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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플러스 인생 Jul 04. 2021

요화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검각에 서 있는 모두를 응원합니다

공기업 언론사를 다닌 지 7년이 됐습니다. 공기업 다닌다고 하면 난세인 줄 모르고 늘어져 있던 익주의 유장이 된 기분이고, 언론인이라고 하면 한실부흥의 대의에 사는 유비군이라고 자기를 소개하는 것 같아 민망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2021년 비틀거리는 공영방송 직원은 후한 말 무너지는 왕조를 떠받치려 애쓰는 시지프스의 노동 같은 걸 하고 있다는 느낌도 듭니다. 


선한 일을 하는 직장에 다니고 싶다, 좋은 일을 하기 위해 애쓰는 직업을 갖고 싶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그 좋다는 회사를 하나 둘 떠나는 선배들, 서로 틀어져서 엎어지는 조직문화, 너무 어린 연차에 쌓여가는 너무 큰 의무감들... 위를 보면 답답하고, 옆을 보면 지쳐 있고, 아래를 보면 미안한 기분이 드는 나날들이었습니다. 


그때 너무나 좋아하던 삼국지를 다시 만났습니다. 어린 시절 장쾌한 활극으로 읽히던 삼국지가 이제는 비통한 자들이 울며 깃발을 떠받치고 가는 이야기로 읽힙니다. "나는 커서 제갈량이 될 거야"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던 초등학생의 머리를 쓰다듬게 됩니다. 너는 아무것도 되지 못할 거란다. 


그래도 이 길이 맞다면...


관우의 등을 보고 걷다가 존경하는 사람들을 잃고, 또 잃고, 마침내 자기가 참여한 나라가 몰락하는 모습을 지켜본 '검각의 요화'는 제가 가장 몰입했던 인물입니다. 존경하는 사람을 잃고 돌아온 날에는 조각난 마음을 끌어안고 요화를 생각합니다. 빛나는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 초라하지만 물러설 수 없는 자신을 세워두던 검각의 요화를. 눈을 감으면 그의 어깨에 관우가, 제갈량이, 유비가 위로의 손을 얹는 것이 보입니다. 


그러나 요화가 지켜야 할 사람들이 더 많았겠지요. 


촉중무대장, 요화작선행!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끝까지 힘냅시다. 



<요화, 남겨진 기록들>


1) 정사 삼국지 촉서 종예전

경요 원년 (258) 

(종예는) 질병으로 인해 부름을 받아 성도로 돌아왔다. 뒤에 진남대장군이 되고 연주 자사를 겸했다 그 무렵 도호 제갈첨이 처음으로 조정 일을 총괄하게 되었는데, 요화는 종예에게 들렀다가 종예와 함께 제갈첨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려고 했다. 종예가 말했다. 

"우리는 나이 일흔이 넘었고 절취한 명리는 이미 양을 넘었습니다. 다만 한 번의 죽음이 부족할 뿐입니다. 젊은 사람에게 무엇을 요구하려고 급히 찾아가겠습니까?"

(중략)

요화는 자가 원검이고 본래 이름은 요순이며 양양군 사람이다. 전장군 관우의 주부로 있다가 관우가 패하자 오나라에 귀속했다. 

요화는 유비에게 귀순하려는 마음에 거짓으로 죽었는데 그 때 사람들은 이것을 정말로 믿었으므로 노모를 모시고 밤낮을 이어 서쪽으로 갔다. 마침 유비가 동쪽으로 정벌에 나섰으므로 자귀에서 만나게 되었다. 유비는 매우 기뻐하며 요화를 의도 태수로 삼았다. 유비가 죽고 나서 승상참군이 되었고, 뒤에 독광무가 되었다. 점점 승진하여 우거기장군까지 이르고 가절을 받았다. 병주자사를 겸했으며 중향후로 봉해졌다. 과감하고 강렬한 성격의 인물로 알려졌다. 관위는 장익과 같고 명망은 종예보다 위였다. 


함희 원년 (264) 봄

촉이 멸망한 뒤 요화와 종예는 함께 안쪽의 낙양으로 옮겨 가다가 길에서 병으로 죽었다. 


2) 정사 삼국지 촉서 후주전

경요 6년 (263) 여름

위나라가 대대적으로 병력을 모아 정서장군 등애, 진서장군 종회, 옹주 자사 제갈서에게 여러 갈래의 길로 동시에 촉을 공격하도록 명령했다. 이 때문에 촉은 좌우 거기장군 장익과 요화, 보국대장군 동궐 등을 보내 이를 막도록 했다. 


3) 정사 삼국지 촉서 장완전

건흥 원년 (223) 

승상 제갈량은 막부를 열고 장완을 초빙하여 동조연으로 삼았다. 장완은 무재에 천거되었지만 유옹, 음화, 방연, 요순 (요화)에게 간곡하게 사양했다. 제갈량은 장완을 깨우치며 말했다...(후략)


/ 이상 출처 <정사 삼국지 촉서>, 진수 지음, 김원중 옮김, 휴머니스트


4) 한진춘추에 이르길 경요 5년(262)에 강유가 군을 이끌고 적도(狄道)로 출병하자 요화가 말했다, "전란이 끊이지 않으면 스스로를 불태운다고 하더니 백약(伯約-강유의 자)을 두고 하는 말이로구나. 지모가 적보다 뛰어나지 않고 역량도 적으면서 용병이 끊이지 않으니 어찌 스스로를 보존하리? 시경에서 말하는 ‘不自我先, 不自我後’라는 것이 바로 지금의 일을 가리키는 것이로다” 


/ 출처 나무위키 '요화'


5) 위서(魏書): 9월 촉(蜀)의 음평태수(陰平太守) 요돈(廖惇: 요화의 본명인 요순廖淳의 오기로 알려짐)가 반란을 일으켜, 수선강후(守善羌侯) 석심(宕蕈)의 진영을 공격했다. 옹주자사(雍州刺史) 곽회(郭淮)가 광위태수(廣魏太守) 왕윤(王贇), 남안태수(南安太守) 유혁(遊奕)이 병사들을 이끌고 요돈을 격파했다.

곽회가 표를 올려 말했다. 

"왕빈, 유혁이 군사를 나누어 산의 동서를 둘러쌌고 포위하여 적의 외면을 함락시켰으니, 이제 적을 격파하는 것은 아침 아니면 저녁이 일입니다." 

위의 황제 조예(曹叡)는 

"군대는 분산을 피해야 한다"

하면서, 별동대 중 필요 없는 자들은 돌아가 수비에 힘쓰도록 유혁에게 전하라고 칙명을 내렸다. 칙명이 도착하기 전에 요화는 서혁군을 물리쳤고, 왕윤은 화살에 맞아 숨졌다.


/ 출처 파성넷 '정사 삼국지 명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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