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당신의 친구가 건축가라면 겪게 되는 일
처음에는 신기했다.
미술관이나 좋은 건축물이 있는 곳에 가면 남편은 자주 "저 사람도 건축가네." 말하곤 했다.
농담처럼 복장이나 스타일을 가지고 건축가를 점치곤 해서 우스개 소리로 넘기곤 했는데 몇 년이 지나 보니, 이젠 나도 건축가를 알아볼 능력(?)이 생겼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새로 문을 연 미술관의 관람객 중에서 제일 바쁜 사람은 아마 건축가일 것이다. 작품도 보고 미술관 건물도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전시장 사이의 문이나, 채광, 천장과 기둥, 계단의 마감이나 난간, 창문틀 구석구석, 화장실 타일과 손잡이까지 들여다보느라 늘 잰걸음으로 두리번거린다. 미술관 밖에서도 건축가를 알아보기는 쉽다. 건물 외벽에 붙어 서서 손으로 만져보고 옆으로 보고 위로 보고 사진도 찍고 있다면 그 사람은 아마도 건축가일 것이다.
그러므로 건축가 남편과 여행하는 아내에게는 이런 자세가 요구된다.
첫째, 다리는 튼튼하게 가방은 가볍게. 건축가는 미술관 입장 전에 밖에서만 한 시간 넘게 구경할지도 모른다. 나와서 한 바퀴 다시 돌더라도 침착하게 내 할 일을 하자.
둘째, 갑자기 사라져도 평정심을 잃지 말고 그 자리에서 기다린다. 뭔가 눈에 띄어 홀려있더라도 아내를 잊은 것은 아니니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 놀라지 않고 그를 찾으러 어디쯤으로 가야 하는지 노하우도 생긴다.
셋째, 기회가 있을 때 든든하게 먹어두고 간식도 챙겨둔다. 여기에 큰 별표를 세 개 주고 싶다. 건축가는 건축물 앞에선 자기 배고픈 것은 물론이고, 동행이 배고픈 건 생각도 않을 수 있으니 큰 기대를 하지 말고, 내 당은 내가 챙기자. 배고프면 싸움이 된다.
넷째, 마음과 눈을 활짝 열고 이 모든 것을 즐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그렇게 좋아하는 것이라면, 건축에 대해 좀 더 알아보는 것도 재밌는 일이다. 이동시간조차 그의 시선이 늘 거리를 향하고 있어도, 그건 나에 대한 애정과는 별개의 일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 따로 또 같이 여행은 더 즐거워진다.
호기심 많은 방송작가 아내가 건축가 남편을 만나 뚜벅뚜벅 함께 걷고 보고 그린 건축이야기를 시작한다. 건축 초보에겐 매일 신기하고 흥미진진하고 다리 아프고 배고팠던 유럽 현대건축 여행,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