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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효목 변호사 Apr 16. 2022

이혼은 딸도, 엄마도 크게 만든다.


엄마 이 아저씨가 그 변호사 아저씨야?


이혼 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의뢰인들과 자주 연락을 합니다. 의사소통은 실시간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보통은 전화통화로 사건에 대해서 연락을 주고받는 방법이 주로 이용됩니다. 이혼 소송에서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는데 그때는 제 사무실로 오시라고 해서 같이 대면해서 자료를 보고 어떻게 해야 될지 결정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린 딸아이를 둔 엄마가 찾아왔습니다. 엄마라고 하기에는 아직 어린 여성이었습니다. 특히나 평균 혼인연령이 많이 높아진 요즘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먼저 "딸아이가 있어요"라는 말을 듣기 전에는 그저 미혼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의 모습이었습니다. 



남편의 유책사유 때문에 이혼을 결심했다던 그녀는 남편의 가출로 몇 달간의 별거기간을 버틴 후였습니다. 얼굴은 많이 초췌해져 있었고, 어깨는 누군가가 힘껏 누르고 있는 것처럼 한 없이 내려와 있었습니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그 이유가 궁금해진 저는 그녀와 질문과 답을 반복하며 그녀의 인생을 종이 위에 적어나갔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저에게 이혼 사건을 맡겼고, 저는 그녀의 새로운 삶을 위해서 이혼 소장에 한 글자, 한 글자를 새겨 넣었습니다. 아이를 꼭 키우고 싶었던 엄마는 평소에는 아이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도 없었던 남편이 갑자기 양육권을 주장한다며 불안해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재산이 남편 명의로 되어 있는데 남편이 자신 몰래 처분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이혼을 하는 것도 억울한데 행여 재산분할까지도 전혀 받지 못하게 된 상태로 아이까지 뺏기게 될까 걱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혼 소장을 제출하였고, 상대방 남편이 이혼 소장을 받아 보았습니다. 남편은 이혼 사건을 쉽게 끝낼 생각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혼인파탄 책임이 우리 의뢰인에게 있다면서 이혼 반소장을 제출하였고, 역시나 딸아이에 대한 양육권을 주장하였습니다. 얼핏 보았을 때는 이혼 사건이 첨예한 다툼으로 가는 것 같은 모양새였지만 저는 전혀 불안해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이겨 놓은 전쟁이었으므로 더 잘 이기기만 하면 되는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불안합니다. 이미 남편 부동산에 대해서 부동산 가압류 신청까지 해두어 가압류 결정까지 받았다고 말해주어도 여전히 불안합니다. 그렇게 그녀와 이혼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던 중 전화기 너머로 그녀의 딸아이 목소리가 들립니다. 



"엄마! 이 아저씨가 그 변호사 아저씨야?"


"어 맞아. 엄마 잠깐 변호사 아저씨랑 통화 좀 할게!"



이혼 소송을 위해서 그녀가 발급받아온 '가족관계증명서'에 기재되어 있던 딸아이 'OOO'이 기록 속에서만 존재하다가 저에게도 현실로 나타난 순간입니다. 



그렇게 전화기 너머로 딸아이가 재잘거리며 노는 소리를 배경으로 이혼 사건의 진행상황에 대해서 통화를 하였습니다. 통화가 조금 길어지자 딸아이는 엄마를 계속 찾습니다. 시간도 좀 늦었으니 잠이 와서 칭얼대는 것 같기도 합니다. 



마무리 인사를 하면서 말했습니다. "OO아. 변호사 아저씨야. OO이도 잘 자!"


그녀가 딸아이에게 답을 하라고 하자, 그 아이는 저에게 "아저씨도 빠이 빠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지어지는 미소, 그리고 더 많은 재산분할을 받게 해 주어야겠다는 마음. 함께 생겼습니다. 






이혼은 많은 것을 변하게 한다.


이혼은 많은 것을 변하게 합니다. 결혼 전 일을 하다가 아이가 생겨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는 것에 몰두하는 아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혼을 하게 되면 다시 생활 전선으로 나가야 될 수도 있습니다. 많은 경우 그렇습니다. 법적으로 정해지는 양육비로 아이를 온전히 키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법적으로 정해지는 양육비는 사실상 최소한의 수준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엄마들은 다시 사회에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아이를 돌보아야 되는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지만요. 



다시 사건으로 연락할 일이 있어 그녀에게 전화를 하였습니다. 


"변호사님, 저 요즘 다시 자격증 공부하고 있어요." 어떻게 지내고 있냐는 안부 인사에 그녀는 이렇게 답을 합니다. 


딸아이를 안정적으로 키우려면 당장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좋지만 장기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직장을 찾고 싶다며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혼 소송을 하다 보면 새로운 시작을 하는 엄마들을 많이 봅니다. 시작은 성장을 의미합니다. 시작은 회복을 의미합니다. 시궁창 같았던 과거에서 벗어나 밝은 지상으로 올라오는 그녀들을 볼 때마다 뿌듯하고 기분이 좋습니다. 



법적인 다툼을 해결하는 이혼전문변호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혼 소송 수행일 뿐인데, 누군가의 인생에 자그마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은 참 의미 있는 일입니다. 



그녀는 딸아이가 하루가 다르게 크고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제가 보았을 때는 그녀도 하루가 다르게 크고 있었습니다. 엄마도, 딸아이도 함께 크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더 많이 행복해질 시간



그녀의 이혼 소송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남편으로부터 아파트와 자동차를 받게 되었습니다. 딸아이에 대한 친권과 양육권도 가져와서 엄마는 마음 편히 딸아이를 키울 수 있었습니다. 법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딸아이를 키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녀는 이혼 소송 결과에 만족해했습니다. 저는 카카오톡을 통한 업무 대화도 많이 하는데 그녀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 하루에도 몇 번씩 분주하게 바뀌는 것을 보면서 그녀가 얼마나 들떠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무거운 과거를 벗어던지고 가볍게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는 것은 평생 기대해왔던 여행을 가는 것처럼 참 설레는 일이겠지요. 



그녀의 딸아이와 다시 통화를 할 기회는 없었지만, 만약 통화를 했다면 이런 마음을 전할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안녕! OO아! 변호사 아저씨야. 엄마와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도록, 네가 잘 클 수 있도록 아저씨도 열심히 싸웠어. 이제 걱정하지 말고 엄마랑 잘 지내고 잘 먹고 잘 자면 돼! 안녕!"



그렇게 그 아이와 그 엄마의 이야기는 '행복'만이 가득한 동화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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