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가는 과정] 불교와의 인연 옥과 용주사

조세전문변호사 고성춘

by lawyergo

[나를 찾아가는 과정] 불교와의 인연 옥과 용주사

오대산 중대 사자암 새벽 3시다. 문밖으로 사람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기도하러 올라가는 사람들 발자국 소리이다. 방에 있는 사람들도 한두명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새벽바람이 차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랜턴을 들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저마다 다 사연과 소원을 가지고 이 꼭두새벽에 찬바람을 맞으면서 훈기도 없는 법당을 향해 올라가고 있다. 평범한 곳이라면 사람들이 이렇게 까지는 몰려들지 않을 것이다. 워낙 기도처로 유명한 곳이다보니 전국각지에서 저마다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부처님의 사리를 법당밖에다 묻어놓고 법당안에는 불상을 안치하지 않는 곳을 적멸보궁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5대 적멸보궁이 있다. 오대산 적멸보궁과 태백산 정암사, 사자산 법흥사, 설악산 봉정암, 통도사 적멸보궁이다. 그 중에서도 오대산 적멸보궁은 조선시대때 이름을 날린 박문수와 관련된 설화를 가지고 있다. 박문수는 중들에 대하여 놀고 먹는 사람들이라는 반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번은 그가 어사로 전국을 다니면서 오대산을 오를 기회가 있었다. 그가 정상에서 산의 기운을 한번 훝어보더니 오대산의 모든 정기가 적멸보궁에 모여있는 것을 보고 무릎을 쳤다고 한다.

“저러니 빌어먹고 살아도 되는구나”

적멸보궁과 사람들이 묵고있는 중대와는 시간상으로 30분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하루에 4번씩 기도를 하기때문에 왔다갔다 하는 것만으로도 운동이 충분히 되었다. 오히려 힘들다는게 정확할 것이다. 불사하기 이전에는 밥은 한두개정도의 나물에 비벼먹는 것이 고작이다. 여기서 기도한다는 것 자체가 벌써 고생을 각오해야 한다. 잘먹고 잘쉬면서 기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심귀명례 삼계도사 사생자부---
지심귀명례 삼계도사

스님의 음율에 맞춰 법당안의 수십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예불을 드리는 시간만큼은 장중하고 엄숙한 분위기였다. 소리를 귀로 들으면서 같이 따라하다보면 법당안으로 신선한 기운이 벽에 부딪쳐 내 몸으로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마음이 경건해지면서 머리가 시원하다는 느낌이었다. 새벽바람이 내 몸을 통과할 정도로 가슴도 시원해졌다. 답답한 모든 세상의 굴레를 벗어나는 시간이었다.

지금은 이렇게 새벽예불을 능숙하게 따라할 수 있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상당한 시간동안 조금씩 조금씩 불교를 접하게 되었다. 그것도 스님들과 한분 한분씩 인연이 되면서였다. 곡성에 가면 옥과면이라는 곳이 있다. 우리나라 전체 군중에서 제일 가난한 곳이 곡성군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곳은 개발이 안된 곳이라서 가는 곳마다 조용하고 번잡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전체가 가든공화국이다보니 드믄드믄 음식점만 있을 뿐이다. 옥과까지는 버스로 갈 수 있지만 거기서부터는 택시를 타야 용주사라는 절에 들어갈 수 있었다. 바로 그곳에서 처음으로 불교를 접했다.

