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선도 - 단전호흡수련 4 (단전호흡으로부터의 해방)
나를 찾아가는 과정
다음 해 사법시험 2차에 또 떨어졌다.
이제는 영원한 것을 찾고 싶었다.
고시는 유한하고 소모적인 것,
사람으로 태어나 이것밖에 못 한다는 것이 억울하였다.
이제는 뭔가 영원한 것을 하고 싶었다.
그때는 서른살을 갓 넘기다보니
나도 이제 청춘이 다 갔구나 하는 초조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내 나이는 20대 새파란 나이인 것 같은데
아무것도 성취한 것없이 죽으라고 공부만 하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30대로 들어선다는 게 너무 비극이었다.
마음이 심난하고 착찹하였다.
그러다보니 한가지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아, 영원한 것을 하고 싶다.'
떨어지면 헛된 노력으로 끝나는 고시같은 유한한 것 말고
인생 전체를 놓고볼 때 영원한 뭔가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차라리 내가 법대를 안가고
한의학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들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래 단전호흡을 하자.
이는 사람이 살고 있는한 유익한 것이 아닌가.
'내가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마음속에 품고는 있었지만
내가 처한 현실은 도피나 일탈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구속이었다.
구속감을 느낄때마다 일탈을 꿈꾸었으나
그야말로 마음속에 품고 있는 공상이었다.
일탈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다가 그 스님을 다시 만나면서 고민을 해봤다.
그가 산에 들어가서 열심히 단전호흡을 몇 년동안 하자고
제의를 한적이 있었다.
그러나 내 현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실현가능성없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리고 다음에 다시 한번 내려오게 된 것이다.
마음이 답답할때는 어떤 탈출구를 찾게 마련인데
그당시 나의 탈출구는 기림사에 내려오는 것이었다.
그만큼 다른쪽으로 아무런 탈출구를 만들어놓지 못했던 것이다.
할수 있는 운동도 없었고,
바람쐬러 갈수 있는 곳도 없었고,
같이 고민을 나눌수 있는 편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니 조그만한 빛이 들어오는 쪽을 향해 간 곳이 기림사였다.
세 번째 갔을때는 그 스님은 출타중이었다.
마침 그 스님은 없고 묵언기도 하는 스님만 있었다.
절이라는 게 반겨주는 사람이 있어야 편한 곳이지
반겨주는 사람이 없으면 썰렁하기 그지 없는 곳이다.
그래서 도착한 그날로 다시 올라가고 싶었다.
내가 관광하러 온 것이 아닌 이상 별미련 없이 그냥 올라가고 싶었다.
서울에서 경주까지 올려면 7시간 이상이 걸렸다.
또 거기서 감포가는 버스를 타고 오다가
기림사에서 내려 택시또는 도보로 걸어들어와야 했다.
그런데 그 묵언기도스님(당시 벙어리 스님으로 착각)이 헛걸음을 한 채
그냥 나가는 나를 안쓰럽게 보았는지
자기도 밖에 나갈 일이 있다면서 따라나섰다.
종무소까지 같이 걸어나오다가
종무소를 지나면서 잠깐 기다리라고 손짓을 하더니
안에 들어가서 하얀봉투를 가지고 나온다.
그리고 나에게 줬다.
여비를 하라고 돈을 준 것이었다.
5만원인 걸로 기억된다.
그때만 해도 한달 하숙비가 11만원인 때였다.
스님에게는 5만원이 큰 돈이었다.
마음은 고맙지만 받을 수가 없어 사양했다.
그러나 그는 끝끝내 말을 하지 않고 받으라는 손짖만 하였다.
말을 못하는 벙어리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쓰는 게 너무 고와보였다.
마음한구석으로 너무 고마웠다.
그 돈의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나는 지금까지 남에게 베풀어 본적이 없는데
이런 사람들은 이렇게 베풀면서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나에게 이렇게 따뜻하게 대해주니 너무 고마웠다.
세상살이에서 별볼일 없는 사람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그는 마침 절에 들어왔던 택시를 돌려세워
나를 태우고 버스타는데까지 같이 갔었다.
나는 그에게 나의 고민을 물어보았다.
나는 단전호흡에 심취해 있었기 때문에
단전호흡 수련을 집중적으로 해볼까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시는 해봤자 유한한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떨어진 사람만이 맛볼수 있는 느낌일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영원한 것을 추구하자는 식의 생각이
뇌리의 어딘가에 저절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그는 나와 반대방향으로 볼일이 있어 나가는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댕기동자 스님이 단전호흡을 하자고 하던데
나도 영원한 것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가 손가락으로 산을 가리키면서
그다음에는 단전쪽에 두손을 대고 호흡하는 흉내를 내더니
오른 손으로 X 자를 그리는 동작을 하였다.
그런데 그순간 이상하게도 내가 가지고 있던 묵은 고민이
한순간에 뻥뚫린 기분이었다.
그때는 고시가 왜 안될까 하는 고민보다는
내가 고시를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회의를 느끼고 있었고
그때는 지금처럼 사회가 다양한 사회가 아닌
군사정권시절이다보니 별로 대안도 없던 터에
영원한 것은 해야겠고
그게 단전호흡이라고 생각하던 때라서
실상 그때의 고민은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큰 갈림길에 서있었기 때문에
나의 고민은 옆에 사람이 보기에는 하찮고 우스운 것일지는 몰라도
나 자신은 심각한 고민이었다.
그런데 그런 고민이 그 스님의 딱 세동작의 표현으로
모든 고민이 한순간에 녹아 없어져버렸다.
그리고 그 뒤로는 단전호흡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어졌다.
대체로 단전호흡을 하는 사람들은
그 길로 계속 빠져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사고의 태반을 단전호흡이나
신비로운 경험쪽으로 굳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다보니 입만 열었다하면 단전호흡하면서
신비로운 경험을 했다는 말뿐이다.
그와 헤어지는 장면이 아직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기억에 남아있다.
경주가는 버스에 먼저 올라 차창밖으로 그를 내다보았다.
그는 편상에 허리를 꿋꿋하게 편 자세로 앉아 있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수행승의 고정관념에 딱 부합하였다.
나중에서야 그 스님이 3년 묵언정진기도를 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어쩐지 뭔가 달라보이더라”
그 스님 법명은 혜정이었다.
속가 나이는 나와 같다.
이미 출가한 지 26년이 넘었다.
그동안 선방 수좌로서 수행을 열심히 하였다.
최근에는 3년 무문관 생활을 마치고
강원도 선방에서 하안거를 나고 있다.
그와의 만남은 또 다른 계기를 만드는 신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