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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플러스 인생 Jul 03. 2021

"선배의 빈자리를 메우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4)

첫 번째 이야기 요화 원검

이쯤에서 잠시 요화의 능력치를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30년 가까이 삼국지 게임을 만들어온 일본 회사 <KOEI>의 최신작 <삼국지 14>에서 매겨진 능력치 점수를 볼 텐데요. 사람을 점수로 평가할 순 없는 건데, 게임 캐릭터의 성능은 비교할 수 있으니까요. 삼국지 세계에서 요화가 대략 어느 정도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보겠습니다. 


요화 통솔 73/무력 76/지력 62/정치 49/매력 65 (특기) 산전, 혈로, 강건


성적을 매기자면 대체로 C~D학점이네요. 부대의 전투력으로 환산되는 통솔력, 적장과 1대 1로 싸우는 힘인 무력은 무장으로서 평이한 수준이고, 지력과 매력은 낮은 수준, 정치력은 낙제점인 F를 받는 수준입니다. 능력치만 놓고 보면 B급 삼국지가 아니라 C급 삼국지네요. 


장수의 특징을 표현하는 '개성'을 보면, 산적이었던 과거를 반영해 산에서 잘 싸우는 개성 '산전'이 주어졌고, 오나라 군의 철통 같은 포위를 뚫었기에 포로로 잡히지 않는 '혈로'를 받았고, 비교적 장수했다는 기록에 따라 병이나 부상을 잘 당하지 않는 '강건'이 붙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막 굴리기 좋은 보조 장수 이미지가 강하죠. 


어디 제갈량이 아쉬워했던 촉나라 S급 명장들과 비교해볼까요. 


관우 통솔 96/무력 97/지력 75/정치 63/매력 94 (개성) 신장, 단기, 영명, 구심, 주석

장비 통솔 89/무력 98/지력 63/정치 22/매력 44 (개성) 투장, 단기, 노발, 저돌, 주란

조운 통솔 91/무력 96/지력 76/정치 65/매력 81 (개성) 통찰, 담력, 단기, 후위, 호위

요화 통솔 73/무력 76/지력 62/정치 49/매력 65 (개성) 산전, 혈로, 강건


통솔, 무력 같은 전투 능력치가 20점 가까이 차이가 나죠. A+ 학생과 C+ 학생의 차이랄까요... 개성을 비교하면 더 참담한 수준입니다. 관우의 개성 '신장'은 주변 모든 장수들의 능력을 30% 끌어올리는 최고급 기술이고, 장비에게 달려 있는 '단기'는 적장과 1대 1 승부를 겨룰 때 높은 확률로 승리하게 만드는 개성입니다. 조운은 절대로 적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는 '통찰' 거느린 병력이 적으면 더욱 기세가 강해지는 '담력' 퇴각하며 아군의 뒤를 지킬 때 더더욱 강해지는 '후위'... 그야말로 제작진의 사랑을 듬뿍 받은 걸 볼 수 있죠.


이런 최고 수준의 장수들을 쓰다가 졸지에 C급 장수들을 운용하게 된 제갈량의 갑갑함도 이해가 안 가는 바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관우, 장비, 조운이 세상을 떠난 뒤 요화가 상대해야 했던 적국 위나라의 장수들은 어땠을까요?


등애 통솔 94/무력 87/지력 89/정치 81/매력 70 (개성) 질주, 장구, 둔전, 지리, 농정

곽회 통솔 87/무력 78/지력 82/정치 75/매력 76 (개성) 견수, 불굴, 신중, 산전, 후위,

종회 통솔 83/무력 51/지력 91/정치 79/매력 62 (개성) 기략, 문화, 책사, 지낭, 오만,

요화 통솔 73/무력 76/지력 62/정치 49/매력 65 (개성) 산전, 혈로, 강건


전체적으로 능력의 우열이 느껴지시죠. 끝판대장 사마의를 빼고도 저 정도입니다. 물론 촉나라 총지휘관인 강유도 만만치 않은 능력치를 자랑하지만... 국력의 열세 속에서 유능한 적장들을 상대해야 했던 촉나라 장수들의 애환이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요화가 삶의 마지막 단계로 들어서던 시기는 바로 이런 때였습니다. 승상 제갈량도 죽고 북벌이 가능할 거란 기대도 다 끝난 상황. 요화는 촉나라의 중추를 넘어서 건국을 주도했던 1세대의 마지막 후예로 남게 됩니다. 


요화가 촉나라 군부에서 명실상부 중추적인 위치에 올라섰다는 것은 벼슬자리로 확인되는데요. 제갈량의 유지를 이어받은 강유가 그 뒤로 북벌을 9번 더 진행하게 되는데, 이 무렵 요화의 직위가 '우거기장군'까지 올라갑니다. '거기장군'은 상당히 높은 자리인데요. 오호대장군 가운데 한 명인 장비가 마지막에 거친 자리가 바로 '거기장군'이라는 점에서 요화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다만, 강유의 9차례 북벌은 모조리 실패로 돌아가고 말죠. 성과를 내지 못하는 프로젝트를 끊임없이 수행해야 하는 촉나라의 장군들. 요화도 마지막에는 신물이 났던 모양입니다. "강유는 능력도 부족한데 계속 북벌을 시도하니 문제"라고 공개적인 발언을 남겨두었습니다. 


