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법원은 아직까지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원칙적으로는 받아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책배우자가 아무리 이혼을 원한다고 해도 상대방 배우자가 이혼을 원하지 않으면 일반적으로는 유책배우자가 이혼 소송을 청구해도 그 청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예외적으로는 상대방 배우자가 정말 혼인관계를 유지하고 싶기보다는 보복이나 오기로 이혼을 거부한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여주지만, 매우 보기 어려운 경우들입니다.
상대방 배우자도 이혼을 하고 싶을 때에는 어떻게 될까요? 일반적으로는 유책배우자가 상대방 배우자에 대해서 이혼 소송을 청구했을 때, 상대방 배우자가 이혼에는 동의할 경우 반소로 이혼, 위자료, 재산분할, 친권 양육권, 양육비 청구 등을 하면서 결국 이혼에는 이르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유책배우자가 이혼 소송을 먼저 제기한 경우를 설명드렸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상대방 배우자가 유책배우자를 상대로 이혼을 청구했을 때는 어떻게 될까요? 상대방 배우자가 하는 말이 다 맞고, 증거도 충분히 제출했을 경우에 말입니다. 유책배우자는 그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 인정해야 될까요. 뭔가 억울하지 않을까요.
유책배우자라는 것은 누가 정하는 것인가요
누가 보아도 객관적으로 '유책배우자'가 명확한 경우들은 분명히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배우자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부정행위를 하였거나, 상대방 배우자에게 폭력을 행사하였거나, 도박이나 무리한 주식투자로 재산을 탕진하고 더 나아가 거액의 채무까지 부담하게 된 경우들 말입니다. 이런 경우 유책배우자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혼소송에서 '유책배우자'라는 것은 오히려 상대적이라서 내가 유책배우자이더라도 상대방 배우자도 유책배우자인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내가 '유책배우자'가 된 것에는 상대방 배우자의 책임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끔 이혼 상담을 신청하시는 분들 중에 이렇게 대화의 시작을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변호사님, 제가 유책배우자인데 어떻게 해야 되나요?" 스스로 먼저 유책배우자라고 인정하고 이혼 상담을 시작하는 경우들입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혼전문변호사인 저의 관점에서 도저히 '유책배우자'라는 것이 납득가지 않는 사건들이 많습니다. 특히, 상대방 배우자로부터 상당 기간 동안에 가스라이팅과 같은 심리적 압박, 학대를 당한 경우에 상대방의 인식에 맞추어 자신 스스로는 유책배우자로 인정하는 말도 되지 않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이혼 상담'이 목적이 되지 않습니다. 제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도 아니고, '심리상담전문가'도 아니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그저 지켜보면서 법률 상담만 할 수는 없습니다. 이와 같이 상대방 배우자로부터 말도 안 되는 궤변에 세뇌당한 상담자들에 대해서는 잘못된 생각과 인식을 바꿔드리려고 노력합니다. 이런 분들에게는 '이혼'이 목적이 아니라 '생존'이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이혼은 그 생존이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가령 부당하게 잡혀서 노예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고 가정해봅시다. 그 사람은 저에게 '근무환경의 개선'에 대한 법적 조언을 구합니다. 제가 모든 사정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그분에게 '근무 환경 개선'에 대한 법적 조언을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저는 변호사로서 그 사람에게 "여기서 노예 생활을 계속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당신은 노예가 아닌데 왜 그렇게 살고 있나요. 당신을 노예라고 하는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고, 그 사람이 당신에게 잘못했다고 지적하는 모든 말들은 다 사실이 아닙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당장 나오세요. 거기서 뭐하고 있는거에요."라고 말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처해진 상황에서 조금 더 나은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식 자체를 바꾸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자신의 결정에 따른 것이지만, 적어도 그 사람이 정상적으로 살고 있지 않다는 것,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제가 충분히 말을 해줄 수 있는 것이지요.
남편 말대로 제가 정말 잘못한 것 같아요
사회적으로도 인정받을만한 직업을 가지고 번듯한 직장에 다니고 있으며, 주위 사람들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는 아내가 있습니다. 그런데 집 안에만 가면 한 없이 작아지고 죄인이 되어 버립니다. 남편이 하나하나 하는 지적에 위축됩니다. 아내는 밤에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할 정도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남편은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지적을 하고 핀잔을 주기만 합니다. 처음에는 다툼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아내였으니까요. 그런데 남편은 억압적인 태도와 휘황찬란한 언변으로 대응하였습니다. 아내는 더 싸우면 부부관계가 더 깨어질까 봐 참고 넘어갑니다. 남편은 아내의 반항에 대한 벌로 침묵과 무관심, 갑갑해서 미칠 것 같은 집안 분위기를 선사합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가 아내의 생각 속에는 작은 암적인 존재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고 점점 커져만 갑니다. 바로 '자책'이라는 감정입니다. 그렇게 아내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유책배우자'가 되어 갑니다.
