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첫 인연

조세전문변호사 고성춘

by lawyergo

곡성에 가면 옥과면이라는 곳이 있다. 우리나라 전체 군중에서 제일 가난한 곳이 곡성군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곳은 개발이 안된 곳이라서 가는 곳마다 조용하고 번잡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전체가 가든공화국이다보니 드믄드믄 음식점만 있을 뿐이다. 옥과까지는 버스로 갈 수 있지만 거기서부터는 택시를 타야 용주사라른 절에 들어올 수 있었다. 바로 그곳에서 처음으로 불교를 접했다. 93년 정도 된 것 같다. 군대제대후에도 여러번의 사법시험을 봤지만 계속 떨어졌다. 그러던 참에 친구가 절에 있다는 연락을 받고 머리나 식힐겸 찿아간 것이 그곳에서 머무르게 된 계기가 되엇다. 왠지 그곳이 좋아보였기 때문이었다. 그곳은 집에서 약 50분 정도면 가는 거리에 있었다. 절은 조그만햇지만 나트막한 산에서 바위가 있는 기가 센 곳에 절을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절벽같은 바위위에 요사채를 지어놓은 것이 운치가 있었다. 그 위에서 보면 절입구로 들어오는 길에 있는 저수지에서 철새들이 노는 모습이 한눈에 다보였다. 더군다나 지금과 같은 10월 가을이 익어가는 계절이었으니 풍광이 더 좋아보였다.
그때만 해도 절에 대해서 일자무식이었다. 그리고 법당에 들어가서 예불하고 그러는 것은 아주머니들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관심이 없었다. 단지 관심이 있다면 공부와 땅파는 것이었다. 나이는 30이 넘어서 아무 것도 이룬 것 없이 고시라는 막연한 것에 매달려 정력을 소모하고 있는 나의 젊음이 너무나 답답하여 날마다 공부하는 틈틈이 곡괭이로 땅을 파면서 스트레스를 해소 하였다. 세달정도 머무르면서 파놓은 깊이가 상당하였다. 아마 1년치의 쓰레기를 버려도 충분하였을 것이다.
잡기를 별로 즐기지 않는 성격이라 잡담을 할 상대가 없는 절이 공부하기에 아주 좋았다. 시간되면 밥먹고,공부하고, 어둠이 깔리면 잠을 자고,방에 tv도 없다보니 공부외에는 시간보낼 것이 없었다. 공부만큼은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면서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달정도 지나다가 가랑비에 옷젓는다는 속담처럼 저녁공양을 한 후 산책을 하고 오면 꼭 그시간이 저녁예불시간이었다. 법당밖으로 들려나오는 염불소리가 가슴을 쏴하게 적셔주곤 하였다. 그 절에는 비구니스님 3분이 있었다. 한분은 주지스님이었고 다른 한분은 나와 같은 용띠인 그분의 상좌스님이었고 다른 한분은 기도하러 온 스님이었다. 기도스님은 경상도 분이었는데 지장기도를 하러 전국의 기도처만 돌아다니고 있다고 하였다. 기도를 많이 한 분이라서 그런지 여자여도 대장부처럼 기개가 있었다. 몸집도 그랬다.
어느날은 나도 한번 법당을 들어가보고 싶었다. 아무것도 모른채 무작정 법당문을 열고 들어간 것이었다. 법당문은 집에있는 방문과는 달리 아주 크고 무겁다. 문고리도 큰 것으로 달아놓는다. 그 문고리를 잡고 무거운 문을 열기위해 힘을 주고 문을 연다는 것 자체가 내 마음이 열어졌다는 증거였다. 종교에 대한 무관심하고 냉랭한 가슴이 따뜻하게 열렸다고 볼 수 있었다. 스님들이 하는대로 따라하였다. 일어서면 같이 일어나고 절하면 같이 절하고 염불하면 입만 뻥끗뻥긋하였다. 무엇을 말하는지는 전혀 몰랐지만 듣기는 참 좋았다.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주었다.
