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효목 변호사 Apr 03. 2022

어린 신부의 '봄' 같은 이혼

사람이 이렇게 바보 같이 착할 수 있을까


이혼전문변호사로 일을 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을 봅니다.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사건을 분석해보면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는 사건들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특히 이혼 사건은 양쪽의 말을 다 들어봐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서로 입장 차이가 크지만 그럼에도 상대방이 '조금 더' 가해자인 것 같다는 판단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피해자와 가해자로 구분이 될 수 있기도 합니다. 



가끔씩 너무 바보 같이 착한 사람들을 의뢰인으로 만납니다. 형사사건에서는 '피해자'로, 이혼사건에서는 '원고'가 되는 사람들입니다. 너무 바보 같아서 형사사건에서는 누군가에 의해 '피의자'로 둔갑되기도 하고, 이혼사건에서는 상대방에 의해서 이혼 소송을 당하는, 즉, '피고'로 정해지기도 합니다. 



이런 분들의 특징은 너무 착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잘못을 찾기보다는, 내가 혹시 부족한 것은 없었는지 늘 돌이켜 봅니다. 바보 같은 짓입니다. 



저는 이런 분들이 이혼 상담을 받으러 오셨을 때 눈물이 쏙 나올 정도로 혼을 내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분들에는 이혼도 중요한 일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깨닫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바로 그 바보 같은 어린 신부, 그리고 또 바보 같은 그녀의 가족들 이야기입니다. 




 

한평생 착하게만 살아온 가족이 있습니다. 


아빠, 엄마, 그리고 딸들. 이렇게 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아빠와 엄마는 땀 흘려 일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알았고 가족이 최우선이었습니다. 그렇게 돈을 모아 가족을 위해서 쓰고, 다시 돈을 모아 가족의 꿈을 위해 썼습니다. 그 가족은 결코 부유한 편은 아니었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은행에서든 지인에게 서든 돈을 한 번 빌려본 적 없을 정도로 그렇게 성실하고 알뜰하게 평범하게 살아왔습니다. 어찌 보면 오히려 평범하지 않다고 해야 될 정도로 그렇게 착하게만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야 될 것 같은 이들 가족에게 위기가 왔습니다. 그 위기는 '사랑'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지금에서야 그것이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사랑임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사악함은 악함의 강도가 높아졌을 때 표현할 수 있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처음에는 악함의 강도가 약하더라도 지치지 않을 정도로 집요한 '꾸준함'이 있을 때 표현할 수 있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동화를 보더라도 악당은 항상 피해자를 오랫동안 주시하고 있고, 피해자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교묘한 방법으로 속입니다. 그녀에게 '사랑'을 들고 찾아온 남자는 이미 처음부터 그녀를 '이용'하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던 것 같습니다. 


그 남자는 그녀에게 자신의 부족함을 모두 보여주는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물론 그 뒤에는 자신의 사랑이 진심임을 강조하였고, 슬며시 자신의 경제적 부유함을 나타내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남자는 착한 사람들이 가장 하기 어렵다는 것이 '거절'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집요하게, 하지만 '진심'이라는 외투를 입고 그녀에게 마음을 열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녀는 너무나 착한 나머지 그 남자의 사랑이 진심이라고 믿었고, 그 남자가 스스로 드러낸 부족함을 채워주고 싶었고 안아주고 싶었습니다. 물론 그 남자의 경제적 조건들이 이와 같은 마음의 변화에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녀와 그 남자는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가 되었습니다. 





노예 같은 삶이었다는 표현만큼 더 나은 표현이 없다



물론 모든 경우에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경제적인 성공을 이룬 가정에서 나타나는 특징들이 있습니다. '확신'과 '무시', 그리고 '질타'. 자신들을 성공에 이르게 한 방법, 생활에 '확신'을 하게 되고, 그 확신에 바탕하여 그와 같은 성공에 이르지 못한 자들을 '무시'하게 됩니다. 그리고 새로 들어온 가족 구성원에게 '질타'를 하여 자신들의 성공에 어울리는 노력을 이제라도 하도록 강요합니다. 