이와 같은 과정들은 장기간 반복되므로, 포로수용소의 담장은 더욱 견고해지고 더욱 높아집니다. 그녀는 스스로 탈출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됩니다. 친정 부모님께는 괜한 걱정을 끼치게 될 것 같아 말을 하지도 못하게 됩니다. 보통 '착한 딸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착한 딸이 착한 아내가 되었을 때 이런 문제들이 많이 발생합니다. 회사 사람들에게도, 친한 친구들에게도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이미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평범한 '나'로 인식되어 있어서 실제 말도 안 되는 현실에 처해져 있는 '나'를 보여줄 수도 없습니다. 상담 치료를 받아보지만 글쎄요. 제가 의사는 아니지만, 논리적으로 보았을 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사황이 개선되길 바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을 기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쉽게 말해서 집 안에 악취가 가득한 쓰레기가 있는데, 방향제를 몇 번 뿌린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지요. 잠깐 문제가 해결된 것 같은 느낌만 줄 뿐입니다.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만 줄 뿐입니다. 그렇게 상황은 악화되어 가고 나는 더 병들어만 갑니다.
'가짜' 유책배우자는 어서 돌아와야 됩니다. 눈을 똑바로 뜨고 자신이 처한 현실을 제대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스스로 말을 해야 합니다. "넌 잘못한 것이 없어. 잘못을 한 사람은 내가 아니야." 이런 인식이 있어야만 '생존'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이혼'은 생존을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내 소중한 인생에 찾아온 쓰레기를 내 집안에서 내 보내는 일입니다. 조금 힘들지만 해야 되는 일이지요.
제가 이혼 상담을 하면서 늘 이혼을 권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재결합할 가능성이 있는지, 부부관계가 개선이 될 여지가 있는지를 먼저 확인해보고 그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방법을 제안드리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강하게 이혼을 권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혼을 하지 않고 계속 현재 상황을 이어갈 경우 그 사람의 '생명' 자체가 위험해질 것 같은 경우들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생명'이란 '육체적 생명'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정신적 생명'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남편으로부터 폭행을 당해서 몸이 상할 수도 있지만, 남편의 정신적 학대에 나의 정신이 상할 수도 있습니다.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다친 정신으로 산다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것은 전혀 아니니까요.
'진짜' 유책배우자도 억울할 수 있다.
진짜 유책배우자에게 이혼 소장이 송달되면, '올 것이 왔다'라는 심정이 든다고 하시더군요. 상대방 배우자가 이혼 소장에 써 놓은 내용들이 뭐 다 맞는 말이라 뭐라 반박할지도 모르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혹시 모르니 변호사 상담이라도 받아보자고 생각하시고 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과 이혼 상담을 해보면 예상외로 해결책이 보이는 경우들도 많습니다.
"변호사님, 유책배우자는 맞지만 저도 너무 억울합니다. 이대로 끝내기에는 정말 억울하고 부모님께도 너무 죄송할 것 같아요. 평생 한이 될 것 같습니다."
이혼 소송은 부부간의 다툼이기도 하지만, 양가 집안의 다툼으로 확대되기도 합니다. 결혼 자체가 두 가문의 결합의 성격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이혼 소송은 '마지막 방어전'의 성격을 가지게 됩니다. 소송상으로라도 그간 상대방 배우자에게, 상대방 집안에게 하지 못했던 말들과 나의 억울함을 다 풀어낼 수 있는 절차이기도 합니다.
그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유책성'이 드러나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나의 유책성도 희석이 됩니다. 물론 일방적인 피해자가 있는 이혼 소송도 많지만, 혼인파탄의 책임이 양측 모두에게 어느 정도라도 인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나만 오롯이 '유책배우자'가 되는 것인가요? 그렇지 않게 됩니다. 사필귀정이라는 말처럼 나도, 상대방도 함께 잘못한 배우자로 인정이 됩니다. 이 과정에서 이혼 소송의 결과도 당초 예상과 다르게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생 억울하게 '유책배우자'의 낙인이 찍혀 살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고 노력한 결과로 자신의 억울함도 모두 털어내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스스로 판단하는 것보다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스스로 내가 '유책배우자'라고 판단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조금 더 영리하게 주위 가족들, 친구들, 지인들에게 물어보고 '유책배우자'라고 판단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조금 더 영리하게 이미 이혼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유책배우자'라고 판단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이혼전문변호사라고 항상 정답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혼전문변호사보다 더 많은 이혼사건을 실제로 경험한 일반인들은 없습니다. 그러니 지레짐작하기 전에 이혼전문변호사와 자신의 삶,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기를 권합니다. 혹시 모르잖아요. 지금까지 자신을 지배하고 있던 생각이 잘못된 생각이고, 자신이 살고 있던 현실이 '수용소'안의 삶처럼 배우자로서 어떠한 존중도 받지 못했던 삶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수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이혼 상담은 변호사에게
자신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자신'이어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정신적으로 다친 상태라면,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어떠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이혼 상담은 변호사에게. 인생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지옥 같은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 수도 있고, 더 지옥 같은 삶에서 살게 될 수도 있고. 너무나 중요한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