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준호 Dec 24. 2023

광합성

#1.

범죄피해자분과 상담을 하였다. 사람에게 큰 상처를 받은 그분은 언제부터인가 집밖으로 나오길 거부하셨던 것으로 보였다. 나에게도 사정을 설명하며 화상회의로 상담을 진행해도 괜찮냐는 질문을 하였다. 가능하면 대면상담이 좋지만, 원하신다면 온라인도 괜찮다고 답변했다. 자료들은 미리 이메일로 받았다 사실관계도 어느 정도 파악했다. 약속한 날, 약속한 시간. 그분께 화상회의 url을 보내었다. 곧 누군가가 들어왔다. 대화명을 보니 피해자분이었다.


'안녕하세요 변호사 정준호라 합니다'

안절부절못하는 그분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어 자기소개를 했다. 그분도 자신을 소개했다. 사소한 이야기를 꺼내며 따뜻한 분위기를 조성하려 했다. 조금씩 자신이 겪은 일을 꺼내기 시작하셨다. 논리 정연 한 건 아니었다. 시간순대로 설명한 것도 아니었다. 어떤 증거가 있는지도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다. 머릿속에 사건이 떠오르면, 당시 상황, 가해자 행동, 자신이 느낀 감정을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꼈다.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수록, 점점 이야기는 자신에게로 옮겨갔다. 그 사건 이후 사람에 대한 두려움으로 더 이상 사회인으로 살 수 없는, 아무도 만나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로서의 삶에 대해.



#2.

고3시절. 아무 목적 없이 수능이란 결승점을 통과한 이후에 남은 것은 허무함뿐이었다. 그는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사라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와 가까이 지내면서 학교에 가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하루종일 집에서 게임만 했다. 게임을 할 때에는 그를 잠시 잊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컴퓨터를 끄는 순간 그는 다시 나를 낚아채어갔다. 그렇게 나는 그에게 휘둘려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그의 무게를 견디기 어려울 때 즈음 내 삶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생각에 다다랐다. 죽음만이 유일한 해결책인 것 같았다.


그즈음 한 사람에게서 문자가 왔다. 방학인데 학교에 계속 안 보여서 밥이나 먹자는 것이었다. 옷을 입고 집 밖을 나서는데 햇볕이 눈부셨다. 태양 빛 아래에서 버스를 타고, 사람을 만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자 그는 내 곁에서 물러났고, 삶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광합성은 식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도 태양 빛을 쬐어야 살아갈 에너지가 생긴다는 것을.



#3.

상담을한지 한시간이 훌쩍 넘어갔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 과거 모습이 떠올랐다. 스스로 사람들로부터 고립시키고,   감옥 속에서 나오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다. 상담을 마무리하고 난 다음에도 며칠 동안 이야기의 흔적들이 마음에 남아있었다. 염려가 되었다. 문득 커피를 좋아 한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짧은 메세지와 함께커피 쿠폰을 보냈다. 혹시라도 커피 가게에 가는 길 위에서 햇볕을 보고 따사로움을 느끼면서 스스로를 옥죄고 있는 자기 자신의 감정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수 있기를 바라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