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가는 과정] 속초 홍련암 1

조세전문변호사 고성춘

by lawyergo

[나를 찾아가는 과정] 속초 홍련암 1

한해가 저물고 신년이 되는 첫날 새벽 일출을 보는 곳으로 유명한 절들이 전국에 몇 개 있다. 남해안에는 여수 향일암이고 동해안으로는 속초 낙산사 암자인 홍련암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날 반짝 왔다갔지만 1997년 사법연수생 시절 일주일정도 머물면서 기도를 하였다. 매일 새벽마다 보는 일출이라 정월 초하루에 보는 일출이라 해서 다를 것도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이 그런가. 뭔가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평소 일출과 달라보이는 것 같다. 그러나 복이 있어야 온전한 일출을 본다고 한다.

복이 있어야 볼수 있는 것중에 지리산 노고단 운해가 있다. 그것은 본 적이 있었다. 저 멀리 구례읍이 보이는 곳까지 구름으로 쫙 깔려 장관이었다. 그런 장관을 한번 보고나면 아무런 근심걱정이 없어진다. 사람이 이렇게 살아야하는데 그런 느낌이 저절로 들었다. 경주 남산에 올라가 저 멀리 토함산까지 뭉게구름으로 뒤덮은 장관을 본 적도 있었다. 구름이 발 아래에서 일어나고 발을 딛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정도로 구름바다였다.

그러나 운해와 달리 온전하게 붉게 떠오르는 일출은 보기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홍련암에서 1년 넘게 기도하고 있었던 스님도 한번 밖에 못봤다고 하였다. 해가 떠오르면 운무같은 안개들이 수평선 위로 자욱하게 가리기 때문에 막 떠오르는 붉다못해 이글거리는 해를 보는 것은 왠간해서 보기 힘들다고 한다.

사람의 심리가 참 이상한 것 같다. 뭔가 우울하고 허탈할 때는 꼭 바다를 찾지 산을 찾지 않는다. 사람이 나이먹고 죽을 때는 고향을 찾는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바다가 우리의 고향이란 말인가. 하긴 우리가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때 양수라는 물속에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할 만도 하다. 고시공부할 때 시험합격자 발표가 있는 날이면 꼭 바다로 가는 수험생들이 있었다. 나는 그런 적이 없었지만 이해가 된다. 특히 여자들이 바다를 좋아한다는 것은 본능이 우울하다는 것일까?

이 절을 처음 가보게 된 계기는 어떤 여자분 때문이었다. 그분은 강남 역삼동에서 일식집을 운영하시는 분이었는데 오대산 적멸보궁에서 만났던 인연으로 알게 되었다. 몇 번 그분한테 가서 밥을 얻어먹기도 하였다.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사는 분이었는데 성격이 남자같이 화통하였다. 적멸보궁에서 기도하였을 때가 여름이라서 밤중에도 철야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곳에서 만났던 같은 또래의 남자랑 같이 철야로 기도를 해보자고 의기투합하여 몇 시간동안 절을 하고 있었는데 뒤에서 누가 훌쩍훌쩍 우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말하고 있는 그분이었다. 알고봤더니 법당 안에서 제일 염불소리가 낭랑하고 꾀꼬리 같았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염불 소리 가운데에서도 단연 부각이 되었다. 나는 처음에 성악가가 와서 기도하고 있는 줄 알았다. 절에서 만난 인연이라서 그런지 나를 좋게 봐 주었다. 한해가 저무는 마지막날 속초행 비행기를 타고 그분 일행과 같이 간 곳이 바로 속초 낙산사 바로 아래에 있는 조그만한 암자인 홍련암이었다. 그 절은 의상대사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었다. 의상대라는 정자가 있는 곳도 의상대사가 그곳에 앉아 동해안 바다를 보면서 수행을 한 곳이다.

홍련암이 유명한 이유가 있다. 법당 밑으로 바다가 보이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바닷물이 찰싹거리는 모습이 법당밑으로 보인다. 바닷가 바위 위에 새가 자기집을 지어놓듯이 절도 꼭 그렇게 지어놓았기 때문이다. 법당 한 가운데에는 조그만한 구멍이 있는데 뚜껑을 열면 바로 밑으로 파도가 바위를 찰싹 치면서 하얀 거품을 내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관광객을 끌만한 충분한 요소가 되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그 구멍으로 파도치는 모습을 보고자 찾아왔다. 마치 무슨 기도효험이 많은 것처럼 생각하고 말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그런 이유보다는 우선 탁트인 바다를 보면서 기도를 한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나 가슴에 묻어놨던 답답함을 바다에 훌훌 털어 버릴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기도의 효험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거기서 일주일 동안 있으면서 기도를 하였다. 하루하루 가는 사람과 오는 사람으로 서로 교차하다 보니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과 다양한 사연으로 심심하지가 않았다. 그 여자분은 일찍이 남편을 사별하였다. 일주일이 다 되어 떠나기 전날 기도를 회향하는 의미에서 그분은 남편에 대한 천도재를 지냈다. 법당 위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의식의 마지막 순서였다. 뭔가를 태우고 있었다. 연기를 타고 재가 공중으로 올라갔다. 타는 재를 쳐다보면서 그분은 설움에 복받쳐 우는 울음인지 회한의 눈물인지 울고 있었다. 스님이 치는 목탁소리는 서럽게 들렸다. 저 멀리 수평선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너무 잔잔하였다. 다만 절벽을 치는 파도소리만 들려왔다. 하얀거품을 내면서 밀려왔다 철썩 바위를 치면서 수많은 하얀 거품을 내고 있었다. 그것을 보자 마치 우리 인생이 그 거품같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아마 저 파도는 수만년 전에도 똑같이 바위를 찰싹찰싹 치면서 하연 거품을 내뿜고 있었을 것이다. 그 순간에도 그 여자는 울고 있었다. 그녀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파도는 무심하게 밀려와 찰싹찰싹 치고 하얀 거품을 뿜어내고 있었다.

흔히 우리의 본성을 표현할 때 바다를 의인화한다. 우리의 본성은 바다와 같은 것인데 단지 인연따라 바람이 불어 파도가 칠때 하얀 거품이 발생하듯이 우리도 인연따라 사람 몸으로 태어나 거품이 꺼지듯이 우리 육신도 없어진다는 것이다. 육신은 거품과 같은 것이지만 우리 본성은 바다와 같이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FB_IMG_1567045834334.jpg
매거진의 이전글[나를 찾아가는 과정] 출가하려 했던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