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변잡기 May 30. 2024

밤양갱과 연양갱 사이

주말의 어느 오후, 드라이브를 나갔다 돌아오는 차 안.


차 안에선 잔잔한 멜로디가 흘러나오고, 뒷좌석에 앉은 두 딸은 음악에 맞춰 무언가를 콧노래로 흥얼거린다.


귀를 기울여 보니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디단 밤양갱~ 밤양갱~ 내가 먹고 싶었던 건 달디단 밤양갱 밤양갱이야~"라는 노랫말이 들려온다.

     

그 순간 30년도 더 된 기억 저편, 내 유년의 어느 한 페이지가 펼쳐진다.


동네 골목 어귀, 우리 가족의 방 한 칸 보금자리이자, 어머니가 운영하시던 조그만 구멍가게.


방과 후 신나게 집으로 뛰어오면 어김없이 녹진한 식감에 달콤한 맛이 일품인 ‘연양갱’ 하나를 건네주시던 어머니의 미소가 눈앞에 선하다.


오물오물 양갱을 씹으며 친구들과 함께 뛰놀던 그 시절의 감촉이 지금도 손끝에 남아있는 듯하다.


차창 밖으로는 초여름의 푸른 하늘이, 딸들의 노래는 어느덧 차 안 가득 퍼져나간다.




밤양갱이라...


묘하게 익숙한 그 말이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어릴 적에는 밤양갱보단 연양갱이 더 인기였는데 말이다.


세대는 달라도 아이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양갱의 매력만큼은 여전하구나 싶어 괜스레 흐뭇해진다.


언젠가 아이들에게 양갱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너희들 밤양갱 좋아하지? 아빠는 어릴 때 연양갱이라고 하는 걸 참 좋아했단다. 포장은 다르지만 그 맛은 꽤 비슷할 거야. 아빠는 너희처럼 어릴 때 연양갱 먹으면 늘 행복했거든."


"그럼 아빠도 우리처럼 밤양갱 노래 불렀어요?"


"음... 그때는 밤양갱 노래가 없었던 것 같은데. 있었다면 아빠도 흥얼흥얼 불렀을 거야. 양갱 먹는 재미는 똑같으니까 말이야."


여든에 지어 스물에 고쳐도 변치 않는 건 부모와 자식 간의 마음.


그 짧은 대화 속에서 세대를 잇는 행복의 정서가 오롯이 전해져 온다.


아주 오래전 구멍가게 앞에서, 지금은 차 안에서 이어지는 우리 가족만의 달콤한 교집합.


그 순간을 관통하는 애틋한 사랑의 온도를 그제야 깨닫게 된다.


연양갱을 먹으며 느꼈던 그 옛날의 작은 행복들.


달콤한 맛에 젖어들던 순수했던 감정의 편린들.


그 소박한 설렘을 지금의 내 아이들도 밤양갱을 통해 고스란히 느끼고 있음이 놀랍고도 감사하다.




그렇다.


나와 두 딸을 잇는 끈은 결국 소소한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깨알 같은 기쁨일 터.


차창 밖 풍경이 스쳐 지나가듯 골목길 구멍가게 앞 추억이, 뒷좌석에서 밤양갱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양갱 하나에 녹아든 세월의 흔적.


별것 아닌 것 같은 그 일상의 소중함을 우리는 대물림하고 있었다.


한 입 한 입 양갱을 씹듯이 지나온 시간을 음미하고 되새김질하고 싶어 진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따스한 온기까지 곁들여서.


오늘도 내일도 차 안에서는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디단 밤양갱~ 밤양갱~" 노랫소리가 울려 퍼질 것이다.


그 노랫말 하나하나에 아이들의 웃음기가, 아빠 미소가, 우리 가족의 단단한 유대가 배어난다.


밤양갱과 연양갱 사이, 그 달콤한 추억의 가교를 오래오래 지켜가며 살아가련다.


쌓이고 이어진 소중한 순간들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작가의 이전글 고향, 기억 속 풍경과 변화하는 현실 사이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