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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변잡기 May 29. 2024

고향, 기억 속 풍경과 변화하는 현실 사이에서

넌 어디서 왔니?

누군가 내게 고향을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경상남도 통영'이라 답할 것이다.


그 중에서도 '동피랑'이라는 작은 마을,


어린 시절 내가 뛰놀던 그 골목과 언덕이 내겐 고향의 전부나 다름없다.


하지만 '동피랑'을 떠올리는 이들에게 그곳은 이제 '예쁜 벽화 마을'로 통한다.

동피랑 벽화

가파른 산비탈 위에 들어선,


그래서 '달동네'로 불리던 초라한 마을은 이제 아름다운 벽화로 단장한 인기 있는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동피랑 벽화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동피랑'을 거닐며,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에 복잡한 심경을 느낀적이 있다.


예전에 친구들과 숨바꼭질하며 뛰어다니던 비탈길은 이제 포토존이 되었고,


가족들과 함께 살았던 낡은 집은 카페와 기념품샵으로 변모했다.


동피랑 마을 카페


어린 시절 내가 고향에서 마주했던 풍경과,


지금 관광객의 눈에 비친 모습 사이에는 묘한 괴리감이 존재한다.


낮에 동피랑에서 바라본 강구안

그럼에도 '동피랑'은 여전히 나에게 고향이다.


그저 풍경이 바뀌고 건물이 새로 생겼다고 해서 그 곳이 내 마음속에서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어쩌면 물리적 공간이 아닌,


그곳에서 보낸 나의 찬란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인지도 모른다.


주변의 모든 것이 변해도 그때 느꼈던 행복과 설렘만큼은 영원히 변치 않을 추억으로 남아 있다고 믿는다.

밤에 동피랑에서 바라본 강구안


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한 생각도 든다.


 '동피랑'은 이제 온전히 주민들만의 공간이 아니게 되었으니 말이다.


관광 상품화된 고향에 대한 복잡한 속내는 비단 나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공감할 법한 심정일 것이다.


정주 공동체의 해체, 지역 상권의 변화 등 고향의 변모가 초래하는 사회, 경제, 문화적 영향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더욱이 초고속 이동과 초연결 사회를 살아가는 요즘 세대에게 과연 물리적 고향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


기성세대가 품었던 고향에 대한 로망과 미학을,


디지털 원주민들은 어떻게 재해석하고 계승해 갈 수 있을까?




비록 고향이 내 기억 속 모습 그대로 존재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그 안에 담긴 정신만큼은 앞으로도 우리 삶의 어딘가에 스며들어 있기를 소망한다.


눈앞에 펼쳐진 역동적인 풍경에 희미해진 과거의 흔적을 겹쳐 보며,


나는 내 개인적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가 나아갈 길을 생각해 본다.


외형의 변화를 넘어 본질을 꿰뚫어 보는 혜안,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균형감각, 그 속에서 미래를 꿈꾸는 상상력.


고향을 바라보는 태도 그 자체가 곧 우리가 이 사회를 대하는 자세와 닮아 있는 건 아닐까.


기억 속 풍경과 변화하는 현실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기를,


오늘도 마음속 고향을 그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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