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오빠가 정말 착해서 문제예요.
하루는 어르신 세 분이 저희 사무실로 방문하셔서 이혼상담을 받으셨습니다. 보통 30대~50대 연령대의 경우에는 이혼 상담을 주로 혼자 받으러 오시고, 20대이거나 30대 초반인 경우, 아니면 비교적 고령인 경우에는 가족과 함께 이혼 상담을 받으러 오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혼은 개인의 가장 내밀한 부분이기도 하면서 개인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여 아무리 가족과 함께 왔다고 하더라도 꼭 혼인을 한 당사자에게 '함께 상담을 받는 것을 희망하는지'를 물어봅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같이 상담받아도 괜찮다고 답을 합니다.
이런 경우에도 이혼 상담의 주도권을 당사자에게 드리고, 가족들이 먼저 나서서 얘기를 하지 않도록 이혼 상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성장배경, 성향이라는 것은 오래도록 형성된 것이어서 비교적 내향적인 성향을 가진 당사자의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당사자보다는 가족들이 이야기의 주도권을 잡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날 오신 어르신 세 분은 이렇습니다. 노령의 신사 한 분. 한눈에 봐도 조용하시고 내향적인 성격을 가지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조금 나이가 어린 여성과 남성. 관계를 여쭈어보니 이혼 상담 당사자인 남자분의 여동생과 그 남편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래도 이혼 상담 당사자인 신사분보다는 여동생분이 말씀을 많이 하시겠구나라고 생각을 했더니 역시 여동생분이 먼저 말씀을 하십니다.
"변호사님, 우리 오빠가 진짜 너무 착해서 문제예요. 평생 바보같이 살아 놓고서 또 바보 같은 짓을 하려고 하니 보는 우리들이 속이 답답하지 않고 버티겠습니까. 이거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평생 착하게만 살았다는 그 신사분
이혼이 더 이상 흠이 아닌 세상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재혼도 더 이상 흠이 아닌 세상입니다. 오히려 더 좋은 인연을 만나 새롭게 시작하는 인생이므로 재혼은 충분히 축복받을 일입니다.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았더래요."
이혼전문변호사인 저는 이 노래는 들을 때마다 쓴웃음을 짓습니다. 계모는 무조건 나쁜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는 재혼 가정에서 서로 전 배우자와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을 데리고 와 함께 진정한 가족으로 잘 지내는 경우도 많습니다. 계모라고, 계부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친부, 친모보다 새아빠, 새엄마가 더 살갑게 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 신사분의 경우도 비슷했습니다. 그분은 과거 배우자를 먼저 하늘로 보내고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었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본 사람들이 한 여성을 소개해주었고, 짧은 교제 끝에 재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서로에게 전 배우자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있다는 것도 알았고, 함께 살면서 아이들도 함께 키우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함께 살고나서부터 이상한 일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퇴근을 해서 집으로 가고 있는데 집 앞에서 어떤 아이가 울고 있었고, 왜 울고 있냐고 물어보니 그 아이는 '이 집에 엄마가 살고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놀란 마음으로 자초지종을 확인해보니, 그녀는 이미 2번의 이혼 경험이 있었고, 첫 번째 배우자 사이에서 낳은 아이, 두 번째 배우자 사이에서 낳은 아이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그 신사분은 알지 못했었습니다. 추운 날씨에 밖에서 떨고 있는 아이, 그리고 그 아이를 외면하는 그녀. 신사분은 결심을 합니다. 그 아이를 데리고 와서 함께 키우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가족이 한 명 더 늘었습니다.