무여스님이 나의 이런 모습을 며칠 지켜보다가 따로 시간을 내서 예불문을 가져와 직접 목탁을 치면서 가르쳐주었다. 예불문부터 반야심경, 천수경까지 째를 맞춰가면서 며칠을 따라하였다. 그제서야 스님들의 염불을 듬성듬성 따라 할 수 있었다. 그때만 해도 내가 법당을 들어가게 된 이유는 딴게 아니었다. 마음이 차분해지기 때문에 그게 좋아서 들어갔을 뿐이었다. 그러나 나의 주된 관심은 공부였다. 예불시간이 30분이 넘어서면 공부시간이 뺒긴다는 생각이 들엇다. 그러면 얼른 법당문을 열고나와 방으로 올라갔다.
아침저녁으로 예불을 드리다보니 머리가 무척 시원하였다. 그리고 체력이 좋다보니 법당에서 요사채까지 놓여있는 계단을 뛰어다녔다. 그래서 스님이 지어준 별명이 다람쥐였다. 한번 방에 들어가면 밥먹을 때외에는 거의 나오는 일이 없었다. 어느날 갑자기 머리로 스쳐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저 방문만 나가지만 않는다면 공부시간을 뺏길 아무런 이유가 없을 것이다.”
책상이 있었지만 가부좌를 튼채 조그만한 책상에서 공부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반가부좌를 틀고 몇시간이든 한번 앉으면 밥먹으라는 목탁소리에 할 수없이 일어나야 했다. 저녁때는 정확히 10시에 1분 1초도 안틀리고 잠이 몰려오면 그대로 뒤로 누으면 그다음날 새벽 4시였다.
무여스님이 관세음보문품경을 날마다 목탁을 직접 치면서 나의 합격을 위해서 읽어주었다. 처음 며칠은 그분의 성의가 고마워 매일 아침9시쯤 약속시간에 맞춰 법당으로 내려갔었다. 그러나 그게 한번 다 읽는데 30분이 더 넘게 걸렸다. 그러니 한두번이 아니라 날마다 한다고 한다면 아침 공부시간을 무려 1시간이나 빼먹는 거였다.
“공부가 주이지 염불이 주이지 아니지 않는가. 아무리 성의라지만 공부에 방해가 되면 안해야 한다”라고 마음먹고 법당으로 내려가지 않는 날이면 어김없이 “고군”하고 법당에서 외치는 스님의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날은 그 소리가 저승사자의 외침으로까지 들렸다.
솔직히 그 보문품경 내용을 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절벽을 떨어져도
풍랑을 만나도
사형을 집행당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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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보살이 지켜준다는 내용들이다. 불보살이 여러모습으로 나타나서 구해준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될 수밖에 없다. 느껴보지 않으면.
어느날은 가을햇살이 너무 좋아 경내에 있는 큰 바위위로 올라가 책을 보았다. 막상 올라가니 가을 햇볕에 책을 본다는 것은 눈이 부셔서 피곤한 일이엇다. 그래 책을 놓고 저 멀리 절을 관광차오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영문인가. 바로 그 사람들이 불보살의 화현으로 느껴지는 것이엇다.
“뭔가 나에게 암시를 주기 위해 오는 불보살의 화현이구나”
그 느낌을 받은 후부터 이전의 사람이 다들 달리 보였다. 단지 지금 이순간 만나서 지내는 사람정도가 아니라 나를 위해 뭔가를 가르쳐주려고 하는 불보살들로 모두 보였다. 그러니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수승한 기도생활을 하면서 공부를 열심히 하였다. 마음에 틈이 없으니 저절로 놔두어도 공부가 순항을 하였다. 특히 새벽예불을 보고 난 후 하는 새벽공부는 책을 읽은 내용이 사진처럼 그즉시 떠오를 정도로 기억이 선명하게 되엇다.
어느날이었다.
주지스님이 어디론가 행차를 하시는 모양이었다. 절입구로 내려가시다가 밖에서 바라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고군, 같이 갈래” 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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