B는 화해하지 못했고, 모두 상대방의 처벌을 원했다. 결국 A와 B는 교육지원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까지 오게 되었다. 


심의위원회는 A와 B가 평소 서로 장난치며 노는 일이 많았고, 사건 당일도 서로 놀리며 장난치다가 순간적으로 감정이 상해서 싸우게 되었으며, 다친 곳이 없었던 사정을 고려하여 두 학생에게 학교폭력예방법 제17조 제1항 가해학생 선도조치 중 제1호 ‘서면사과’ 조치를 내렸다.


조치결정 통보서가 발송되고 얼마 후, A의 어머니가 교육청에 전화했다.


“저쪽 학생이 사과편지라고 써서 줬는데 변명만 줄줄 써놨어요. 이게 무슨 사과입니까? 다시 쓰라고 해주세요!”


잠시 후, B의 아버지도 전화했다.


“우리 B는 A한테 사과편지 써서 줬는데 A는 받기만 하고 B한테 안 써줬어요. 처벌받은 걸 이행 안 했으니 불이익을 줘야 되는 것 아닙니까?”

교육청은 부모님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을까?


결론은 ‘아니요’다.


사과는 양심의 영역이다. 사과 이행도, 내용도 강제할 수 없다. 교육장이 A, B에게 서면사과 조치를 내렸지만, 그 이행 여부와 내용은 전적으로 당사자에게 달린 것이다. 수년 전 법원에서 공개사과 강제가 ‘양심의 자유’에 반하여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린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서면사과’ 조치는 양날의 검이다. 피해학생은 언제나 진심 어린 사과를 원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해내는 가해학생은 드물다. 가해학생이 잘못을 뉘우치고 진심을 전하기 위해 제법 괜찮은 사과문을 썼더라도, 학교폭력 피해를 당한 학생의 아픔을 완전히 해소하고 어루만지기에는 역부족인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 학교나 교육청에서 사과문을 이러이러하게 쓰라고 지도하기도 어렵다. 사과는 앞서 말한 ‘양심의 자유’라는 기본권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피해학생 입장에서는 사과문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해학생에게 재작성을 요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과문 받는 것을 아예 거부하기도 한다. 사과문을 보면 피해사실이 떠올라 괴롭고, 가해학생과 소통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이러한 이유로 학교폭력법에서 서면사과 조치를 삭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헌법재판소에 위헌 여부에 관한 판단을 구한 사례도 있었다(2019헌바93). 


진정한 사과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마음을 전달하여 피해자를 위로하고 함께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면에서 서면사과 조치는 학교폭력예방법의 목적인 ‘피해학생의 보호와 가해학생의 선도’에 가장 부합한다. 하지만 실제로 제대로 된 기능을 하고 있는지, 서투른 내용과 방식으로 인해 오히려 당사자들의 감정의 골을 더 깊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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