1993년 정도 된 것 같다. 군대제대후에도 여러번의 사법시험을 봤지만 계속 떨어졌다. 그러던 참에 친구가 절에 있다는 연락을 받고 머리나 식힐겸 찿아간 것이 그곳에서 머무르게 된 계기가 되었다. 첫눈에 왠지 그곳이 좋아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인연의 때가 있는 것 같다. 그 이후로 그 절을 다시 가본 적이 있었는데 스산하기 그지 없었다. 어떻게 내가 거기서 세달넘게 내 인생의 가장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곳은 법당하나와 요사채가 있는 조그만한 절이었지만 바위위에 건물을 지어놓아서 그런지 첫눈에 봐도 기가 센 곳에 절을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절벽같은 바위 위에 요사채를 지어놓은 것이 운치가 있었다. 그 위에서 보면 발아래로 세상이 다보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풍광이 좋았다. 절입구로 들어오는 길에 있는 저수지에서 철새들이 노는 모습이 한눈에 다보였다. 더군다나 가을이 익어가는 계절이면 “추색이 완연하다”는 옛말이 실감이 났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절에 대해서 일자무식이었다. 법당에 들어가서 예불하고 그러는 것은 아주머니들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별 관심이 없었다. 단지 관심이 있다면 그놈의 지겨운 고시공부가 빨리 끝났으면 하는 것이었다. 대학교 4학년때 1차를 합격한 사법고시가 30이 넘어서까지도 될 듯 말 듯 하면서 애간장을 태우고 있었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렇게 시달리게 합니까?”라고 절규하는 심정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용주사로 들어올 때는 1차를 합격하고 2차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내 생전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절에서 공부해본 유일한 경험이었다. 고시공부가 길어지다보니 이곳저곳 다 다니면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만 많아졌다. 그 절에서 나의 스트레스를 풀어버리는 방법이 있었다. 나이는 30이 넘어서 아무 것도 이룬 것 없이 고시라는 막연한 것에 매달려 정력을 소모하고 있는 나의 젊음이 너무나 답답하여 날마다 공부하는 틈틈이 곡괭이로 땅을 파면서 스트레스를 해소 하였다. 약 세달정도 공부하는 짬짬이 땅을 팠는데 그 깊이가 아마 1년치의 쓰레기를 버려도 충분할 정도로 상당하였다.

잡기를 별로 즐기지 않는 성격이라 잡담을 할 상대가 없는 절이 공부하기에 아주 좋았다. 시간되면 밥먹고, 공부하고, 어둠이 깔리면 잠을 자고, 방에 tv가 없다보니 공부외에는 시간보낼 것이 없었다.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면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달정도 지나다가 가랑비에 옷젓는다는 속담처럼 저녁을 먹은 후 산책을 하고 오면 꼭 그시간이 저녁예불시간이라 법당밖으로 목탁소리가 들렸지만 별 관심없이 방으로 들어가곤 하였는데 그날따라 법당밖으로 들려나오는 염불소리가 왠지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것처럼 내 몸안에서 뭔가 뭉클한 기운을 느꼈다. 나도 한번 법당을 들어가보고 싶은 마음에 이끌려 주저주저하다가 법당문고리를 잡았다. 다시한번 생각하였다. 쓸데없는 짓 하는 것 아닌지 긴가민가 하다가 ‘에이’하면서 법당문을 열었다. 법당문은 집에있는 방문과는 달리 아주 크고 무겁다. 문고리도 큰 것으로 달아놓는다. 그 문고리를 잡고 무거운 문을 열기위해 힘을 주고 문을 열었다는 것 자체가 내 마음이 열어졌다는 증거였다. 종교에 대한 무관심하고 냉랭한 가슴이 따뜻하게 열렸다고 볼 수 있었다. 단지 염불소리가 좋아 법당안으로 들어왔지만 아무것도 모르다보니 스님들이 하는대로 따라하였다. 일어서면 같이 일어나고 절하면 같이 절하고 염불하면 입만 뻥끗뻥긋하였다. 무엇을 말하는지는 전혀 몰랐지만 듣기는 참 좋았다.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주었다.

