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이 말하는 '살아갈 가치'
우주 깊은 곳, 삼각형자리 은하의 나선 부분에 위치한 '타퓨라' 행성. 이곳은 7000년 전부터 끊임없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평화와 기술의 급격한 발전을 이루어 낸 행성 정부가 존재한다. 행성의 관광 가이드인 후이늠은 우주에서의 생명체들과의 교류를 꿈꾸며,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다.
타퓨라의 정부는 1960년대 SETI 프로그램을 통해 인류의 신호를 포착한 이후, 지구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들의 밀키웨이 정복 행성 '글래스'는 지구를 감시하며 인류의 진화를 지켜보았다. 최근 2064년, 인류가 알큐비에레 드라이브 연구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타퓨라의 정부 내에서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10년 후, 인류가 항성계를 벗어난 탐사를 시작할 것이라는 예측이 세워지면서, 과거의 전쟁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후이늠은 '교류파'의 일원으로, 인류와의 교류가 침공이 아닐 것이라는 것을 입증하고자 했다. 그러나 '침공파'의 주장에 따르면, 인류의 탐사는 이제 우리의 기술인 '크로노스'를 빼앗기 위한 전초전일 뿐이었다. 그들은 선제타격론을 주장하며, 타퓨라의 안전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후이늠은 평화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그는 타퓨라의 역사와 인류의 역사를 연구하며, 두 종족 간의 오해를 풀고 서로를 이해하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그는 '크로노스'를 탑승하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의 목표는 인류와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그들의 진정한 의도를 파악하고, 이를 통해 타퓨라의 미래를 지키는 것이었다.
여행을 시작한 후이늠은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며, 인류의 역사 속에서 중요한 순간들을 목격하게 된다. 전쟁과 평화, 사랑과 증오가 얽힌 복잡한 이야기들이 펼쳐지며, 그는 인간의 본성과 그들의 선택이 가져오는 결과를 깊이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후이늠의 여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침공파'의 세력이 그의 발걸음을 방해하려 하였고, 그들은 타퓨라의 안전을 위해 후이늠을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이늠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인류가 단순히 침공의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고, 두 행성 간의 평화를 이루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결심을 다졌다.
결국 후이늠은 인류와의 접촉을 통해 서로의 오해를 풀고, 두 종족 간의 평화로운 미래를 위한 길을 열어나갈 수 있을까? 그가 선택한 길이 타퓨라의 운명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그의 여정은 이제 시작되었다.
많은 시간이 지났다.
후이늠은 크로노스를 타고 12번째 여행을 떠났다. 이번 여행은 1943년 7월 11일, 소련 쿠르스크 남동쪽 80킬로미터 지점의 작은 마을 프로호로프카였다. 11번째 여행이 1812년 4월 19일, 홍경래의 난 정주성 전투의 마지막 날이었던 점을 떠올리며, 또다시 전쟁의 현장에 서게 될 것이라는 아찔한 아쉬움이 밀려왔다. 역사 시간에 배운 대로,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로노스'의 재충전 시간 동안, 후이늠은 이 죽음의 현장에서 죽음도 삶도 아닌 무언가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슬픔을 느꼈다. 그리고 예상대로, 인류사 최대의 전차전이 벌어지는 현장에 도착했다. 소련군의 전차 엔진이 굉음을 내며 전투가 시작되었다.
크로노스가 하필 독일군 진영에 앉아 있었기에, 후이늠은 원치 않는 장면들을 목격해야 했다. 벌레처럼 죽어가는 이들이 사실 '인간'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장면들이 그의 마음을 괴롭혔다. 괴벨스의 총력전 연설이 라디오로 흘러나오며, 전투에 참여하는 이들이 '희망'을 걸고 있는 모습이 그를 더욱 슬프게 했다. 신형 판터 전차 조종수가 아내의 사진을 꺼내어 하염없이 바라보는 '그리움'의 표정 또한 그를 짓누르는 무게였다.
전차들이 부딪히는 순간, 철과 철의 싸움 속에서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었다. 누군가의 사랑, 누군가의 가족, 누군가의 세상이었을 그들이 왜 이토록 무가치한 죽음에 던져져야 했던 것인지 후이늠은 이해할 수 없었다. 크로노스의 재충전이 완료될 때까지도 그는 그 수많은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서둘러 이 자리를 벗어나고자, 후이늠은 크로노스에 탑승했다.
그는 타퓨라의 행성 의회 자리로 돌아왔다. 의회는 그를 맞이하며, 후이늠은 '침공파'에 반박하기 위해 3가지 이야기를 늘어놓기로 결심했다.