그렇지만 요화는 강유와 반목하지는 않았습니다. 동의하지 않는 프로젝트일지언정 끝까지 강유의 오른팔이 돼주었습니다. 스스로가 몇 번이고 목격했던 촉나라 수뇌부의 갈등과 분열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아닐까요. 촉나라 내부에서 정치적으로 불안한 입지에 처해 있던 강유가 끝까지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요화 같은 베테랑들이 든든하게 뒤를 봐주었던 게 큰 원동력이었지 싶습니다. 


이때 요화가 함께 싸웠던 장수들의 면면을 보면 대장군 강유를 비롯해 유은, 장익, 동궐, 호제 등으로, 충직한 사람들이지만 대부분 인지도가 높지 않습니다. 패전국인 촉나라, 그것도 삼국지연의 후반부 사람들이라 별다른 기록도 없고 현대인들에게 관심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지요. 어쩌면 실제로도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었을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끝까지 함께 싸웁니다. 나라가 망할 때까지. 어떤 사람들은, 망한 뒤에도... 요화는 어쩌면 패배할지언정 외롭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요화는 끝내 나라의 멸망을 막을 수는 없었죠. 


위나라 대군이 쳐들어오는 동안, 최전방에서 대장군 강유가 보낸 긴급한 서한을 받고도 제 때 대응하지 못한 무능한 군주 유선. 요화는 위나라 군대가 한중방어선을 돌파했다는 말을 듣고서야 뒤늦게 떨어진 명령을 받고 출격합니다. 이것은 요화 최후의 출진이자, 촉나라가 발령한 마지막 작전명령이 됩니다. 


험준한 검각에서 최후의 농성을 벌이는 촉나라 장군들. 강유, 요화, 장익, 동궐 등이 최후의 정예병을 이끌고 위나라 대군과 대치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촉군이 이까지 밀린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번만큼은 정말 끝일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모두의 가슴을 채웠을 겁니다. 


요화는 그곳에 있었습니다. 촉나라의 탄생부터 싸워온 장군이. 유비, 관우, 장비, 제갈량의 뜻을 이어받은 백발의 노장이, 젊은 병사, 나이 든 병사, 지치고 다친 병사들과 함께 있었겠죠. 불의한 정권에는 결코 무릎 꿇지 않는다는 촉나라의 건국정신 그 자체로 그곳에 버티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망국의 소식은 앞이 아니라 뒤에서 들려옵니다. 촉을 세운 사람, 촉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프로젝트 촉나라'를 목숨 걸고 사수할 때, 창업자의 아들인 황제 유선이 스스로 프로젝트를 마감하기로 한 것이죠. 요화와 동료들은 바위에 검을 내리쳐 깨뜨립니다. 


그렇게, 앞서서 나간 이들의 등 뒤를 쫓다 이제는 뒤이어 올 누군가에게 등을 내주며 달려왔던 요화의 인생이 끝납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 촉한 부흥을 시도했던 강유와 달리 요화에게는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요화는 자신의 이름을 역사서에 남겨준 동료, 종예와 함께 낙양으로 호송되던 도중 삶을 마감합니다. 


포로에 대한 처우가 결코 좋았을 리 없는 고대입니다. 형주에서부터 지속적으로 자신들을 괴롭혀 온 적장을 위나라 병사들이 제대로 대우했을 리 만무합니다. 대단한 모멸과 학대 속에 고통받으며 죽어갔으리라 짐작됩니다. 최후에 손에 쥔 건 아무것도 없었던 망국의 장수. 요화는 '정사' 삼국지에 자신의 열전조차 남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삶이 초라하다 말할 수 있을까요?


혹자는 끝까지 싸웠던 촉나라 사람들을 비웃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국력의 차이는 현격했습니다. 한나라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의 내부적 모순으로 쇠락해가던 국가였습니다. 위나라가 됐든 오나라가 됐든, 아무나 다시 천하를 통일하고 대충 살면 되는 것 아닐까요? 형주, 익주를 연달아 지배한 유비의 행동도 반드시 정의로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한번 뜻을 세운 사람이, 단지 상황이 불리해졌다는 이유로 그냥 무릎을 꿇어도 좋은 걸까요?


자기 자신이 세운 목표마저 쉽게 던져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안 되는 일에 시간을 허비하느니 깨끗이 포기하고 될 법한 일을 다시 시작하는 것도 영리함이죠. 하지만 자기가 시작한 프로젝트가 아닐지라도 맡은 바 책임을 다하기 위해 끝까지 전력을 다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화려한 조명은 받지 못할지라도 일이 되게 만드는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맡은 일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는 일이 있을 겁니다. 능력 있는 동료, 믿었던 리더가 떠나는 일도 닥쳐옵니다. 도저히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막막함 속에서도, 가슴 깊은 곳에서 '...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다'는 작은 속삭임이 들려옵니다. 이제 그 물러설 수 없는 마음을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는 역할을 맡을 때가 됐습니다. 예전 우리가 전달받았던 용기와 희망을, 다음 사람에게 전염시켜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지금, 검각에 서 있는 우리 모두의 이름은 요화입니다. 



*작가의 말

B급 삼국지 첫 번째 인물, '요화 원검'의 이야기를 마칩니다. 두 번째 편에서는 인생 최고의 도박에서 승리했지만 끝내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남자, '미축 자중'의 이야기를 정리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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