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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효목 변호사 May 06. 2022

아이까진 포기할 수 없다.

친권자 및 양육자 지정에 관하여

이해가 되지 않네요.

배우자로부터 이혼 소장을 받은 분들은 거의 같은 생각이 드실 것 같습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자신이 잘못한 것도 있겠지만, 소장에 적혀 있는 유책사유들은 하나같이 거짓말이거나 과장되어 있을 때 느끼는 당혹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위자료와 재산분할이야 어차피 이혼 소송까지 제기한 마당에 당연히 조금이라도 더 받고 싶은 욕심이 생겨 청구하였다고 해도, 평소에 관심도 없던 아이까지 자신이 키우겠다고 하는 그 마음은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지금까지 배우자는 집에 들어와도 아이와 한 번 제대로 놀아주지도 않았고, 예방접종을 한 번이라도 챙겨본 적도 없으며,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하는 부모 참관 수업도 가 본 적 없었고, 아이한테 인사도 하지 않은 채 무작정 집을 나가버렸으면서 아이를 키우겠다고 하는 말도 되지 않는 주장을 한다면서 말이지요.


심지어 상대방 배우자는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아이를 키운 자신에 대해서 '양육에 부적합한 이유'를 지극정성으로 적어두기까지 하였으니 얼마나 어이가 없는 일인지 개탄하십니다. 




입장은 분명하다. 


이런 경우에 이혼상담을 해드리고 나서 의뢰인들이 취하는 입장은 분명합니다. 


1. 이혼에는 동의한다. 나도 살고 싶지 않다. 오히려 내가 반소로 이혼 청구를 하겠다. 
2. 위자료는 오히려 내가 받아야지.
3. 재산분할은 최대한 유리하게 받아야지.
4. 절대 아이만은 뺏길 수 없다. 양육비도 많이 받아내겠다.


대부분의 경우 친권, 양육권에 관하여는 절대로 양보를 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아이들의 친권, 양육권은 협의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는 입장인 것입니다. 


그렇게 아이들의 친권, 양육권에 대한 법적 공방이 시작됩니다.  






기준은 간단하다. 


이혼 사건에서 법원이 아이들의 친권자 및 양육자로 누구를 지정할 것인지에 관하여는 여러 가지 판단 기준이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기준은 '엄마와 아빠 중 누구를 친권자, 양육자로 지정하는 것이 아이들의 행복에 가장 적합할 것인가'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다시 여러 가지 판단 기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을 지금 현재 누가 양육하고 있는지,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주로 누가 양육을 해왔는지, 아이들을 양육하였을 때 양육자들의 태도는 어땠는지, 엄마와 아빠가 소득생활을 하고 있는지, 엄마와 아빠에게 급한 일이 있었을 때 아이들을 대신 봐줄 다른 사람들이 있는지, 엄마와 아빠에게 폭력성, 우울증, 알코올 의존증, 심각한 병세와 같은 신체적, 정신적 문제가 있는지와 같은 다양한 기준들을 놓고 종합적으로 친권자와 양육자를 누구로 지정하게 될 것인지를 평가하게 됩니다. 


이혼전문변호사로서 이혼 사건을 수행할 때 분노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잘못은 자신이 했으면서도 반성하지 않으며 오히려 상대방 배우자를 비난하는 경우 분노합니다. 그렇지만 가장 크게 분노할 때에는 '아이를 키울 마음도 없으면서, 아이를 사랑하는 상대방 배우자의 마음을 악용하여 이혼 소송에서 유리하려고 하는 의도가 보일 때'입니다. 


그렇게 아이를 마음대로 데려가서는 아이는 제대로 키우지 않으면서 이혼 사건에서는 마치 아이를 정말 사랑하는 것과 같은 거짓된 태도를 보이는 것이지요. 물론 이에 대해서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적극 상대방의 허위 주장에 대해서 반격합니다. 


거짓은 진실을 이기지 못하듯이 상대방의 허위 주장은 거짓으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아이를 이혼 소송의 볼모로 삼는 태도는 지탄받아야 마땅합니다. 엄마와 아빠의 이혼으로 이미 불안해지고, 상처를 받은 아이들인데 이혼에서 유리하기 위해서 아이를 볼모로 잡고 있는 기간 동안에 아이가 받을 상처를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지게 됩니다. 엄마 없이는 한 번도 잠을 자본 적 없는 아이가 하루아침에 엄마와 생이별하여 울다가 지쳐 자는 모습을 생각하면 저도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픕니다.  




상대방의 계획이 무너졌을 때


생각보다 많은 경우 상대방이 소송 과정 중에 친권과 양육권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소에도 아이를 사랑하지 않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변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양육하는 것에는 많은 희생이 필요합니다. 잠을 줄여야 하고, 장도 봐서 요리도 해야 하고, 준비물이나 숙제도 챙겨야 할 것이 많고, 때때로 옷이나 운동화도 챙겨주어야 합니다. 아프지 않을 때는 그래도 버틸만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가 아파서 밤에 잠도 잘자지 못할 때에는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이를 이겨내는 것은 아이에 대한 사랑인데, 그런 의미의 사랑이 없는 부모는 아이가 '짐'처럼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아이의 친권과 양육권을 포기하는 것도 나름 책임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니 최악은 면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다시 이번에는 말을 바꾸어 자신의 아이에 대한 양육비 지급의무를 최대한 경감하려고 노력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예전에는 아이를 제대로 키우려고 하면 양육비가 많이 든다면서 상대방 배우자에게 많은 양육비를 요구했던 사람이 이제와서는 입장이 바뀌니 자신의 환경이 어렵고 아이를 키울 때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지 않는다면서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거나, 아예 적은 금액으로 정해달라고 하는 것이지요. 


상대방의 소송 계획은 무너졌고, 마지막 남은 그의 체면도 모두 무너졌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공의로운 판결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아이까진 포기할 수 없습니다. 


 "변호사님, 결혼식을 올릴 때 행복한 미래를 꿈꿨지만 포기했습니다.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것을 바랐지만 포기했습니다. 위자료와 재산분할도 많이 받으면 좋겠지만 법원 판단에 따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만큼은 절대 포기할 수 없습니다. 상대방이 아이를 키운다는 것을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고, 제가 아이와 떨어져 산다는 것은 죽기보다 싫은 일입니다. 아이만큼은 절대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혼 전문 변호사이지만 아이의 친권과 양육권 문제가 첨예하게 대립할 때에는 저도 의뢰인의 마음인 엄마의 마음으로, 아빠의 마음으로 사건을 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재판 서면에 힘이 들어가게 되고, 재판 법정의 변론에 진정성이 더해지게 됩니다. 


이런 마음들이 모여 결국 아이들의 법적 친권자 및 양육자로 의뢰인이 지정이 되었을 때 느끼는 안도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였던 의뢰인을 생각하면 이제야 아이와 함께 따뜻한 밤을 보낼 수 있게 해 드린 것 같아 저도 마음 편한 잠을 잘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또 누군가에게 행복을 찾아준 것 같은 마음이 들 때 많은 보람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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