“인류는 과연 공존할 가치가 있는 존재일까요?” 후이늠은 의회 의원들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목격한 12번의 전쟁 속에서, 저는 전쟁의 비극만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희망의 씨앗이 존재하던 시기를 발견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후이늠은 첫 번째 이야기로 조선의 왕 세종을 언급했다. “세종은 백성을 위해 한글을 창제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글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든 백성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했습니다. 당시 조선은 외세의 압박과 내부의 혼란 속에 있었습니다. 세종은 이러한 상황에서 한글을 통해 백성들이 스스로 지식을 얻고,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는 왕으로서의 권력을 넘어서, 진정한 백성의 지도자로 거듭났습니다. 그가 한글을 창제한 이유는 단순히 문자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조선은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 간의 간극이 줄어들었고, 결국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후이늠은 잠시 숨을 고르며 다음 이야기를 이어갔다. “두 번째 이야기는 이순신 장군에 관한 것입니다. 이순신은 단순히 군사적 승리를 위해 싸운 것이 아닙니다. 그는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용맹하게 싸운 진정한 영웅입니다. 그의 전략과 전술, 그리고 그가 지닌 불굴의 의지는 단순히 전쟁의 승리를 넘어서,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고 평화를 갈망하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그는 '나의 죽음으로 민족이 살아남을 수 있다면, 기꺼이 죽겠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의 희생은 단순한 개인의 영웅담이 아니라, 민족의 운명을 걸고 싸운 진정한 리더의 모습이었습니다. 이순신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줍니다.”
마지막으로 후이늠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 김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김구는 민족의 평화 통일을 외쳤습니다. 그는 단순히 정치적 목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의 외침은 단순한 독립의 외침이 아니라, 전쟁과 분열을 넘어서는 인류의 고통을 덜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이었습니다. 그는 '우리의 적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다'고 말하며, 민족 간의 화합과 이해를 강조했습니다. 김구의 비전은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모든 이가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의회는 한동안 숙연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후이늠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지며, 의원들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인류는 정말 공존할 가치가 있는 존재일까요?” 후이늠은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졌다. “전쟁의 역사 속에서도, 그들은 사랑하고, 희망하며, 자신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 싸웠습니다. 그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의원들은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후이늠은 그들이 침공파의 주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 바랐다. 인류가 전쟁의 그늘 속에서도 여전히 희망을 찾고, 사랑을 느끼고, 평화를 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후이늠은 그들의 대답을 기다렸다. 타퓨라의 미래는 그의 손에 달려 있었다. 인류와의 교류가 진정한 평화로 이어질 수 있을까? 그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후이늠은 의회에서의 연설을 마친 후, 의원들의 반응을 주의 깊게 살폈다. 그의 이야기는 그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고, 잠시 동안의 침묵이 흐르면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의원들은 서로의 시선을 교환하며, 후이늠의 주장에 대해 고민에 빠진 듯 보였다.
“인류는 정말 공존할 가치가 있는 존재일까요?” 후이늠이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졌다. “그들은 전쟁과 고통 속에서도 사랑과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그들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의원들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후이늠, 당신의 이야기는 감동적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겪은 전쟁의 상처와 고통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인류가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후이늠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과거의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인류와 타퓨라가 함께 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선택하는 길이 미래의 평화를 결정할 것입니다.”
이후 의회는 열띤 토론을 시작했다. '침공파'와 '교류파'의 의견이 충돌하며, 서로의 주장을 놓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후이늠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인류의 다양한 역사적 순간들을 예로 들며 그들의 진정한 의도를 설명했다. 세종, 이순신, 김구의 이야기는 의원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그 속에서 인류의 긍정적인 면을 발견하게 했다.
결국 의회는 후이늠의 주장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타퓨라와 인류 간의 교류를 위한 특별 위원회를 구성하고, 인류와의 직접적인 접촉을 위한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후이늠은 이 결정에 깊은 감동을 느꼈다. 그의 노력과 믿음이 결실을 맺은 순간이었다.
후이늠은 새로운 위원회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인류와의 교류를 준비했다. 그는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더욱 깊이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타퓨라의 정부는 인류와의 첫 접촉을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이를 통해 두 종족 간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고자 했다.
첫 번째 접촉의 날이 다가오자, 후이늠은 긴장과 기대가 뒤섞인 마음으로 준비에 나섰다. 그는 인류의 대표들과의 만남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타퓨라의 문화를 소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가 꿈꾸던 평화로운 미래가 이제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접촉의 날, 타퓨라의 대사관에서 인류의 대표단을 맞이하는 순간, 후이늠은 다시 한 번 인류의 존재가 단순한 적이 아닌, 공존할 수 있는 동반자라는 사실을 느꼈다. 대사관의 문이 열리자, 인류의 대표들이 들어섰고, 그들의 눈빛 속에는 기대와 호기심이 가득했다.
후이늠은 그들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여기 있습니다. 우리의 과거를 뒤로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갑시다.”
인류의 대표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들은 서로 다른 문화와 역사를 가진 존재들이지만, 이제는 한 마음으로 평화를 위해 나아가겠다는 다짐을 했다. 후이늠은 이 순간이 타퓨라와 인류의 새로운 시작임을 깨달았다.
이제 후이늠의 여정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타퓨라와 인류가 함께 만들어갈 미래는 그가 꿈꾸던 평화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이 될 것이었다. 후이늠은 희망을 품고, 두 종족 간의 교류가 진정한 평화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의 여행은 끝났지만, 인류와 타퓨라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