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재벌 총수의 이혼 소송에서 20억이라는 천문학적인 위자료가 책정되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통상 위자료 액수를 가늠할 때 기준이 되어 온 것은,
"유책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와 정도, 혼인관계파탄의 원인과 책임, 배우자의 연령과 재산상태 등 변론에 나타나는 모든 사정을 참작"하여 법원이 직권으로 정한다는 것이었다.
유책배우자에 대한 위자료 수액을 산정함에 있어서는, 유책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와 정도, 혼인관계파탄의 원인과 책임, 배우자의 연령과 재산상태 등 변론에 나타나는 모든 사정을 참작하여 법원이 직권으로 정하는 것이다(대법원 1987. 5. 26. 선고 87므5, 6 판결, 대법원 2004. 7. 9. 선고 2003므2251, 2003므2268 판결 등 참조).
그런 기준에서 보자면 이번 판결은,
'유책배우자의 재산상태'를 고려해 '법원이 직권으로' 판단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응 타당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한 개인이 겪는 정신적 고통을 어찌 돈의 많고 적음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이번 판결이 던진 근본적인 화두는 위자료의 산정 기준에 대한 것이다.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위자료 액수를 좌우하는 현실이 과연 합리적이고 공정한가.
같은 이혼 사건을 겪고도 배우자의 재산상태에 따라 위자료에 수십 배 차이가 나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가.
(배우자의 재산상태에 따라 재산분할을 많이 받는 것은 충분히 납득할만하다 생각한다.)
심지어 살인 사망 사건의 경우 위자료가 아무리 많이 인정되어도 2억 원을 넘지 못하는데,
누군가의 이혼 소송 위자료는 20억이라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금전적 보상으로 인간의 고통을 계량화할 수 있는가.
법의 기본 정신은 만인에 대한 평등이다.
하지만 위자료를 둘러싼 현실은 이 기본 전제를 무너뜨리고 있다.
사회적 약자의 고통은 줄어들고 특권층의 고통은 부풀려지는 모순.
이는 구조적 불평등을 조장하고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위험한 신호탄이 아닐 수 없다.
위자료를 비롯한 손해배상 제도 전반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개혁이 필요한 대목이다.
물론 구체적 사안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전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말하긴 어렵다.
사법부의 고유한 영역을 존중하는 것은 법치국가의 근간이다.
하지만 특정한 판결이 사회 구성원 다수에게 공감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을 조장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사회적 병폐를 낳을 수 있다.
개별 판결에 희비를 거는 것보다 제도 개선의 목소리를 모아가는 지혜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번 판결이 남긴 또 다른 화두는 '돈'으로 인간의 삶을 재단하는 풍조에 대한 성찰이다.
사랑과 행복, 가족의 의미를 돈으로 환산하려 드는 세태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아무리 거액의 위자료라도 인생의 참된 의미를 담보하진 못한다고 생각한다.
세속적 기준에 인생을 맡기지 않고 참된 행복을 좇는 삶의 자세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이번 판결이 단순히 수십억 대 위자료 및 1조가 넘는 재산분할액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를 성찰하는 거울이 되길 소망한다.
진정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이며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세기의 이혼판결 이면에 감춰진 질문들에 답을 모색하는 일,
그것이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부여된 책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