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날, 그분을 만났습니다.
"변호사님, 잘 지내셨어요? 제 아는 사람이 이혼을 고민하고 있다고 해요. 변호사님께 상담을 좀 받아보고 싶다는데 시간 괜찮으시겠어요?"
예전에 사건으로 알게 된 의뢰인의 소개로 이혼을 고민하고 있다는 그분을 상담하게 되었습니다. 얼굴에는 긴장감이 가득하고, 몸은 전체적으로 긴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의 눈은 제 사무실 방 여기저기에 닿아 있었습니다.
그분에게서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분위기는 '예의'와 '품격'. 그리고 '어두움'. 이것이 제가 그분에게서 느낀 첫인상이었습니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내어드리고 긴장을 풀어드리기 위해 이런저런 얘기를 했습니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이라 그런지 그분의 긴장이 쉽게 녹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분의 마음 자체가 겨울이었으므로 아무리 따뜻한 커피를 마셔도, 분위기를 편하게 만들려는 대화를 하더라도 쉽게 녹여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랜 기간 버둥댔어요.
다른 이혼 사건도 마찬가지지만, 이 분의 경우에도 왜 이 분이 지금 이혼전문변호사 사무실에서 상담을 받고 있는지 믿기지 않았습니다.
시작은 너무나 사소한 일이었습니다. 한 번의 대화로 해결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대화의 기회를 놓쳤다면 맥주 한 캔 마시면서 서로 풀 수 있었을 문제였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상대방은 외면했습니다.
외면은 더 큰 외면으로 이어지고, 더 큰 금을 만들어 냅니다. 문제는 더 크게 이어집니다. 이제는 부부가 서로 생활하는 문제에까지 갈등이 이어지게 됩니다.
보통 여기서 '이혼'의 갈림길에 마주하게 되는 것인데, 이 분은 버텼습니다. 급류에 휘말린 사람이 나무에 이어진 줄을 잡듯이 그렇게 '결혼'이라는 줄을 잡고 놓지 않고 버텼습니다. 그렇게 버틴 결과 급류가 잠잠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분은 험난한 급류에서 벗어나 겨우 숨을 돌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상대방 배우자는 다시 그녀를 잡고 험한 급류 속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이번에는 아예 나무에 묶어진 '결혼'이라는 줄도 끊어버린 채. 더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그녀는 어떻게든 빠져나오려고 버둥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버둥대고 버둥대다가 많이 다치기도 했습니다.
이제 그저 급류에 몸을 맡기는 것이 더 다치지 않는 방법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몸에 힘을 뺀 채 급류에 몸을 맡겼습니다.
최선을 다했기에 미련도, 후회도 없습니다.
그녀는 한 남편의 아내였고, 두 아이의 엄마였으며, 사회에서 인정받는 인재였습니다. 그분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면 '밝음'만이 어울릴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녀의 주위에는 온통 '어두움'이 가득했습니다.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마친 그녀는 그제야 옅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보통 자신의 슬픔에 대하여 이야기를 할 때에는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제 방 상담 테이블 옆에는 항상 눈물을 닦을 수 있는 티슈가 있고 생각보다 빨리 떨어집니다. 그런데 이분은 눈물을 전혀 흘리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담담한 어투로 말을 했을 뿐입니다.
그녀의 이혼 결심은 확고했습니다. 그녀의 마음뿐만이 아니라 집 안에도 '어두움'이 가득하다고 했습니다. 상대방 배우자가 가족이 함께 살아가는 집 안에까지 어두움을 끌어드린 결과입니다. 문제는 남편이 집 안에서 그보다 더 한 어두움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아내는 몸과 마음이 썩어 문드러질 정도가 되었고, 한창 웃고 떠들어야 할 아이들까지도 웃음을 잃고 우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물론, 그녀의 남편도 남편 나름대로 힘들었고 아팠겠지요. 어두움을 스스로 만드는 사람은 그만한 이유가 있으니까요.
원하는 목표는 단순하고 명쾌하다.
그녀의 목표는 너무나 명쾌하고 단순했습니다. 일반적인 이혼소송에서 흔히 말하는 승소. 위자료와 재산분할을 많이 받고, 아이들의 친권과 양육권을 확보하고 싶어 하셨으며, 양육비도 많이 받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렇게 그녀의 이혼 소송이 시작되었습니다. 이혼 소송과정에서 남편이 소중한 혼인관계를 파탄 낸 책임에 대해서 하나씩 하나씩 입증을 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상대방은 사실이 아니라고 하였지만, 다시 반박되었습니다.
