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절망스러운 상황이 있을까
몇 년 넘게 연락을 하지 못했던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잘 지냈어?" 라는 안부인사로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가까운 친척 중 이혼을 해야 되는 사람이 있는데 이혼 소송을 맡아줄 수 있냐는 요청으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이혼 소송은 반드시 꼭 해야 되는 것은 아니고, 상대방 배우자의 태도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가정이 회복되는 경우도 있으니 상담을 좀 해보아야 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대략적인 내용에 대해서 말을 해주는데, 제가 보아도 반드시 이혼을 해야 되는 경우에 해당하였습니다. 아내 분과 직접 상담을 해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아야겠다고 하여 그 분과 이혼상담 일정을 잡았습니다.
그렇게 대면하게 된 아내 분. 세상에서 이보다 더 어두운 사람이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더 수척해질 수 없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상했던 그녀는 자신과 남편의 이야기를 시작하였습니다.
"항상 좋기만 한 부부가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결혼 생활 내내 외로웠어요. 남편은 일을 해야 된다는 이유로 이곳저곳 다른 도시로 다녀서 함께 지냈던 시간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가끔씩 함께 지내는 것이 좋았어요. 다시 먼 도시로 가서 일을 해야 된다고 해서 말리고 싶었지만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서도 남편의 소득이 필요했기에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고, 급한 수술을 마쳤습니다. 이미 많이 다친 상태에서 병원에 도착해서 수술을 해도 완치가 어렵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남편의 아내로서, 아이들의 엄마로서 무너질 수 없다는 생각에 약해지는 마음을 몇 번이나 잡았어요. 수술을 마치고 의식이 없는 남편을 옆에 두고, 그제야 남편의 소지품들을 챙길 수 있었어요. 그런데 남편의 휴대전화에서 다른 여자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저 몰래 개인 용도로 엄청난 빚을 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유흥업소에 출입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더 이상 그 사람이 남편 같지 않아요. 그런데 시댁 식구들은 제가 아내라서 남편을 간병해야 된대요. 변호사님, 저 좀 이혼하게 도와주세요."
남편이 갑자기 쓰러져서 의식도 없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절망적일 텐데, 그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것과 빚도 많고 그동안 가정을 위해서 성실히 일을 하는 줄 알았는데 밤새도록 유흥업소를 출입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까지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절망스러울까 싶었습니다. 더욱 최악이었던 것은 남편의 가족들은 자신에게 아내로서의 역할을 다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누구 하나 저에게 사과하지 않았어요.
"남편이 다른 여자와 부정행위를 하고, 저 몰래 그렇게 많은 돈을 빌려서 다 술 마시고 여자 만나는데 돈을 써버려서 빚더미에 앉았는데, 그 누구도 저에게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의 병원비조차 보태주지 않았어요. 남편에게 돈을 빌려준 채권자들은 남편이 쓰러져 이자를 갚지 않자 변제 독촉장을 보내오기 시작했어요.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집은 남편 명의 아파트인데 이마저도 팔아서 빚을 갚아야 될 것 같아요. 저에게 사과를 해야 될 남편은 병상에 누워있고요. 저에게 남은 것은 아이들과 이 모든 부담감뿐입니다."
이야기를 다 들어보니 이혼전문변호사로서 판단이 섰습니다. "가장 빠르게, 가능한 많은 돈을 받고 이혼시킨다."
남편의 유책사유는 명확하였습니다. 당연히 위자료 지급 책임이 인정되는 경우였습니다. 하지만 남편에게 이혼소송의 판결로 위자료 지급의무가 정해지더라도 남편에게는 다른 재산이 없어서 집행을 해서 돈을 받을 수 없는 경우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재산분할 판결을 받더라도 집행을 받기 어려웠습니다. 이미 남편의 채권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남편은 질병으로 인한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처리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되었다는 이유로 '피성년후견인'이 된 상황이어서 남편과 협의이혼을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아내 분이 처해진 상황도 절망적이었지만, 이혼 소송에 관한 상황도 낙관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이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혼 소송을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사건을 맡고 얼마쯤 지났을 때 상대방 측으로부터 원만히 이혼을 하는 것에 동의하고, 남편에 대해 나온 보험금은 아내가 전액 수령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제가 검토해보았을 때 그 보험금을 받는 것이 아내 분에게 가장 많은 돈을 받도록 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에 이제 남은 것은 빠르게 이혼을 하는 것만 남았습니다.
이혼 상대방이 '피성년후견인'일 때 일반적으로는 '성년후견인'이 가정법원으로부터 소송대리허가를 받으면 피성년후견인이 재판에 출석할 수 없어도 성년후견인의 소송행위로 이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상대방 측에게 소송대리허가를 받는 방법에 대하여 안내를 드리고, 가장 빨리 이혼을 할 수 있는 방법인 '이혼 조정 신청'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이혼 조정 성립, 그녀의 해방
이미 모든 조건에 대해서 협의가 다 된 상황이니 이혼 조정기일에서도 원만히 조정이 성립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누구도 그녀에게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아내 분은 그것이 너무 억울하다고 하였습니다.
"사과는 사과를 할만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고, 사과를 할만한 사람들은 처음부터 그런 잘못을 하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제가 고생 많이 하신 것 알고 있으니, 제가 대신 위로를 드릴게요."
이 말이 얼마나 아내 분에게 위로가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저라도 해야 될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이혼해야만 하는 사건이, 이혼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과거 힘들었던 기억을 뒤로한 채 그녀의 앞길에는 좋은 일만 펼쳐지는 것입니다. 꼭 그렇게 되어야겠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적어도 공평하다고 한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