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의 성지순례는 계속된다 Site le Corbusier
네가 날 길들인다면 내 생활은 햇빛을 받은 듯 환해질 거야. 모든 발자국 소리와는 다르게 들릴 발자국 소리를 나는 듣게 될 거야. 사람들은 이제 어느 것도 알 시간이 없어. 그들은 미리 만들어진 것을 모두 상점에서 사지. 네가 친구를 갖고 싶다면, 나를 길들여 줘.”
그리하여 매일 같은 시간에 만나서 조금씩 가까이 앉게 된 여우와 어린 왕자는 서로를 길들이고 친구가 되었다. 어린 왕자는 여우를 통해 자신의 별에 있는 장미가 소중한 친구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네 장미를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건 네가 너의 장미에게 소비한 시간 때문이야.”
함께한 시간만이 사랑을 증명한다. 아무것도 몰랐던 건축여행을 따라다니다 보니, 어느새 건축과 공간 자체를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좋은 공간을 경험한 시간만큼 좋은 눈과 감각을 가지게 되는 것 아닐까. 아, 나는 건축가 남편에게 길들여진 것인가.
리옹에 머물게 된 건, 르코르뷔지에 때문이다. 리옹에 가서 르코르뷔지에의 작품을 봐야 한다고 했을 때, 나의 첫마디는 “거기까지 꼭 가야 돼?”였다. 여행을 하며 롱샹 성당도 다녀오고, 라투레트 수도원에도 다녀오면서 처음과는 달라졌다. 무언가를,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기대감과 설렘을 안겨준다. 리옹 역을 떠나 피르미니로 향하는 기차에 앉아있는 마음이 그랬다.
피르미니는 생각보다 활기찬 도시였다. 마침 장날이었는지 시청 앞 광장에는 천막을 친 노점상들이 많았다. 광장의 아저씨들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사방으로 길이 난 광장에서 어느 길로 들어서야 할지 주춤거리는데 먼저 다가와 “코르뷔지에?” 하더니 손짓으로 방향을 알려준다. 인심이 넉넉한 곳이구나. 발걸음이 가볍다. 눈 녹은 자리마다 젖어있는 길바닥조차도 반짝반짝 우리를 반겨주는 것 같았다.
작은 도시라 지도에서의 감각보다는 거리가 가까운 편이다. 멀리 노출 콘크리트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삼각뿔인지 사각뿔인지 커다란 고깔모자를 올린 성당 건물이다. 여기부터가 피르미니의 르코르뷔지에 구역이다. 조금 전까지와는 달리 대학 캠퍼스처럼 널찍한 구릉에 녹지 사이로 띄엄띄엄 아파트와 건물이 서있고, 길도 한적한 계획도시다.
성당 앞에는 빨간 창틀이 인상적인 건물이 하나 있다. 공공 수영장(La Piscine)이다. 르코르뷔지에가 세웠던 도시계획을 그의 사후에 함께 일하던 앙드레 보겐스키(André Wogenscky)가 완성한 것이다.
실내로 들어서니 수영장에서 들려오는 특유의 울림이 가득하다. 오래 전의 설계라 그런지 요즘에 비하면 좁지만, 아기자기하다. 실내에서는 사진 촬영을 하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대신 수영장 관중석에는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창으로 가득 들어온 자연광이 수영장을 환하게 비추고, 벽에는 물그림자가 일렁이고 있었다. 눈도 귀도 활기로 가득 찼다.
수영장을 나와 언덕배기를 오른다. 언덕 위에 위치한 르코르뷔지에의 문화회관(Maison de la Culture de le Corbusier)이라 적힌 곳은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이다. 하지만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바로 앞 경기장의 부속 건물인 줄 알았다. 문화회관에도 경기장 방향이 모두 창이라 관람이 가능하긴 하지만 운동장에는 따로 스탠드와 운영시설이 있다. 아무튼 경기장을 끼고 긴 경사로를 꽤 올라가야 문화회관이 나온다.
긴 건물의 앞뒤는 모두 창인데, 출입구가 있는 뒤쪽은 복도이다. 빨강, 노랑, 초록, 파랑으로 칠해진 부분은 실제로 열 수 있는 창문이다. 문화회관 입구에는 르코르뷔지에 구역의 안내판에서 초록색 경기장을 중심으로 왼쪽 빨간색이 생피에르 성당, 오른쪽 노란색이 문화회관이다.
