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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yers Feb 13. 2022

어느 멋진 날 one fine day

 빌라 사보아 Villa Savoye

대학을 갓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자유시간이 꽤 많이 주어졌던 때가 있었다. 그때 처음 살게 된 신도시에는 큰길 모퉁이마다 모델하우스가 있었다. 지금도 부동산이나 재테크에는 눈이 어둡지만, 널리고 널린 모델하우스는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당시 나오던 새 아파트들은 주방과 현관을 연결하는 뒷길이 있거나, 평면을 바꿀 수 있는 벽을 설치하는 등 새로운 구조들을 선보이고 있었다. 내게는 그저 처음 가족과 떨어진 낯선 도시에서 혼자 놀기에 딱 좋은 공간이었던 셈이다. 비록 건축가 남편에게 이런 얘기를 했더니 뭐 이런 여자가 다 있지?라는 황당한 눈빛과 함께 복부인이냐는 놀림이 이어졌지만. 그 후 20년이 흐르고 복부인은 못되었지만, 그런 경험들이 다 밑천(?)이 되어 건축기행도 따라다니는 복 많은 부인은 된 것은 아닌지! 오늘도 남의 집 구경을 이어가 본다.


여행을 하다 보면 예정에 없던 곳에서 더 매력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여행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에도 유명 여행지 말고 거기 가는 길에 어디가 조용하고 좋아요, 거기 가는 길에 여기도 꼭 들러보세요, 같은 정보들이 많이 있다. 유명한 곳은 기대에 비해 실망하는 경우도 많지만, 의외의 작은 발견은 여행에서 큰 기쁨이 되어준다. 이번 여행에도 그런 의외의 도시나 장소가 몇 군데 있었다. 오늘 찾아가는 파리 근교 푸아시(Poissy)도 바로 그런 곳이다.

 

개선문 아래에서 파리의 광역 철도망인 RER을 타고 30분 남짓이면 푸아시에 도착한다. 푸아시 역을 빠져나오면 바로 앞에 버스를 탈 수 있는 정류장이 있다. 내리는 방향과 타는 방향이 따로 있어서 잠시 헤매는 사이에 30분마다 한 대 있는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목적지인 빌라 사보아(Villa Savoye. 1929)는 푸아시 역에서 걸어서 20분이라고 하니, 그냥 걸어서 가보기로 한다. 역 앞 광장을 벗어나자마자 푸아시가 좋아졌다. 오래된 건물들이 아기자기하게 자신의 시간을 뿜어내며 도시의 풍경을 만들고 있다. 걸어가는 방향에 저만치 보이는 성당은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미니어처 같다. 알고 보니 1561년, 프랑스 개신교의 종교의 자유를 두고 처음으로 토론을 벌인 곳이 푸아시였다고 한다. 꽤 유서가 깊은 도시였다. 성당을 돌아 큰길을 버리고 건물 아래 아치를 통과해 골목길로 접어든다. 곧장 오붓한 시골 냄새가 난다. 푸아시가 더 좋아졌다.

 


언제 지어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세월이 느껴지는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이어진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 모퉁이를 돌 때마다 새로운 풍경에 흥이 난다. 이 근처에 왕립 수도원이 있었다는데 그 흔적인가 싶기도 하다. 지금 지도를 확인해 보면 결코 길지 않은 길이었는데 왜 그렇게 오래 걸렸을까. 어쩌면 이리저리 사진을 찍느라 걸음이 더뎠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계속 은근한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어떻게 된 게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기운이 다 빠졌다.


인적이 드문 주택가가 이어지다가 갑자기 꽤 큰 도로가 확 펼쳐진다. 잠깐 내리막길을 걸어서 좋긴 한데, 좁은 길에 익숙해져서인지 잘못 온 것 아닌가? 싶다. 그런데 바로 그곳의 평범해 보이는 하얀 철문이 입구였다. 한 시간 가까이 통 인적 없던 길에 갑자기 웅성거리며 서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모두 빌라 사보아를 찾은 방문객들이다. 빌라 사보아는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작품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다더니, 과연 그런가 보다.

