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딸아이 방에 들렀다가 놀라고 말았다.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숙제 더미를 보는 순간, 약 30여 년 전 내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혼란스러웠다.
지금이 몇 년도더라.
2024년, 내가 국민학생이던 80년대 후반, 90년대 초중반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딸아이는 올해 초등학교 3학년, 꼬마 아가씨다.
그런데 책가방에서 쏟아져 나온 숙제들을 보자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국어, 수학은 기본이고 영어 문장 쓰기, 독서록까지. 게다가 학원 숙제며 예습 자료들도 수두룩하다.
이게 웬 살벌한 전장(戰場)인가 싶었다.
딸의 책상 풍경을 보니 문득 나의 국민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서너 장 분량의 국어 숙제, 수학 문제집 풀이, 그게 전부였던 것 같다.
30분이면 (전과와 함께) 뚝딱 해치웠던 그 숙제를 하고선 동네 친구들과 바깥으로 나가 신나게 뛰놀곤 했다.
내내 웃음소리가 넘쳐났던 그때 그 시절이 자꾸만 아른거린다.
10살 딸내미는 지금 내가 중학생 때 배운 영어를 벌써 씹어 먹는다.
7살 때부터 다닌 영어학원 덕분이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자마자 벌써 나의 중학교 과정을 배우고 있으니 대단하다 해야 할지, 걱정부터 앞서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딸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우리 부부 사이에서도 의견 차이가 나타난다.
아내는 요즘 아이들은 당연히 그 정도는 해야 한다며 선행학습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최소 1년, 많게는 3년까지 앞서가며 공부하는 게 이 시대 아이들의 일상이란다.
반면 나는 좀 달리 본다.
과도한 선행학습이 아이들의 창의력과 사고력 계발에 과연 도움이 될까.
성적 압박에 내몰려 스스로 탐구하고 깨우치는 재미는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그저 암기와 주입에만 매달리다 보면 공부가 지겨운 숙제일 뿐, 즐거운 배움이 되기는 어려울 테다.
물론 아내 말도 일리 있다.
90년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교육 현실이 달라졌다.
교과서는 기본이고 학교 수업 방식도 다양해졌다.
암기 일변도에서 토론과 실습 등으로 수업도 진화 중이란다.
하지만 여전히 입시 경쟁은 치열하고 주입식 교육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사실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내가 자란 80, 90년대 교육 방식이 반드시 옳았던 것만은 아니다.
그때는 숙제를 하고도 마음껏 뛰놀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는 점, 지금보다는 학부모와 아이들 간의 경쟁이 덜 치열했던 점 등의 차이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자녀 교육 문제로 부부간에 의견 충돌이 생기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딸아이의 밝은 미소를 떠올린다.
공부가 즐겁고 신나는 일이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잠깐은 내 어릴 적 기억 속 그 자유와 행복을 되찾아주고 싶은 마음도 든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고, 교육의 방식도 분명 달라질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무엇을, 어떻게' 배우느냐의 문제다.
숙제를 통해 삶의 지혜와 문제해결력을 익히고, 배움의 즐거움과 자존감을 높일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딸아이가 학창 시절을 돌아볼 때 '공부가 즐거웠다, 보람 있었다'는 말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
그것이 지금의 우리가 고민하고 노력해야 할 숙제가 아닐까.
교육이 내 삶의 원동력이자 미래를 열어주는 힘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 희망을 안고, 오늘도 딸아이 곁을 지키며 함께 고민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