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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wyergo Sep 06. 2019

[국세청 입조일기] 나는 소망합니다

조세전문변호사 고성춘

[국세청 입조일기] 나는 소망합니다

2003년 국장님이 법무과 직원들을 대상으로 신년 정신훈화를 하는 시간이었다. 한달 전부터 한다한다 하다가 마침내 하게되었다.

갈매기의 꿈

이 책을 읽어본 사람이 있냐고 물었다.

최OO 조사관이 손을 들었다.

“주제가 뭐죠”

“높이나는 새가 멀리본다”

우리는 영적인 눈을 트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기도를 할때 우리나라가 잘되게 해주라고 기도합니다. 나라가 있고 내가 있는 겁니다. 나라가 잘되어야 국세청이 튼튼해지고 그러면 나도 잘되는 것입니다. 나의 백그라운드가 튼튼해야 나의 발전이 이루어집니다. 나는 37년동안 조직을 위해서 살아온 것 같습니다. 조직을 위하고 나의 발전도 있는 겁니다.

국장님이 법무과 직원들을 상대로 이렇게 정신교육까지 하게 된데는 직원들의 잘못이 크다. 직원들의 행태가 이런 상황까지 몰고 온 것이다.

법무과 직원들이라면 3할이상은 세무사 시험을 합격하고자 공부하는데 신경을 쓰고 있다. 직원 몇몇은 나에게 노골적으로 세무사 공부하게끔 잘해달라고 주문을 하기도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는 과연 내가 개방직이 아니라 행정직 과장이고 나이어린 과장이 아니라 나이많은 과장이었다면 과연 그런 식으로 말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전북 부안에 가면 외변산이 있고 내변산이 있다. 내소사하면 사람들에게 유명한 관광사찰이다. 그 절이 있는 곳이 내변산이고 그곳으로부터 조금 더 가면 직소폭포가 있다. 난 이 폭포도 좋지만 가는 길이 참 마음에 든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내소사만 들러보지만 실제 부안땅을 제대로 알려면 내변산 월명암을 가봐야 한다. 500미터도 안되는 산이지만 겨울에는 해풍을 맞아서 그런지 눈이 참 많이 오는 곳이라고 한다. 실제 내가 겨울에 가 있었을 때도 눈이 많이 내렸다. 무릎까지 쌓이곤 했다. 월명암하면 나에게 제일 기억나는 사람이 부설거사다. 그는 신라시대 승려로서 어떤 인연으로 부안땅의 묘화라는 아가씨와 살게되었는데 그는 승려의 행색을 벗어났지만 불교역사상 3대 居士중의 한사람으로  칭송받는 사람이다. 그가 도반 승려들과 호리병에 물을 담아 거꾸로 매달아 물이 흘러내리지 않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을 한 후에 그들에게 해줬던 말이 있었다.

“물은 똑같은 건데 병이 거꾸로 있다해서 물이 흘러내리나.”

세상살이를 하면할수록 이 말의 의미가 실감난다. 그리고 해마다 의미가 새록새록 우러나온다.

세무사 공부하게끔 해달라, 대충 보고 결재를 빨리 해달라, 자꾸 이론을 달지 말라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참 박복(薄福)한 사람들이구나” 하는 안타까움과 측은한 마음이 속으로부터 우러나오기도 했다.

법무과가 인기가 좋은 것은 출장이 일상화 되어있다 보니 관리자의 통제로부터 벗어나 있고, 세무사 공부하기가 좋고 자기시간 내기 좋고 대충 자신의 발전을 위할수 있는 곳이라는 인식때문이다. 일을 통해 나 자신의 발전이 이루어지는 곳이기 때문에 선호하는 것 같지는 않다.

법의 정신이라는 제목으로 법무과 직원들을 상대로 강의한 적이 있었다.

말하고자 했던 것은 法을 풀이하면 삼氵변에 갈 去이다. 물이 흘러간다는 의미이다. 법은 그래서 합리적이고 수학같이 공식으로 흐트러짐 없이 짜여져 있다. 그렇게 될 수 있는 이유는 진리를 담고 있기때문이다. 즉 自他不二다. 법의역사는 고통받는 사람들의 역사였다. 인류 고통의 역사를 통하여 법의 정신이 법전으로 발현되기 시작하면서부터 법의 정신이 모든 국가운영의 뼈대가 되었다. 만일 법의 정신을 발현하지 못한다면 악법이다.

법의 정신!
내가 생각할 때는 하느님의 말씀과 부처님의 말씀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결국 법무과는 법의 정신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고 법의 정신을 체화시키려는 수행자들인 셈이다.

종교 따로 일 따로, 교회나 법당 따로 사무실 따로

만일 이런 식의 믿음이라면 스스로 계속 간격을 만들어가면서 그 속에서 채우지 못하는 허전함과 쓸데없는 헛심을 쓰게 될 것이다.

강의를 끝내고 왔을 때 두 종류의 말을 들었다.

하나는 세법은 법보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리갈마인드가 하루아침에 쌓이겠습니까? 하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그래 하루아침에 쌓이는 게 아니지'

나도 10년 동안 죽자살자 잘되려고 매달리고 방황하면서 느낀 개념인데....

나는 우리 국세청이라는 커다란 조직을 선지식으로 모시고 그동안 여러군데 선방을 다녔지만 이번참에는 법무과에 방부들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마침 바로 옆에는 조계사도 있어서 저녁 6시 10분 쯤이면 종소리가 땡땡 들리기도 한다.