내 아이처럼 키웠을 뿐인데
그 당시만 하여도 주위 시선이 부담스러울 때였습니다. 이미 동네 사람들은 알만큼 다 알게 된 상태였습니다. 그 신사분은 혹여 자신의 아이들보다 아내의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다른 대우를 받으면 차별한다고 할까 봐 오히려 아내의 아이들을 더 챙겨주었다고 합니다. 운동화를 살 때에도 자신의 아이들보다 더 좋은 브랜드의 신발을 아내의 아이들에게 사주었다고 합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자신의 아이들은 비를 맞고 걸어가더라도, 아내의 아이들은 꼭 태워서 학교에 보내주었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아이들이 남자아이들이고 조금 더 나이가 많아 오빠여서 아이들도 이해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그 신사분은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아이들을 키웠다고 합니다.
이제 그 신사분도 나이가 들어 다니던 직장에서도 정년은퇴를 하였고, 소득이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돈을 벌러 나간다고 하면서 퇴근시간이 지나도 집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아내의 불평불만이 늘어갔습니다. 아내의 아이들은 이미 성장하여 성인이 된 이후였고 학비도 모두 다 지급이 된 상태였습니다.
아내는 남편에 대해서 이런저런 불만들을 늘어놓은 뒤 이혼을 요구하고 집을 나갔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그 신사분은 자신이 피고로, 아내가 원고로 기재된 아내의 이혼 소장을 가정법원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이제는 남편의 재산까지도 달라는 아내
한평생 아내의 아이들까지도 자신의 아이처럼, 아니 오히려 더 애지중지하면서 키어왔던 남편이었습니다. 자신에게 있는 재산은 노후를 위해서 마련을 해둔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가정일을 하기는 했지만 성실하지 않았고, 밖에서 일을 했다고는 했지만 월급을 생활비에 보태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아내는 남편을 상대로 혼인파탄의 책임을 물어 위자료를 청구하고, 재산분할금까지 요구하였습니다.
그 신사분은 한참을 고민했다고 합니다. 자신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잘못한 것이 없었습니다. 이혼 소장에 적혀있던 유책 행위를 한 적도 없었습니다. 자신이 아내를 생각하며 지금까지 성실히 살아왔던 모든 삶이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고 했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이 고통스럽다고 했습니다.
그 신사분을 위한 이혼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혼인파탄의 책임은 아내에게 있고, 아내에게 돌아갈 재산분할의 몫은 재산형성의 경위나, 아내의 기여도를 보았을 때 매우 낮다고 하며 남편이 아내를 상대로 이혼을 구하는 이혼 소송 반소장을 제출하였습니다.
불리해짐을 느꼈던 상대방은 합의를 택하다.
평행선을 달리던 이혼 소송은 점점 신사분에게 유리하게 흘러갔습니다. 상대방은 불리함을 느꼈는지 이혼 조정에 적극적으로 임하였습니다. 혼인기간이 어느 정도 되었고, 대부분의 재산은 남편 명의로 되어 있었기에 남편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아내에게 재산분할금을 주어야 했습니다. 이제 재산분할금을 어떻게 정하는지 문제만이 남았습니다.
처음에는 이혼에도 부정적이었고, 재산분할에도 부정적이었던 신사분은 갑자기 저에게 연락을 하셨습니다.
"변호사님, 생각해보니 내가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빨리 이혼을 해서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고 싶습니다. 원만하게 합의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신사분에게는 아내와의 혼인관계가 조금이라도 빨리 종결되기를 희망할 정도로 고통의 나날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이혼 조정은 진행되었고, 상대방은 당초 요구했던 재산분할금보다 상당히 적은 재산분할금을 받는 것으로 하기로 하였습니다.
이제 그 신사분은 자신의 억울한 마음이 이혼 소송으로 조금이라도 풀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혼 소송 결과에도 만족한다고 하셨습니다. 이제는 그동안 챙겨주지 못했던 자신의 아이들을 더 챙겨주면서 함께 살겠다고 했습니다.
한평생 바보같이 착하게만 살았던 그 신사분에게 언젠가는 착한 마음씨의 대가가 주어지리라 생각합니다. 비록 이혼 소송은 유리하게 끝이 났지만 아직도 그분에게 돌아갈 대가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더 많은 착함의 대가가 주어져야, 그래야 조금이라도 공평한 세상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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