그런데 아뿔싸. 문이 굳게 잠겨있다. 목요일에 문을 닫을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알고 보니 겨울 동안에는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주말 사흘 동안만 운영하고 있었다. 겨울이 비수기이긴 한 모양이다. 하루를 온전히 피르미니에서 보내기로 작정한 데다 이미 오전은 거의 지나가 버렸다. 이제 와서 리옹으로 돌아간다 한들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하루 정도 까먹는 건 나는 괜찮아, 밖에서 이렇게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좋아, 하는 것이 나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아쉬워서인지 건축가 남편은 평소보다 더 꼼꼼히 건물을 살펴보는 것 같다. 누구보다 속상한 건 그일 것이기에 슬슬 추워지고 배도 고프다는 말은 속으로 삼킨다. 결국 경기장을 크게 돌아 반대방향으로 내려왔다. 차도 거의 지나가지 않는 한적한 길옆으로 눈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아까 슬쩍 지나간 성당 주변에서도 한참 시간을 보냈다.
저쪽에 아파트도 하나 있다고 한다.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더 높은 언덕이다.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일단 추우니까 커피라도 좀 마시려 했다. 그런데 주변에 상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시내로 돌아가기엔 아파트와 반대방향이다. 돌고 돌다가 문을 연 햄버거 가게를 하나 겨우 찾았다. 프랑스 로컬 프랜차이즈 같았다. 햄버거로 배를 채우며 전열을 가다듬은 우리는 결국 라투레트 수도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다시 피르미니를 찾기로 했다.
배가 불러서인지, 다시 오면 된다는 마음의 여유 때문인지 교회 근처에 걸어놓은 현수막이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르코르뷔지에 건축물들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기념하는 현수막이다.
다시 돌아온 피르미니. 라투레트 수도원에서 자고 온 직후라, 피르미니는 어린 왕자를 기다리는 여우처럼 즐거운 기대감을 가지게 했다. 이번에는 렌트한 차를 곧장 문화회관 앞에 주차한다. 지난번에 왔던 것이 아주 허탕은 아니었다. 건물 바깥을 살펴보는 데 시간을 거의 쓰지 않게 되었으니 말이다. 문화회관은 르코르뷔지에 구역의 매표소이자 피르미니 도시계획을 소개하는 공간이다. 이 건물은 유일하게 르코르뷔지에의 생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피르미니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도 이 건물뿐이다.
길쭉하게 생긴 건물에는 무수히 많은 방들이 나란히 이어져 있는데 여러 가지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커뮤니티 활동이나 전시, 공연 등에 다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
르코르뷔지에를 상징하는 “펼친 손” 모양의 문손잡이가 인상적이다. 피르미니에는 유난히 펼친 손과 르코르뷔지에의 모듈러 시스템을 상징하는 한쪽 손을 든 사람(Moduler Man)으로 만든 조형물이 많았다.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며 다양한 공간을 마음껏 즐긴다. 여기서 어떤 활동을 할지, 상상해 보는 것도 재밌었다. 청소년을 위한 문화회관으로 계획되었다고 하니 다양한 동호회와 모임이 가능할 것 같다.
가는 데마다 만나게 되는 르코르뷔지에 특유의 세로로 긴 창들은 볼 때마다 마음이 끌린다. 르코르뷔지에는 가로창이 유명하지만 나는 세로창이 더 좋다. 다 보여주지 않는 것 같지만 다 볼 수 있고, 아름답게 보이는 폭이라고 생각한다.
제일 꼭대기 층에는 방마다 르코르뷔지에와 관련된 사진과 도면, 스케치들도 전시되어 있어 심심할 틈이 없다. 피르미니가 계획도시인 것도, 르코르뷔지에가 이미 1920년대부터 도시계획에 대한 이론과 계획을 제시하고, 실제로 인도의 찬디가르(Chandigarh)를 계획하고 건설했다는 것도 나는 이날 처음 알았다.
그러고 보니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구는 도시에 집중되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유럽에서 도시계획이 대두된 것은 필연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건축기술들과 디자인은 빠르게 폐허를 복구하고, 깨끗하고 쾌적한 도시를 건설하는데 안성맞춤이었다. 피르미니는 리옹과 그 주변의 대표적인 20세기 도시계획 중의 하나다. 피르미니 시의 주도로 여러 건축가들이 녹지와 주거, 생활공간이 어우러지는 피르미니 도시계획 프로젝트(Firminy-Vert)에 참여했다. 구시가를 벗어나면 나오던 널찍한 녹지나 쾌적해 보이는 주택가가 Firminy-Vert, 푸른 피르미니라는 도시계획의 모토에 잘 맞는 것 같다.
문화회관에서 구입한 입장권은 성당도 함께 관람할 수 있는 통합권이다. 점심시간을 피하기 위해 서둘러 성당으로 향했다. 문화회관도 성당도 직원이 한 명씩이라 점심시간에는 문을 닫아걸고 식사하러 가기 때문이다. 생피에르 성당(Église Saint-Pierre de Firminy)은 겉에서 보기에는 롱샹 성당과 비교했을 때 큰 감흥은 없었다. 규모가 더 크긴 했지만, 이미 롱샹 성당을 본 후라 눈이 너무 높아져 있었다. 게다가 라투레트 수도원에서 빛의 대포까지 보고 와서 내부에 대한 기대는 전혀 없었다.