개방직으로 처음와서 법무과 근무를 해보니 직원들에게는 출퇴근이 거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소송간다고 출근 안해버리고 소송있다고 막바로 법원에서 퇴근해버리고,  어쩌다가 직원을 찾으면 소송이 없음에도 법원에 출장갔다고 동료직원들이 둘러대고 그동안 이런 행태가 너무 만연하다 보니 이게 하나의 원칙인가 싶을 정도로 고착된 관행으로 되어있었다.

어떤 사람은 일주일에 몇번 보기가 어렵다. 그런다 해서 자기개발을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밤새도록 술먹고 그 다음날 집에서 누워있는 식으로 생활하는 사람도 있는 것으로 안다.

참 위험한 조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편함을 추구하면서도 또 승진도 하려고 한다. 차라리 둘 중의 하나만 선택하면 조직생활을 하도 오래해서 지긋지긋해서 그런갑다 하고 이해라도 할텐데.

우리 과는 계간의 골이 깊다.

계단위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다보니 과는 없고 계만 존재하는 느낌이다. 결국 계장의 색깔대로 계의 색깔이 정해진다. 계장이 만일 자기 계원들만 챙기고 인기를 얻는다면 과장이 힘들어진다. 과장에게는 과 전체의 통일과 단함 그리고 화목이 중요하기때문이다.

1계, 2계, 3계

아프리가 르완다 내전으로 인해 우간다로 피난온 난민촌에 KBS 도전지구탐험대가 도착했다. 그들은 난민들의 열악한 환경과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고 말라리아와 피부병 등 아픔을 견디어야 했던 7살난 소녀를 치료하면서 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다.

한밤중 위독한 상태가 되어 우간다 국경을 넘어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갈려고 해도 국경수비대는 국경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가장 가까운 진료소로 갔고 열악한 시설에 그 소녀를 치료할 수 없어 다시 또 가까운 병원을 찾아갔다. 응급실이라 해봐야 별 시설도 없어 보였다. 영양실조로 인한 면역력이 없는 상태에서 영양제를 놔주는 것으로 치료가 시작되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내 옆에서 잘 놀고 있는 우리 애를 봤다. 복이 많아 보였다.

앞으로 너희들도 저런 국제기구에서 가난과 무지의 굴레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제도를 개선하고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란다.

아버지 세대처럼 살기위해 생존하기 위해 나 잘되기 위해 살지말길 바란다. 그리고 남을 규제하고 남을 아쉽게 함으로써 내가 대우받고 남의 고통을 내 편하기 위해 함부로 도외시하고 그런 공직자의 삶을 살지 말기 바란다.

그리고 돈버는 사람보다는 제도와 정책을 다듬는 공직자가 되기를 바라며, 그것도 우리나라와 같은 좁은 나라에서 보다는 전 인류를 대상으로 정책을 펴는 국제기구와 같은 큰 조직에 들어가서 일하기를 바란다.

아버지는 그런 일을 해보지도 못했고, 할 능력도 없었고 기회도 없었다.

아버지가 너희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기회를 제공해주고 싶은 것이다. 어학도 배울 수 있는 언어는 다 배워라. 배울 수 있게끔 기회를 제공해주고 싶은 게 아버지 마음이다. 능력이 따라줄란지 모르겠다. 그러나 복을 타고 났기 때문에 물질이 부족하다 해서 기회가 안 오는 게 아니다. 자기 복이 있으면 기회는 많이 있다고 본다.

심리학자 헨리나우엔의 ‘친밀함(1969)이라는 책에 소개된 “나는 소망합니다”를 인용하면서 나의 소망을 말하고 싶다.

나는 소망합니다.
내가 누구를 대하든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타인의 죽음을 볼 때마다
내가 작아질 수 있기를
그러나 나 자신의 죽음이 두려워
삶의 기쁨이 작아지는 일이 없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줄어들지 않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상대가 나에게 베푸는 사랑이
내가 그에게 베푸는 사랑의 기준이 되지 않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모두가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기를
그러나 나 자신만은 그렇지 않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언제나 남들에게 용서를 구하며 살기를
그러나 그들의 삶에는
나에게 용서를 구하는 일이 없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게 되기를
그러나 그런 사람을 애써 찾아다니지 않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언제나 나의 한계를 인식하며 살기를
그러나 그런 한계를 스스로 만들어 내지는 않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삶이 언제나 나의 목표가 되기를
그러나 사랑이 내 우상이 되지는 않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모든 사람이 언제나 소망을 품고 살기를...

-헨리나우웬의 《친밀함》중에서-

《나의 소망》

나는 소망합니다.

순수를 추구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죽음에 이르러 새털처럼 날 수 있기를

언제 몸을 벗더라도 마음의 흔적이 없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안 만나도 될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고통의 是非로부터 자유롭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순진과 순수의 경계선상에서 고통을 받더라도 自他不二의 믿음을 더 가질수 있도록

나는 소망합니다

“알게 모르게 지은 죄가 많습니다”

절실한 마음으로 항상 참회하기를

내 인색함과 냉정함과 安逸이 내가 해야 할 사명을 저버리지 않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나 자신이 들녘에 피는 조그만 풀뿌리에 불과한 존재라는 점을 언제나 인식하기를

앞으로 의욕을 부리는 삶보다는 거꾸로 가는 삶을 살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사명을 다하기를

내가 모든 이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언제나 나의 한계를 인식하며 살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물질과 순수의 화두를 깨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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