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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wyergo Apr 29. 2020

경제적약자만 당한다 5 명의빌려주고 세금에 시달린다

(논픽션에 픽션을 가미하였다) 

젊은 사람들이 취업하기 힘든 세상에서 간신히 취직을 했다. 종전 회사가 망한 이후 거의 1년 만이었다. 몇 달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선배인 총무과장이 말하였다.

“너 명의로 계좌하나 개설하자.”

이유인즉 회사가 필요해서 그렇다고 하였다. 찜찜한 마음에 선뜻 내키지 않은 표정을 지어보이자 선배가 다시 말하였다.

“사장에게 밉보여서 좋을 일 있겠어?”

그 말에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어떻게 얻은 직장인데 …’

할 수 없이 찜찜하였지만 별일 없으리라 믿고 증권계좌를 개설해줬다. 그리고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 

한편, 사장은 주가조작을 위해서 여러 사람의 명의가 필요했던 것이다. 20명 넘게 명의를 빌렸다고 한다. 사장은 작전세력 중의 한 사람에 불과했다.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국세청에서 증여세 조사로 문답을 받았다. 자그마치 6천만 원이나 되는 돈이다. 

‘세상에 우째 이런 일이…’.

황당했다. 명의신탁증여의제라고 했다. 조사받을 때 자초지종을 다 말했다. 주가조작을 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내 명의 빌려간 사장이라는 사실을 ….  조사하는 사람들도 내가 억울하다고 동정해주었다. 설마 나에게 세금을 내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심 기대하였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그런데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현실로 나타났다.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예전에 다녔던 직장이 문을 닫아 또다시 몇 개월을 백수로 지내다가 간신히 직장을 새로 잡았다. 현재 내 월급은 120만원이다. 

컴퓨터관련전공을 선택할 때만 해도 미래에 희망이 있는 듯했다. 그 당시는 하도 ‘벤처, 벤처’했다. 그리고 「IT」 라는 단어만 들어가면 세상이 다 미쳤다. 그러나 거품이 싹 빠지면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의대나 갈 걸 후회가 된다.      

집안에서 난리가 났다. 이제 막 8개월밖에 안된 갓난 애기에게 젖먹이고 있던 집사람의 얼굴에 세상 무너지는 모습이 드리워졌다. 

솔직히 우리 아기 분유 값 대기도 힘들다. 

이사람 저사람 물어보다가 변호사사무장하는 친구에게 물어봤다. 그가 알아봐준다고 했다. 그러더니 어떤 사람을 소개해줬다. 그는 세무사사무장이라고 했다. 그에게 수임료로 300만원을 줬다. 불복청구를 빨리 해야 한다고 했다. 90일내 안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없는 돈 사채로 끌어다가 줬다. 거금을 주는 거라서 뭔가 증빙을 남기고 싶었지만 싫어할 것 같아 선뜻 말은 못하고 잘 부탁한다고만 했다. 내 돈 내가 주면서 아쉬워해야 하니 세상이 왜 이런지….

인감증명이나 위임장 같은 것은 써주지도 안했다. 그런 것 없어도 된다고 했다.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보고 탄원서 비슷하게 써보라고 해서 써서 줬다.     

국정운영에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저는 000이라고 합니다. 저는 몇 주 전에 세무서로부터 증여세 0천0백여만 원을 납부하라는 통지를 받았습니다. 사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2년 전에 입사한 회사에서 직원으로 근무할 당시에 저의 학교 선배이자 이 회사의 총무부장으로부터 주식 증권계좌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내용인즉 사장이 해달라고 하는 것이니 만일 응하지 않으면 회사 생활하는 데에 어떤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을 하며 차명 계좌를 만들어 달라하였습니다. 저는 할 수 없이 모 증권 지점에서 계좌를 만들어서 주식카드와 도장, 통장 등을 선배에게 전달하였습니다. 그 후로 회사는 자금난에 어려워 문을 닫았고 저는 다른 직장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몇 달 전 세무서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모 회사의 주식 증여를 받은 것이 있으니 출두하여서 조사를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출두하여 그간의 일을 모두 사실대로 진술하였습니다. 조사를 받으면서, 저희 회사 사장이 모 회사의 사장과 결탁하여서 주가조작을 한 것 같으며, 주가조작을 하기 위해서 저의 차명계좌를 빌린 것이고, 그밖에도 저 말고도 20여명의 차명계좌를 더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당시 사장의 강요에 못 이겨 차명계좌를 빌려주었고 나는 주식의 주자도 모른다. 그리고 이일로 인하여 어떠한 금전적인 이익을 본 것도 없다. 라고 진술서를 쓰고 지장을 찍은 후 확인하였습니다.

그 후 한 달 전 세무서에서 저에게 몇 천여만 원의 증여세를 납부하라는 통지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심정은 정말이지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습니다. 8개월째 월급 한 푼 안 나오는 직장에 다니고 있는 저로서는 너무나 큰 금액이고 또한 암투병을 하고 계시는 아버님의 수술비 마련에도 급급한 저에게 몇 천만 원이란 금액은 그야말로 날벼락이었습니다. 저는 당시 계좌를 만들어 달라던 선배에게 연락을 하여 어떻게 된 것이냐, 어떡하면 좋으냐고 물었습니다. 선배는 사장에게 알아본 후 모든 것이 다 잘되고 있다 조금도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으면 해결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너무나 큰돈이고 너무 억울하여서 이대로 있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렇게 본 청구를 제기하게 되었습니다. 부디 현명하신 판단과 통찰력으로 저의 어려운 사정을 헤아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불복결정문이 왔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명의신탁이 아니라는 증빙이 없고, 또 조세회피목적이 없다는 증빙이 없으므로 기각한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지만 세금을 내야한다는 의미인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았다. 

돈이 자그마치 몇 천만 원이 넘는데 어떻게 내 월급으로 낸단 말인가?

그런데 왜 나만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내 명의 빌려간 사장에게 가서 따져보기도 했다. 그는 걱정 없을 거라고만 말만 하다가 행방을 감춰버렸다. 

도대체 주가조작한 놈들은 안 잡고 왜 애매한 나만 가지고 이러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다. 국가가 진짜 할일이 없는 것 같았다. 그 막강한 권력을 나같이 힘도 없는 놈한테 쓴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


https://youtu.be/tuWeFfYgIQ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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