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포럼을 떠나기로 한 날, 팀장님 방 앞에서
“변호사님, 저 그만두려고 합니다.”
대형로펌을 퇴사하기로 결심하고 팀장님께 그 말을 꺼내는 순간이, 그 어떤 순간보다 어려웠다. 내가 일하던 법무법인 세종은 오래전부터 꿈꾸던 직장이었고, 갓 로스쿨을 졸업한 나에게 개인방과 높은 급여, 비서를 제공하는 곳이었다. 분에 넘치는 조건이었다.
퇴사를 결심하는 데에도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했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팀장님 방 앞까지 갔다가 돌아오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손을 올렸다가도 노크를 하지 못한 채 돌아섰다.
그때의 나는 갓 태어난 아들이 있는 외벌이 가장이었다. 매달 나가는 생활비와 대출 상환을 생각하면, 퇴사는 선택지에 없어야 맞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야기를 꺼냈다. 다만 그 순간에도 확신은 없었다. 이 선택이 맞는지 끝내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더 두려웠다.
결국 퇴사는 한 번의 결심으로 끝나지 않았다. 처음 말을 꺼낸 이후에도 몇 번이나 마음이 흔들렸고, 최종적으로 회사를 떠나기까지 두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은 결정을 번복하지 않기 위한 설득의 시간이기도 했고,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한 시간이기도 했다.
퇴사 이후의 삶에 대해 확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잃게 될 것들이 더 또렷하게 보였다.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돌아오는 말들은 서로 달랐다. 한 선배는 “세종급 로펌을 나가면 다시는 못 돌아간다”고 했고, 개업한 친구는 “진작 나왔어야지”라고 했다. 누군가는 내가 잃을 것을, 누군가는 내가 얻을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둘 다 진심이었지만, 둘 다 정답은 아니었다.
그때 알게 됐다. 조언은 결국 조언자의 인생에서 나온다는 것을. 각자의 경험과 가치관 속에서 충분히 타당한 말들이었지만, 그것이 그대로 내 삶의 답이 될 수는 없었다. 새벽마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느꼈던 막막함, 그럼에도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느꼈던 직관은 나 외에는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변호사로 일하며 의뢰인들에게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변호사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는 그 질문에 늘 비슷하게 답한다. 가능한 선택지와 각각의 장단점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어떤 선택이 옳은지는 대신 정해줄 수 없다고. 같은 사건이라도 의뢰인의 성격과 상황, 감당할 수 있는 리스크에 따라 답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나의 퇴사도 다르지 않았다. 누구도 대신 답을 줄 수 없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자, 오히려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정답이 없다면, 오답도 없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선택의 순간은 여전히 어렵다. 다만 두려움 속에서 내린 선택이라도, 그것이 온전히 나의 것이라면 그 선택은 결국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고, 그런 선택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든다는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