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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플러스 인생 Jun 20. 2021

"선배의 빈자리를 메우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1)

첫 번째 이야기 요화 원검

B급 삼국지, 첫 인물로 요화를 골랐습니다.


요화는 어떤 사람일까요? 삼국지를 읽은 분들도 아마 잘 기억이 안 나실 겁니다. 힌트를 드리자면 관우랑 연관이 깊어요. 한번 첫 장면을 떠올려 볼까요.


... 때는 조조와 원소가 중원의 패권을 놓고 격돌하던 시점. 유비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은 관우는 유비의 두 부인을 태운 수레와 함께 조조의 밑을 떠납니다. 잠시 후 이 사실을 알게 된 조조군이 추격해오자 관우는 수레를 먼저 보내고 추격군을 상대하러 뒤쳐지게 되지요. 다행히 조조는 관우를 뒤쫓을 마음이 없었고, 작별인사를 마친 관우는 수레를 따라잡기 위해 서두릅니다. 그런데 멀리 수레가 한 무리의 도적떼에게 둘러싸인 걸 보게 됩니다...


바로 이 도적떼의 우두머리가 요화입니다.


뭐야? 지나가는 산적 A 아니야? 이대로 그냥 관우의 청룡도에 목이 달아난다면 정말로 단역에 그칠 위기입니다. 다행히 요화에겐 단역을 맡길 동료가 있었어요. 두원이라는 도적두목인데, 대충 요화 하고 둘이서 도적떼를 조직한 동업자였던 셈이죠.


"멈춰라! 가진 것 다 내놓으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대충 이런 대사를 던졌겠죠. 그런데 마차에서 의외의 반응이 돌아옵니다.


"우리 남편이 누구인지 아시오? 바로 유황숙입니다! 우리는 유비 현덕의 부인들이에요."


여기서 요화와 두원의 운명이 갈립니다.


어? 유비 현덕이라고? 이 분들을 헤쳐서는 안 돼. 이게 요화의 반응이었고,

어? 부인이 둘이잖아? 우리 둘이 한 명씩 나눠 갖자. 이게 두원의 반응이었습니다.


같은 도적이지만 요화는 그나마 선량함이 남아 있던 것처럼 보이고 두원은 지나가는 도적 A 역할에 충실하죠. 요화는 말을 듣지 않는 동업자를 죽입니다.


행정체계가 문란해진 후한 말, 황건적의 난이라는 거대한 민란이 발생하면서 도적과 민중의 구분이 희미해집니다. 황건의 중추세력이 토벌당해 공식적으로는 난이 끝난 상황에서도 비슷한 도적들이 계속 출현하는데요. 요화와 두원의 도적떼 역시 누런 수건을 쓰고 있었던 걸로 봐서 황건적의 위명을 빌리려고 했던 걸로 보입니다.


유비의 두 부인을 만난 순간 요화는 아마도 인생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던 것 같아요. 말로만 듣던 유비를 실제로 만날 수 있다면 도적질이 아닌 뭔가 근사한 일을 추구할 수 있을 거라 믿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뒤이어 도착한 관우는 이런 사정을 듣고도 요화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 유비 부인들이 요화의 합류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요화가 황건적을 표방한 세력이었던 만큼 유비의 명성에 누가 될 거라는 지적도 뒤따릅니다. 요화의 목숨을 건 취업 면접은 실패했습니다. 눈물을 터뜨리는 요화를 관우는 나중에 유비군이 자리를 잡고 나면 꼭 받아주겠다고 달랩니다.


그런데 요화와 비슷한 사건이 며칠 뒤 반복되는데요. 주창이라는 도적이 역시 관우의 앞길을 막아섰다가 관우의 이름을 듣자 곧바로 자신을 받아달라고 한 겁니다. 두 부인은 주창 역시 거부하지만, 주창은 요화보다 한걸음 더 나아갑니다. 자기가 데리고 다니는 도적떼를 모두 해산하고 자기 혼자서만 관우를 뒤따르겠다고 한 거죠. 두 부인도 거기까지 반대하지는 못합니다. 결국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한 주창은 관우의 영원한 오른팔이 됩니다. 하지만 자기 무리를 버리지 못한 요화는 유비군에 일단 합류하지 못합니다.


여기서 조금 요화의 선택을 살펴보고 싶습니다. 주창이 떠난 뒤, 주창의 무리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아마 뿔뿔이 흩어지거나 새 두목을 뽑아 비슷한 짓을 반복했을 겁니다. 애초에 제대로 된 농민으로 살 수 없어 도적이 된 사람들이니 돌아갈 길도 없었을 겁니다. 막다른 길에 내몰린 사람들에게 리더가 자신들을 버리는 사건은 더 큰 절망으로 다가왔을 겁니다.


요화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자기 손으로 동업자인 두원의 목을 베었으니, 도적단 사람들은 요화에게 더욱 의존하게 됐었겠지요. 그 뒤 계속 도적질을 했을지, 아니면 유비군에 당당하게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매진했을지 알 수 없지만, 요화는 최소한 자기가 책임져야 할 사람들에 대한 의무를 내팽개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요화는, 이후에도 이런 삶을 살게 됩니다.


그 뒤, 정말로 요화는 다시 유비군을 찾아갑니다...(계속)


*작가의 말

삼국지에는 크게 소설로 분류되는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와, 역사로 분류되는 진수의 정사 삼국지가 있습니다만 B급 삼국지에서는 삼국지연의를 기본으로 다루려고 합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도 아닌데 인생의 교훈을 얻을 수 있겠느냐?라는 불만도 있을 수 있지만, 연의를 기준으로 하는 편이 더 많은 분들께 익숙하니까요. 정사 관련 이야기도 조금씩 섞을 예정입니다. 비록 역사에 남은 fact가 아닌 이야기라도 우리에게 힘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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