그 절에는 비구니스님 3분이 있었다. 한분은 주지스님이었고 다른 한분은 나와 같은 용띠인 그분의 상좌스님인 무여스님이었고 다른 한분은 지장기도를 하러 전국의 기도처를 돌아다니고 있는 혜각스님이었다. 기도를 많이 한 분이라서 그런지 여자여도 대장부처럼 기개가 있었다. 몸집도 그랬다. 같은 나이라서 그런지 부담없이 대했던 무여스님이 나의 이런 모습을 며칠 지켜보다가 따로 시간을 내서 직접 목탁을 치면서 예불하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예불문부터 반야심경, 천수경까지 째를 맞춰가면서 배우는 것이 재미있어 며칠을 따라하다보니 입만 뻥긋하다가 드디어 스님들의 염불을 듬성듬성 따라 할 수 있었다. 그때만 해도 내가 법당을 들어가게 된 이유는 딴게 아니었다. 마음이 차분해지기 때문에 그게 좋아서 들어갔을 뿐이었다. 그러나 나의 주된 관심은 공부였다. 예불시간이 30분이 넘어서면 공부시간을 뺏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 얼른 법당을 나와 방으로 올라가서 공부가 잘되든 안되든간에 책을 봐야만 마음이 편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직업병이었다. 아직은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하고 시간에 쫓긴다는 증거였다. 천천히 여유를 부리면서 걸어다니는 것이 아니라 법당에서 요사채까지 놓여있는 경사가 급한 계단들을 항상 뛰어다녔다. 그래서 스님이 지어준 별명이 다람쥐였다

그래도 조금씩 아침저녁으로 예불을 드리다보니 머리가 무척 시원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느날 방에서 공부하다가 방문을 보면서 갑자기 머리로 스쳐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저 방문만 나가지만 않는다면 공부시간을 뺏길 아무런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 생각이 든 후 한번 방에 들어가면 밥먹을 때외에는 거의 나오는 일이 없었다. 무문관 수행이 따로 없었다. 반가부좌를 틀고 조그만한 책상 앞에 한번 앉으면 밥먹으라는 목탁소리에 할 수없이 일어나야 했다. 잠자는 시간도 정확하였다. 정각 10시에 1분 1초도 안틀리고 잠이 스르르 몰려왔고 눈꺼풀이 무거워진다는 느낌에 그대로 뒤로 누으면 그다음날 새벽 4시였다. 이런 정성이 통했는지 무여스님이 날마다 목탁을 직접 치면서 나의 합격을 위해서 관세음보살의 가피력을 받아 어려움을 해결한다는 관세음보문품경을 읽어주었다. 처음 며칠은 그분의 성의가 고마워 매일 아침 9시쯤으로 약속시간을 정하여 법당에서 같이 읽었다. 그 경을 한번 다 읽는데 최소 30분~40분이 더 넘게 걸렸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면서 “내가 지금 쓸데없는 짓 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회의가 들기 시작하였다. 이래저래 가장 머리가 맑은 상태에서 공부할 수 있는 오전에 무려 1시간이나 공부를 빼먹는 거였다.

“공부를 해야 합격을 하지 이까짓 경을 읽어봤자 무슨 소용이야. 공부가 주이지 염불이 주이지 않는가. 아무리 성의라지만 공부에 방해가 되면 안해야 한다”

그런 마음에 이제는 안하리라 마음먹고 법당으로 내려가지 않는 날이면 어김없이 “고군”하고 법당에서 외치는 스님의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날은 그 소리가 저승사자의 외침으로까지 들렸다.

솔직히 그 보문품경 내용을 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절벽을 떨어져도
풍랑을 만나도
사형을 집행당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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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보살이 지켜준다는 내용들이었다. 불보살이 여러모습으로 나타나서 구해준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황당무개한 내용들이 거짓이 아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어느날은 가을햇살이 너무 좋아 경내에 있는 큰 바위 위로 올라가 책을 보았다. 막상 올라가니 가을 햇볕에 책을 본다는 것은 눈이 부셔서 피곤한 일이었다. 책을 놓고 절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을 지켜 보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영문인가. 바로 그 사람들이 불보살의 화현으로 느껴지는 것이엇다.

“아하! 저사람들이 뭔가 나에게 암시를 주기 위해 오는 불보살의 화현이구나”

뭔가 나에게 가르침을 주기위해 불보살이 관광객의 모습으로 오는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자 사람이 다들 달리 보였다. 단지 지금 이순간 만나서 스쳐지나가는 사람정도가 아니라 나를 위해 뭔가를 가르쳐주려고 하는 불보살들로 모두 보였다. 그러니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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