그 '질타'는 '이용'으로 이전됩니다. 가족이 아닌, 근로자로 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또 필요할 때에는 가족으로 대우해줍니다. 철저하게 이용당하는 것이지요. 아내가 필요할 때에는 아내로서의 역할을 요구하고, 근로자가 필요할 때에는 근로자로의 의무를 요구합니다. 권리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하루 종일, 1년 내내 그렇게 아내와 근로자의 역할을 동시에 부여받습니다. 너무나 착한 나머지 조금이라도 불편한 기색을 보이면 반란으로 간주되어 철저한 응징을 맛봅니다. 가끔 '너 스스로 선택한 일인데, 왜 힘들다고 그러니?"라며 이 모든 문제가 자신에게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결국 몸과 마음이 다 아파 죽을 지경이 되어서야 벗어날 수 있다



이런 분들의 특징은 모든 환경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조금 더 잘하면, 내가 조금 더 참으면 이 환경이 다 나아질 것이라는 그런 말도 되지 않는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문제의 원인은 남편과 그 가족들에게 있는데, 자신이 그들의 요구를 모두 다 맞춰줄 수 있을 수도 없는데 어떻게 노력해서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 몸과 마음이 모두 병들어갑니다. 그렇게 모든 힘이 사라지기 전에서야 자각을 하게 되는 일들이 생깁니다. 보통 친정 식구들이 개입을 하거나, 시댁 식구들이 더 이상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제야 자신이 억울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혼 전문 변호사를 찾아옵니다. 





나이 어린 신부의 봄 같은 이혼


그녀는 나이가 어린데 너무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더 이상 남자를 믿을 수 없다는 말을 할 정도로 상처를 심하게 받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합당한 보상과 조속한 이혼. 그렇게 그녀의 이혼 소송이 시작되었습니다. 상대방 남편은 역시 예상대로 그녀 때문에 혼인관계가 파탄이 되었다면서 반소를 제기하기도 하였습니다. 


1심 판결이 우리 측에게 유리하게 선고되자, 상대방인 남편은 항소를 하였고, 우리 측도 전혀 양보를 하지 않고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상대방은 결국 2심에서는 1심보다 더 나쁜 결과를 받게 되었습니다. 인과응보라고 해야 될까요, 아니면 사필귀정이라고 해야 될까요. 둘 다 해당되겠네요. 


드디어 그녀는 그 남자와 그 남자의 가족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상처 속에 살고 있습니다. 아직 남자가 무섭다는 그녀. 세상에 처음 배신당한 것이 가장 큰 배신으로 다가온 것 같았을 것입니다. 


'봄'이라는 것이 그렇지요. 늘 따스함과 밝음만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가끔은 '꽃샘추위'가 다가오기도 하고, '봄 비'가 내리며 하늘도 흐려질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결국 '봄'은 꽃을 활짝 피워냅니다. 


그녀에게도 완연한 봄이 가득하게 될 날이 곧 올 거라 믿습니다. 이혼 사건이 끝났지만 여전히 1년에 한두 번 안부인사를 전해오는 그녀는 여전히 바보 같은 말들을 하고 바보 같은 생각을 하는 착한 사람입니다. 


그런 착한 사람들이 인정받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쁜 늑대들이 사라질 수 없다면, 적어도 그 착한 양들이 '늑대'와 '양'을 구별할 수 있는 안목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만일 그것도 어렵다면, 어쩔 수 없지요. 저 같은 사람들이 목동처럼 지켜봐 줄 수밖에요. 


그렇게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은 다시 세상에 나와서 하늘을 똑바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그분들 가정에 건강과 행복만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이전 글 :    (8)  이혼 후 그녀의 얼굴에 빛이 났다.

다음 글 :  (10)  마지막 방어전에 모든 것을 쏟다.

이전 08화 이혼 후 그녀의 얼굴에 빛이 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