성당 입구에서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대예배당 앞쪽으로 들어서게 된다. 마침내 예배당이 보이기 시작하고, 한 발짝 올라설 때마다 눈을 깜빡이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아름다운 천장이 펼쳐진다.
롱샹 성당에서는 수많은 창들이 빛을 조각내어 무대 위의 핀 조명처럼 쏘고 있었다. 생피에르 성당은 무수한 빛을 예배당 안의 공기가 모두 머금고 있는 것 같다. 따뜻하다. 이 빛의 공기 아래 서 있는 것만으로도 안아주는 것 같고 사랑받는 기분이다. 밖에서 봤을 때는 알 수 없었던 고깔 지붕과 창들이 만들어낸 감동이다.
1층 좌석 한쪽에 예쁜 색깔 창을 가진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예배실인 것 같은데, 지금은 청소도구가 정리되어 있었다.
좌석에서 제단 쪽을 바라보면 더욱 황홀하다. 롱샹 성당의 벽에도 몇 개 만들어 두었던 별이 이곳에는 무수한 별무리가 되어 쏟아지고 있다. 오리온자리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예쁜 낮별을 어디에서 또 볼 수 있을까. 한참을 의자에 앉아 바라본다.
순례자의 성당으로 지어진 롱샹 성당과는 달리, 이곳은 더 많은 교인이 모이는 곳이니만큼 밝고 생동감 넘치는 공간으로 만든 것 같다. 지하에는 성당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나 회의 같은 여러 활동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두었다. 롱샹 성당에는 전혀 없었던 부분이다. 지금은 르코르뷔지에와 관련된 전시 공간으로 쓰이고 있어서 여러 모형들을 볼 수 있다. 지하라고는 하지만, 경사에 지어져서 1층처럼 창도 많고 환하다. 르코르뷔지에 사후인 1970년대에 짓기 시작한 성당은 재정문제로 공사가 오랫동안 중단되고, 철거 위기까지 갔다가 2006년에야 완공되었다. 마지막 작품이자 최신 건물이 된 것이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괜히 노출 콘크리트가 좀 더 매끄러운 것 같기도 하고.
문을 닫기 직전까지 성당 안에 머물며 빛의 은총을 누리다가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차도 있으니 르코르뷔지에의 아파트로 올라가는 언덕이 두렵지 않다. 그런데 싱거울 정도로 가까웠다. 세대 수에 비해 주차장은 조금 비좁아 보였다. 아마 우리나라였으면 벌써 필로티 너머의 건물 반대편도 주차장으로 만들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로티 너머는 눈을 치우지 않아 다리가 푹푹 빠질 정도로 깊었다. 눈밭 가운데에 놀이터와 의자가 보인다. 아이들이 눈밭에서 뛰어놀았는지 발자국이 가득하다. 우리도 발을 적시며 들어가 본다. 도시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이 근처에서 제일 좋은 위치에 아파트를 지었구나 싶다.
19층 높이 건물은 원래 17층까지는 주거지인 아파트이고, 대부분 복층구조라고 한다. 18층과 19층에는 학교와 유치원, 20층에는 옥상 테라스를 만들었다. 30년 동안 운영되던 학교는 1998년에 문을 닫았다고 한다. 이 건물은 필로티, 입면, 학교와 테라스 지붕만이 1993년에 프랑스의 역사적 유적지로 등록되었다. 1000여 명의 사람들이 실제로 주거하고 있다 보니 다른 부분들은 원형이 보존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쇼룸으로 개방했던 집 하나는 가이드 투어에 참여하면 옥상 테라스와 함께 둘러볼 수 있다.
다시 어린 왕자 얘기를 잠깐 해야 할 것 같다. 예정보다 일찍 리옹 기차역으로 돌아온 피르미니 방문 첫날. 리옹 기차역에서 운명처럼 발길을 잡아 끈 기념품 매장에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건축에 빠져 리옹이 생텍쥐페리의 고향이라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어린 왕자 책부터 각양각색의 기념품들이 나를 기쁘고 또 슬프게 했다. 기념품들은 예뻤지만 생텍쥐페리를 일정 중에 챙기지 못하다니. 그렇게 나에게는 리옹에 다시 가야 하는 이유가 생겨버렸다. 리옹도, 피르미니도, 그곳에서 보낸 시간만큼 의미있는 도시가 되었다.
“나의 장미에게 소비한 시간 때문이야.”
어린 왕자는 기억해 두려고 되풀이했다.
* 피르미니의 르코르뷔지에 건축물에 대한 정보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sitelecorbusier.com/
* 이 글에 인용한 <어린 왕자>는 황현산 번역본(열린책들. 2015)임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