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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wyergo Dec 06. 2018

[국세청에서의 5년] 금모으기 운동의 허상(4)


[국세청에서의 5년] 금모으기 운동의 허상(4)


2008년 10월 이명박 정권때도 금융위기가 있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원화가치 급락에 따라 경제 위기론이 확산되었다. 그러자 또다시 IMF때처럼 금이나 달러를 모으자는 주장이 정부 여당인 한나라당 일각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실제 ‘달러모으기 운동’으로 발전되었고, 이를 위해 종교단체도 적극 나섰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서명활동 출범식을 시작으로 각 종교의 주요교회, 사찰, 성당 등에서 서명 및 달러 모으기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자 하였다. 기업체 직원들도 해외 출장이나 여행 후 남아있는 달러를 모음으로써 혹시 있을 유동성 위기에 대처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발하는 이들은 “전 더 이상 권력자들의 거짓말에 속아 제 귀중한 재산을 탕진하고 싶지 않습니다. 애국심이요? 그거 발휘하면 뭐 합니까? 엉뚱한 놈들의 뱃속이나 불려주는 걸요. 애국이고 뭐고 간에 저 자신부터 살고 봐야겠습니다. 달러나 금이요? 있어도 내놓기 싫습니다.”라고 반발하였다. 반면에 이런 주장을 애국심이 없는 몰상식한 사람의 주장으로 치부하는 주장도 있었다. 앞으로도 나라 경제가 어려워지면 또 국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정치인들이 나올 것이다. 위기는 정치인들이 다 만들어놓고 꼭 위기극복은 국민이 나서서 극복하라고 한다. 임진왜란 때 선조같은 이들이 앞으로도 계속 나올지도 모른다. 그때마다 이런 논쟁이 반복될 것이다. 따라서 쓸데없는 논쟁을 막기위해서라도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벌였던 금모으기 운동에 대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금모으기 당시 언론들 중 금모으기운동을 비판한 기사들도 있었다. 내용을 대략 인용해본다.


금모으기 운동은 사실 실패한 운동이었다. 당시 언론도 ‘본전도 못건진 금모으기 운동’ ‘헐값 매각 뒤 비싼 값에 재수입’이라는 제목으로 혹평을 하였다. 사실 당시 보통 시민들은 달러 한푼이라도 더 벌어들이자는 뜻으로 돌반지까지 내놓고 있었고, 나라를 살리겠다는 마음에 제값을 받는 것인지 확인도 하지 않았다. 운동이 시작된 1998년 1월5일부터 5월까지 걷힌 금은 약 2백27t이었다. 전국적으로 3백51만여명이 여기에 참여했다. 4가구당 1가구꼴로 평균 65g을 내놓은 것이다. ‘제2의 국채보상운동’이라고 부를 만한 수준이다.


그런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금모으기운동 과정에서 다른 한쪽에서는 수출업무를 맡은 재벌그룹 종합상사들이 비싼 값에 금을 수입해 싼값에 외국에 재수출하고 있었다. 그것도 자신들이 금을 수출한 해외업체로부터 수출가격보다 0.2∼0.5% 높은 값으로 사들였다. 이들이 금 수입을 위해 도입하는 무역신용은 월 3억∼4억 달러에 이른다. 이를 통해 연이율 11∼12%에 6개월까지 외상거래를 하다. 반면 금을 수출하면 바로 달러를 손에 쥘 수 있고 이를 원화로 바꿔 국내 금융기관의 고금리 금융상품에 투자하면 적지 않은 이자수익을 낼 수 있었다. 해외업체들로서는 종합상사들에 비싼 값에 팔았다가 싼값에 되사들이는 셈이다.


금모으기운동에 참여한 시민들은 제값을 받지도 못했다. 순금의 순도를 실제보다 2∼3% 낮게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종합상사들은 금을 모으고 수출하는 데 드는 비용을 감안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이를 금액으로 계산하면 5백억∼6백억원이나 되었다. 2백20여t을 모으고 수출하는 데 이렇게 많은 돈이 드는지 의문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실제 수집·수출비용의 차액이 어디론가 흘러갔다고 의심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결국 금모으기운동을 통해 국민들이 모은 상당량의 금이 싼값에 팔려 비싼 값으로 다시 들어왔다가 헐값에 다시 팔렸을 가능성이 높았다. 또한번 국부가 유출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종합상사들이 수출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서다. 국제통화기금(IMF)사태가 터진 뒤 종합상사는 재벌그룹 구조조정과 관련해 1순위 대상으로 꼽혀왔기 때문이다.


