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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플러스 인생 Jun 17. 2021

"당신의 전생은 채모입니다."

채모 덕규

무심코 인터넷에 떠도는 삼국지 전생 테스트를 눌러본 게 실수였다.


농담이 아니고 진짜입니다. ‘나는 전생에 삼국지의 누구였을까’ 이런 광고 문구로 시작되는 전생 테스트 많잖아요. 페이스북인지 트위터인지 어딘가에 올라온 출처불명의 그 페이지를 클릭한 게 문제였습니다. 다수의 이익이 중요한가 내 삶이 중요한가, 친구를 위해 목숨을 걸겠냐 돈을 위해 목숨을 걸겠냐... 뭐 그런 RPG 게임 주인공 만들 때 나오는 질문을 열몇 갠가 대답했더니, 두둥! 결과가 나왔습니다.


당신은 전생에 채모였습니다!


뭣이라고! 채모라고! 유비나 조조는커녕 장비도 조운도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법정이나 하다못해 간손미도 아니고 채모라고?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은 1000명이 넘습니다. 그 인물들 전체를 놓고 인기투표를 하면 채모는 몇 등쯤 할까요. 모르긴 몰라도 100등 안에는 못 들 거라고 확신합니다. 심지어 삼국지연의에서는 악역이잖아요. 사실 100등이 뭐야, 한 표라도 받을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야. 대체 어떤 미친놈이 채모를 찍겠습니까. 유비를 싫어한다면 하다못해 방통이라도 쏴 죽인 장임을 찍겠죠. 기득권에 영합하는 기회주의적인 인간이 솔직하게 자기 마음을 드러낸다 해도 가후나 화흠, 하다못해 동소 정도를 찍지 않을까요?


채모는 심지어 삼국지연의에서 주유의 책략에 당해 목이 잘린단 말입니다. 그것도 부하인 장윤이랑 세트로요. 삼국지연의에서 대체로 세트상품은 취급이 좋지 않아요. 마연과 장의, 초촉과 장남, 오란과 뇌동...안량과 문추도 아니고, 채모와 장윤? 좌우지간 채모 따위를 삼국지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로 꼽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 인물을 굳이 ‘삼국지 전생 테스트’ 같은 매니악한 놀이의 결과물로 집어넣는 것도 모자라, 사랑과 정의를 사랑하는 내게 “당신 전생에 고작 이 정도 인물입니다”하고 내밀다니 악취미도 이런 악취미가...


그런데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채모의 인생을 반추하고 나서 말이죠. 채모가 누굽니까? 형주군 28만 명의 최고 통솔자입니다. 연의에서는 동생을 시집보내 승승장구한 하진의 열화판 정도로 묘사되지만, 바로 그 여동생이 조조에게 썰린 다음 바로 그 조조에게! 수군 통솔 능력을 인정받아 적벽대전의 책임자로 임명된 게 채모에요. 능력이 없었다면 당장 모가지란 말이죠. 물론 극적인 전개를 위해 결국 목이 잘리긴 합니다만... 당대 최강의 수군제독인 주유, 손책보다 못했다고 해서 채모가 후대 사람들에게 비웃음 당할 이유는 없다는 말이죠. 채모를 비웃는 사람들 중에 조조 앞에 나가서 자기 재주를 인정받을만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죽은 유표를 배신하고 형주를 조조에게 바쳤다... 이것도 비판점이 되기에는 약합니다. 물론 그 선택 때문에 채모는 여동생 채부인과 조카 유종을 잃습니다. 형주는 북쪽의 위나라, 서쪽의 촉나라, 동쪽의 오나라에게 갈가리 찢겨 지옥의 전쟁터로 전락합니다. 그럼 채모가 독립을 고수했다면 상황이 나아졌을까요? 당장 패왕 조조의 대군이 천하통일을 목표로 남쪽으로 노도같이 진군해오던 시기였습니다. 강동 사람들은 장강을 방어벽으로 삼아 최후의 일전을 벌일 수 있었을지 모르나 중원과 형주는 육지로 연결돼 있었죠. 채모가 죽음을 각오하고 조조군과 일전을 치렀다면, 과연 형주는 무사할 수 있었을까요? 당대 최고의 전쟁 기술자 조조에게 농락당한 끝에 멸문지화를 면할 수 없었을 것은 자명합니다.