 

군데군데 포스터와 바닥의 화살표를 따라간다. 문 앞의 작은 표지판과 담에 붙여놓은 안내


하얀 철문과 이어진 긴 담이 모두 빌라 사보아다. 입구에서는 집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여름에는 나무들이 우거져서 시선이 더 많이 가려질 것 같다. 잔디밭이 생각보다 넓었다. 넓은 마당에 비해 집이 조금 덩그러니 놓여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잔디밭 사이로 난 길은 자동차 길이다. 필로티 안쪽으로 자동차가 들어가서 집을 돌아서 나오게 돼 있다. 들어가면서 보이는 곳은 집의 남쪽인데, 현관은 반대편인 북쪽에 있다


이 집을 얘기할 때 꼭 나오는 것이, 르코르뷔지에의 ‘새로운 건축의 5원칙’이다. 자신의 이론을 가장 충실하게 구현해 놓았다는 것이다. 건물을 땅에서 띄운 필로티, 옥상정원, 자유로운 평면, 가로로 긴 창문, 자유로운 입면이 건물과 삶을 바꾼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건축은 철근콘크리트라는 새로운 기술과 함께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빌라 사보아는 한눈에도 요즘 짓는 단독주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몇 년 먼저 지어진 라로슈의 집(Maison La Roche. 1925)에 비해 형태가 다듬어져서 훨씬 안정적인 느낌도 든다.

 

잔디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건물에 다가간다. 이 길은 원래 자동차를 위한 것이다. 그래서 뒤로 돌면 둥근 곡선의 창과 현관문이 나오고, 그 뒤가 차고 입구다. 둥근 모양도 차가 돌기 좋게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사람이 아니라 자동차를 위한 동선을 만든 셈이다.

 

빌라 사보아의 북쪽 모습. 왼쪽으로 자동차가 들어와서 가운데 까만 현관문 앞에 사람을 내려주고, 오른쪽으로 돌아 나간다. 건물 오른쪽인 서쪽에 차고 입구가 있다
자동차를 위한 길을 만들면서 생긴 현관의 곡선

 

라로슈의 집에서도 봤던 가느다란 필로티 기둥이 계속 신경 쓰였다. 지름이 겨우 40cm도 안 돼 보였다. 우아하고 예쁘다. 르코르뷔지에가 자주 사용하는 세로로 긴 창과도 어울린다. 하지만 이렇게 가느다란 걸 본 적이 없어서 걱정이 되었다. 경주에서 큰 지진이 난 지 얼마 안 됐을 때라, 특히 필로티 구조의 원룸 건물들이 지진에 취약하다는 뉴스를 많이 접하고 온 터였다.


여기는 필로티가 이렇게 가늘어도 괜찮은 거야? 근대 건축 초기의 건물을 현재의 기준으로 판단하면 곤란하지 않겠냐는 우문현답이 먼저 돌아온다. 하긴 그렇다. 기술도 경험도 인식도 부족했던 시절, 르코르뷔지에의 치열한 고민이 담긴 결론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어디선가는 실험적인 최신 건축과 검증된 안정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건축가가 있을 것이다. 아무튼 2층 건물이라 위에서 받는 하중이 적고 기둥 간격도 가까운 편이긴 하다.

 


집안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홀 가운데에 놓인 나선형 계단이다. 계단만 찍어놓은 사진을 봤을 때는 훨씬 커 보였는데, 생각보다 아담했다. 미술관의 계단과 가정집의 계단을 같은 크기의 사진으로 보기 때문에 생기는 착시현상이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자꾸만 시선이 갔던 것은 계단 뒤편에 테이블과 함께 있는 세면대였다. 왜 이렇게 오픈된 공간에 세면대를 설치한 걸까. 궁금증 해결사 건축가 남편은 당연하다는 듯이 1층이 차고와 연결되어 있었고, 정원이 넓은 단독주택이기 때문에 외부에서 시간을 보내고 들어오면 바로 손을 씻을 수 있게 세면대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한다. 아, 그러고 보니 너무 아파트의 구조에 익숙해져서 생각의 폭이 좁아져 있었다. 나중에 평면도를 확인해 보니, 1층 화장실 안에는 세면대가 없고 홀의 세면대를 여러 용도로 사용했던 것 같다.

