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남편과 함께한 유럽 현대건축여행 _ 에필로그
여행지에서 기념품 사는 것을 좋아한다. 구경만으로도 즐거워진다.
특히 일상에서 계속 사용하는 물건들은 쓸 때마다 두고두고 여행을 추억하게 한다.
그런데 건축가 남편과 다니다 보니, 느긋하게 구경할 시간도 체력도 없다.
대신 우리의 여행가방에는 두꺼운 건축 책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그때마다 함께 서점을 기웃거린 덕분에 내 책장에도 파리와 런던의 건축 팝업북이 꽂혀 있다.
어느새 나에게도 건축여행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게 되었나 보다.
집으로 돌아온 다음 날, 리옹에서 부친 책 상자가 먼저 도착했다.
일주일 후에는 런던에서 부친 빨간 봉투의 책 꾸러미가 도착했다.
우리의 여정은 끝났지만,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글을 쓰는 내내 건축가 남편은 건물과 도시구조를 중심으로 시간과 장소를 말했다.
나는 그 건물들 사이에 있었던 식당과 커피와 풍경을 이야기했다.
그가 “강 북쪽이었어”라거나 “파리 서쪽이었잖아”라고 하면
나는 대혼란에 빠진다.
“거기 가는 길에 기차에서 크루아상이랑 사과파이 먹었어?”라고 반문하면
이번엔 그가 혼란에 빠진다.
건축 얘기를 하다가 왜 갑자기 딴소리냐고 한다.
여행하는 법이 달랐던 우리는, 이렇게 여행을 기억하는 법도 참 다르다.
그 다른 조각들을 퍼즐처럼 맞추면서 기억하고 또 다른 퍼즐을 찾아 떠날 것이다.
기꺼이 함께.
* 스무 편의 글을 쓰는 동안 24시간 질문 공세에 시달리고,
보조기억장치로 활약하고,
대부분의 사진을 제공해 준 건축가 남편에게 감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