당시 언론은 위와 같이만 분석하였다. 하지만 언론은 금지금거래에 대한 깊숙한 내막을 미처 알고 있지 못하였다. 금괴가 부가세 포탈에 이용되고 있었다. 당시 금모으기 운동으로 모아진 소중한 추억이 서린 금반지 등은 용광로에 들어가 골드바(금괴) 형태로 해외에 수출되었는데, 당시 정부도 금 수출을 독려하기 위해서 금을 수출하면 부가세를 돌려주는 혜택을 주었다. 즉 부가세 영세율을 적용해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부 금 유통업체들은 중간에 노숙자 등을 대표로 하는 유령 폭탄업체를 세워, 부가세는 폭탄업체에게 전가하고 자신들은 부가세나 관세를 부정 환급받는 방법으로 이익을 챙기고 있었다. 폭탄업체는 세워진지 얼마되지 않아 폐업하기 때문에 국가는 그들로부터 세금을 걷을 수가 없었다. 검찰이 2008년 2월 최종 발표한 수사결과에 따르면 대기업 계열 종합상사도 이같은 거래에 뛰어 들어, 부정 환급된 세금만 2조원대에 달했고 대기업 담당자 등 102명이 구속기소 되었다면서 금지금(순도 99.5 이상의 금괴)의 수입·수출 등 유통과정에서 2조원대의 세금을 ‘도둑질’한 사범이 검찰에 검거돼 국내 금시장의 구조적인 문제가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고 홍보하였다.


2조원의 계산근거는 검찰이 추산한 금액일뿐이다. 그들이 직접 적출한 금액이 아니다. 내가 볼때는 100조도 넘었다고 해도 과장한 금액이 아니라고 본다. 물건은 가지않고 세금계산서만 발행하는 식이었으니까 대충 그럴 것 같다는 직감이다. 당시 검찰 금지금수사팀을 구성할 때 고검 송무부장이 주축이 되어야 하느냐 서울지검 형사4부장이 주축이 되어야 하느냐 헤게모니 싸움이 은연 중에 있었다. 고검도 송무부장과 부가가치세 담당부장검사가 하느냐 등등. 결국 당시 송무부장이 금지금총괄을 하였다. 형사4부는 수사를 직접 하면서도 지원부서에 밀린 느낌을 가져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송무부장과는 떡이 되도록 술도 먹어봤고, 형사4부장과는 수시로 부장실에서 이야기를 자주 나눴기 때문에 분위기를 알 수 있었다. 검찰은 하명이 내려오면 무섭게 속도를 내는 조직만큼은 틀림없다. 당시 형사4부장은 일주일동안 집에 들어가지 않고 금지금팀이 갖다준 캐비넷 하나 분량 사건철을 다 읽었다고 하였다. 설마 하면서 그와 이야기해보니 실제 다 읽은 것 같았다. 일주일만에 상당한 지식을 가지는 것을 보고 확실히 똑똑하다는 것을 느꼈다. 공치사만 하지 않고 승진경쟁만 하지 않고 수사를 지휘하고 기획하는 그런 조직으로 한다면 검찰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인데 자기들끼리 승진경쟁이 너무 심해 잘못된 길을 가는 이들이 존재하는 게 안타깝다.


금지금을 이용한 범행 수법은 이렇다.


금지금(금괴)업자들이 부가가치세를 포탈하는 수법은 해외수출과 연계하여 속칭 “뺑뺑이 거래” 하는 수법이다. 최근에는 금지금에 대한 영세율 제도를 폐지하고 면세로 전환했으나 그 수법은 동일하다. 그 수법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그림3과 같다.



우선 폭탄업체를 설립한다. 노숙자 등 바지사장을 내세워 금괴도매상을 설립하고 딱 1, 2개월만 거래를 한 뒤 부가세를 납부하지 않고 폐업해 버린다. 폭탄업체는 금괴 원가를 시세보다 낮게 매출해도 이득을 본다. 세금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애당초 부가세를 납부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 금 수입국인 한국의 도매시세가 국제가격보다 낮은, 이상한 형태로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다. 이렇게 팔린 금지금은 ‘과세당국의 조사를 피하기 위해 끼워 넣은 여러 도매상들’을 거쳐 유통(뺑뺑이 거래)되다가 결국 수출된다. 외국으로 나가는 이유는 부가세를 환급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부가세가 부과된 금괴도 수출할 때에는 국제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세금을 환급해주었다. 따라서 국가는 폐업하는 업체로 인해 걷지도 못하는 세금을 수출 시 환급해 주게 되고 이는 계속 반복돼 그만큼 손실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 같은 방법으로 부정 환급된 금액은 1999년부터 2004년까지 무려 1조 3000여억원. 수출업자가 금괴를 수입가보다 저가에 재수출함으로써 연간 590여억원의 국부도 유출됐다는 게 검찰의 수사결과다. 게다가 폭탄업체는 위조된 수출계약서를 이용하여 구매승인서를 은행으로부터 발급받아 영세율 적용을 받고자 거래업체들에게 건네주었다.