무엇보다 한의 승상 조조에게 대적한다는 것은 한 왕실에 공공연히 반기를 드는 것과 마찬가지일 겁니다. 유학의 전통이 강한 형주에서 과연 지지층의 이탈이 없었을까요? 하다못해 머나먼 강동 땅에서조차 조조와 싸우는 게 맞는지 명사 집단 사이 설왕설래가 오갔다는 게 연의에 묘사돼 있습니다. 형주는 더하지 않았을까요? 채모는 단지 지역의 여론을 반영해 결단을 내리는 자리에 설 수밖에 없었던 고독한 정치가가 아니었을까요? 어쩌면 채모가 빠른 결단을 내린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사람이 더 많았을지도 모릅니다.


혹자는 채모가 유비를 섬겼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채모가 버텨봤자 5년 안에 형주는 결국 유비의 손에 떨어졌죠. 그렇다면 애초에 유비를 지도자로 세웠다면 어땠을까요? 반조조의 상징인 유비가 황제에게 받은 밀서를 명분으로 지식인 집단을 설득하고, 강대한 형주군이 산전수전 다 겪은 관, 장, 조의 지휘를 받으며 조조군에 맞서는 큰 그림! 그런데 이미 유비 살해 계획을 실행에 옮긴 채씨 집안을 유비 집단이 품을 수 있었을까요? 혹시 유비는 애써 관대한 모습을 보이더라도, 어느 날 술에 취한 장비가 마치 허저가 허유를 때려죽이듯 슬쩍 채씨 집안을 몰살시키진 않았을까요? 상식적으로 채모 입장에서 유비에게 정권을 넘기는 게 가능한 선택지였을까요?


채모는 분명 대인배는 아니었습니다. 자기 밥그릇, 자기 집안을 지키려는 욕심도 강했을 겁니다. 그가 내린 선택에서 천하를 안정시키겠다는 포부, 시대를 관통하는 철학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가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다수의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또 자기의 능력이 닿는 범위 안의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결정을 내렸다는 것도 확실해 보입니다.


채모는 장삼이사가 아니었습니다. 28만 형주군의 최고 통솔자이자 한 나라의 대장군이었습니다. 저는 공기업 방송사에서 직원으로 일합니다. 전체 직원은 600명 남짓, 제 밑으로 후배 세 명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가끔 능력의 한계를 느끼지요. 28만 명의 정점에 서 있는 사람이라니, 우리 사장님보다 500배는 높은 사람이란 뜻인데 저는 감히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저의 인생은 감히 채모가 아닐 겁니다. 저는 아마 형주군에서 창이라도 잡을 수 있으면 다행인 초라한 존재였을 겁니다.


영웅이 아닌 삶은 무의미한가? 삼국지는 때로 독자들의 삶을 왜소하게 만듭니다. 대를 위해 기꺼이 소를 희생하는 영웅들의 모습은 희생되는 소의 일원이 될 가능성이 높은 독자들의 등골을 서늘하게 합니다. 그 서늘함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영웅의 반열에 들지 못하는 인물들을 얕잡아보는 태도를 취하며 손쉽게 영웅들의 편에 서고자 합니다. 하지만 잘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초라한 인생이 자꾸 우리가 서 있는 위치를 되돌아보게 하니까요. 티브이에 나오는 정치인들을 보며 삼국지의 영웅들과 비교해보지만, 그들조차 영웅이라 불리기엔 초라해 보입니다. 전체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전체가, 한심해집니다.


삼국지에서 우리가 영웅이라 불러 줄 만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그들도 단점이 있고 실수를 하고 끝내 목적한 바를 이루지 못하고 목숨을 잃는 존재들이니까요. 하지만 그 정도면 최선을 다한 삶이었다고 어깨를 다독여주고 싶은 사람들은 많을 겁니다. <B급 삼국지>는 바로 그런 인물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기 위한 작업입니다. 난세에 작은 선이라도 실천하려 했던 사람들, 주변의 몇 명이라도 구하려고 했던 사람들, 비록 패배할지언정 인생에 원칙이 중요하다는 걸 알리려 했던 사람들... 끝내 실패하고 죽어간 탓에 주목받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주려 애썼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보낸 하루가 조금 덜 쓸쓸해 보인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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