이혼 소송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녀는 평온한 일상을 찾았습니다. 이혼 소송을 시작하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별거를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온 집안에는 어두움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남편은 그제야 아이들이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아내도 남편과는 이혼을 해도 아이들에게는 아빠라는 존재를 그대로 남겨두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그간의 상처가 너무 컸는지 아빠를 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빠가 좀 더 노력을 했으면 어땠을까 싶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진심은 통하니까요. 그렇지만 제가 느끼기에 그분은 자신이 아빠라서 당연히 아이들을 자신의 맘대로 볼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믿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은 물건도 아니고, 권리의 객체도 아닙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소중한 존재입니다. 어느 누군가의 마음을 얻을 때에도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한데, 이미 상처받은 아이들의 마음을 돌리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까요. 그것조차 알지 못했다면 그것도 문제입니다. 그것을 알고서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것도 문제입니다.
완벽한 성공
이혼 소송에서는 어느 일방에게 완벽히 유리한 결과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위자료를 많이 받는다고 하여도 받은 상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고, 재산분할은 혼인파탄의 책임과는 무관하게 부부생활 중에 형성한 재산을 각자의 기여에 따라 나누어 갖는 것이기 때문에 '공평'한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사건에서 제가 소송절차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했었습니다. 그럴 때에는 이제 남은 것은 가정법원의 판결뿐. 이혼 사건에서는 보통 재판을 마치기 전에 한 번 정도는 '조정'절차가 진행이 됩니다. 그때에는 혼인파탄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각자가 보유하고 있는 재산의 내역은 어떠한지, 각자가 혼인생활을 어떻게 했는지, 아이들은 누가 키우는 것이 맞는 것인지와 같은 거의 모든 내용들이 밝혀진 상황이기 때문에 오히려 조정이 성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사건에서도 판결 선고 전에 조정기일이 지정되었습니다.
결혼식 때 신랑과 신부가 입장을 했습니다. 그때의 신랑과 신부가 이제 원고와 피고가 되어 조정실로 입장을 했습니다.
서로의 입장에 대해서 말을 합니다. 조정이 쉽게 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좋은 결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더 이상 바랄 수 없을 정도로. 조정기일 전에 꼼꼼히 준비를 하고 들어갔던 것이 신의 한수였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이혼 후 얼굴에 빛이 났다.
그분의 이혼을 이렇게 마무리하고, 새로운 일들에, 새로운 시간에 빠져 있을 때에 그분으로부터 이런 인사를 받았습니다.
"변호사님 저 기억하시죠? 새삼스럽지만 저 아주 잘 지냅니다. 시원한 바람맞으며 행복한 마음이 드네요. 이 모든 게 변호사님 덕분인 것 같아 새삼스레 인사드려요. 참으로 많이 감사합니다."
가끔 이와 같은 인사를 받으면 변호사로서 말할 수 없이 큰 보람을 느낍니다. 이보다 더 큰 칭찬과 인정이 어디 있을까 싶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는데, 칭찬은 변호사를 더 좋은 변호사로, 더 착한 변호사로 만들어 줍니다.
그분의 얼굴을 보는데, 마치 처음 보는 사람 같았습니다. 얼굴에 빛이 가득했기 때문이지요. 하루는 그분이 저희 사무실 근처에 일이 있어 오셨다가 케이크를 하나 선물로 사서 들고 방문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이혼 상담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분은 케이크만 전해주시고 돌아가셨습니다.
나중에 사무실 직원들로부터 이런 얘기를 듣고 그분이 예전 사건 의뢰인이었다고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직원분들은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실제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이셨다고 하더군요.
어두움에서 빛으로
누구나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분들의 어두움을 없애고, 빛으로 가득 채워드리고 싶습니다. 저 혼자만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저는 신이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실제로 어두움을 없애고 빛으로 가득 찬 삶을 사시는 분이 계시고, 그녀가 제 성공사례이니 가능할 것 같습니다.
실재하는 성공사례. 더 많은 성공사례로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행복해져야만 하니까요. 그리고 그녀의 얼굴에 빛이 사라지지 않기를, 날마다 더 빛나는 삶으로 가득 차기를 소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