위와 같은 내용을 요약하면, 부가세를 납부하지 않고 폐업할 속칭 ‘폭탄업체’, 폭탄업체와 거래할 속칭 ‘도관업체’, 도관업체와 거래할 수입․수출업체를 설립한 후, 각자의 역할에 따라 “수입-국내거래-수출”에 이르는 거래를 반복하며 폭탄업체는 부가세를 포탈하고, 수출업체는 수입가보다 저가로 수출하여 국부를 유출시키고 부가세를 부정환급받는 식의 범행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각 거래별로 관여업체가 취득하는 수익을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수입업체는 1,000에 매입한 지금을 1,010에 영세율 매출하여 10의 이익을 남김


② 이어 1차 도매업체는 영세율 매출하며 10의 이익을 남김



③ 폭탄업체는 영세율 매입한 금지금을 부가세 95, 공급가액 950에 과세 매출, 폭탄업체가 부가세 95를 납부한다면 70 (1,020 — 950) 손해이나, 부가세 95를 납부하지 않고 도주하여 25의 이익을 남김



④ 2차 도매업체는 수출업체에 960에 과세매출하여 10의 이익을 남기고, 부가세 1 (96—95)만 납부


⑤ 수출업체는 외국에 970에 영세율 매출하여 10의 이익을 남기고 매입시 징수당한 부가세 96을 공제(환급)받음



⑥ 외국업체는 국제시세 1,000보다 30 낮은 970에 수입함으로써 30의 이익을 남기게 됨



결국 폭탄업체가 포탈한 세액 내지 수출업체가 국가로부터 환급받은 96 중 2차 도매업체가 납부한 부가세 1을 제한 95를 범행에 가담한 전 업체들이 나누어 가지는 구조이다. 이를 수식으로 나타나면 다음과 같다.



○ 수입(10)+1차도매(10)+폭탄(25)+2차도매(10)+수출(10)+외국(30) 〓 포탈․부정환급액(95)



앞서 본 바와 같이 정상적으로 각 유통단계에서 일정한 마진이 발생할 경우 수입금지금이 다시 적정가격으로 수출될 수 없다. 수출가격이 수입가격보다 높아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출가격을 수입가격보다 더 낮게 할 수 있는 방법은 폭탄업체가 부가가치세를 탈루함으로써 금지금을 매입가격보다 낮은 가액(94․5%정도)으로 매출하여야만 한다. 폭탄업체는 그 손실을 탈루한 부가가치세로 보전하면 된다. 이렇게 폭탄업체가 금지금가격을 하락시킴으로써 전 거래과정에서 약간의 마진이 발생하고도 금지금은 수입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다시 수출이 가능해진다.


결론적으로 이와 같은 변칙거래를 통해 거액의 부가가치세 포탈이 이루어지고, 수입가보다 낮은 저가 수출로 인해 국부가 해외로 유출되며, 폭탄업체가 납부하지 않은 부가가치세 체납액만큼 국가는 재정적인 손실을 받게 되는 구조였다.
지금도 의문인 게 이 구조를 누가 기획했냐는 것이다. 대기업의 모 과장이 했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그 사람은 실무자였을 것이다. 실제 그 기업출신 모 임원이 회사를 퇴직한 후 금지금업체의 대표를 하는 것을 직접 봤다. 국세청 나온 후 몇년 지나서 금지금업업체 대표라는 사람의 상담이 들어왔는데 의외로 금지금거래구조를 잘 모르고 있었다. 몇개 항목을 질문해봤는데 그는 몰랐다. 계속 그들이 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한가지 희한한 것은 법무과 출신 직원이 세무대리를 하고 있었다. 세무사 공부만 열심히 했던 이들이 있고 일만 열심히 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막상 세무사일을 하면서는 법무과 출신이라는 게 도움이 되었는가 보다. 일을 하는 사람 따로 돈 버는 이 따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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