 


 계단 옆쪽의 벽에는 경사로가 있다. 좁아서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자꾸 엉키는 계단을 뒤로하고, 느릿느릿 경사로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간다. 경사로에 난 창으로 2층에 있는 테라스를 살짝 보면서 걸을 수 있다. 위와 아래, 안과 바깥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르코르뷔지에의 건축적 산책로(Architectural Promenade)인 것이다.

 

올라가다가 2층 중간 참에서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을 바라본다. 3층 옥상으로 가기 위한 경사로는 밖으로 이어진다


2층에 올라서면 제일 먼저 벽난로가 있는 큰 방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 집에서 가장 넓은 공간 중 하나다. 이 방에는 벽보다 창이 많다. 방에 들어서면 3면의 창들이 일정한 높이에 쭈욱 이어져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테라스 쪽에는 큰 통창이 있고, 그 너머로 테라스 난간에 창문처럼 만든 프레임이 안쪽의 창 높이와 딱 맞다. 그래서 창이 더 길어 보이고, 테라스가 방의 일부가 된다. 이런 식으로 집 전체가 같은 높이에 실내와 실외의 구분 없이 창과 프레임이 이어져 있다. 자세히 보면 유리가 있는 곳과 없는 곳이 있지만, 어느 쪽에서 바라보아도 가로로 긴 창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긴 방의 가운데쯤에 벽난로가 있다. 이 방이 주방으로도 연결되는 걸 보면, 아마 벽난로를 중심으로 식당도 되고, 거실도 되었던 모양이다.

 

방의 끝에서 바라본 모습. 왼쪽 노란 불빛이 보이는 문이 주방으로 통한다


이곳에서 테라스를 내다보면 옥상정원으로 가는 경사로의 존재감이 뚜렷하다. 하지만 아직 실내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다시 추운 밖으로 나가고 싶진 않았다. 대신 2층을 좀 더 둘러보기로 한다.


방에서 연결된 주방은 북향이지만 큰 창들 덕분에 환하고 기분 좋은 공간이었다. 이곳에 조리도구와 음식 냄새가 가득하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잠시 해봤지만, 차가운 하얀 타일만 반짝거리고 있었다.

 

주방으로 들어가는 복도에는 긴 수납장이 자리하고 있다. 아마 그릇장 같았다


2층의 나머지 부분은 집주인이었던 사보아 부부의 침실과 아이들의 방이다. 부부 침실은 생각보다 많이 컸다. 서재와 욕조, 화장실이 딸린 꽤 근사한 방이었다.

 

붙박이장 외에는 가구가 모두 빠진 이 방의 주인공은 욕실이다. 방에 들어서면 침실로 들어가는 붙박이장을 사이에 두고 푸른 타일의 욕조가 오픈된 공간에 놓여 있다. 세면대 위에 보이는 천장의 채광창은 이 집에 몇 군데 더 있다.


 

침실을 지나 들어가는 파란 방은 서재다. 서재의 붙박이 책상은 요즘 가구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타일이다. 책상에 앉으면 2층 테라스가 내다보인다
침실문과 나란히 있는 또 하나의 문은 테라스로 연결된다. 지붕이 있어 비가 오는 날에도 테라스를 즐길 수 있다

 

부부 침실의 욕실벽 뒤로 자녀방의 복도가 있다. 부부 침실은 경사로 쪽에 입구가 있고, 자녀방은 계단에서 더 가깝다. 아이들 방과 부부 침실의 입구가 서로 다른 길에 있는 것이다. 가족이지만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의미였을까.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아파트는 거실을 중심으로 방들이 나 있어서 이런 구조가 낯설다.

 

계단을 중심으로 왼쪽은 자녀방, 오른쪽은 부부 침실이다. 서로의 방으로 가려면 계단을 빙 둘러서 가야 한다


두 개의 자녀방. 방마다 세면대와 붙박이장이 설치되어 있다


오늘도 역시 남의 집 구경은 재미있다. 그리고 둘러보면 둘러볼수록 아직도 르코르뷔지에에서 한 발짝을 벗어나기가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코르뷔지에가 벌써 다 해버렸네!’라고나 할까. 이런 감각, 이런 생동감, 이런 세련미는 쉽게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번 여행에서 르코르뷔지에를 만날 때마다 매번 그랬다. 현대 건축은 아직 르코르뷔지에의 손바닥에 있구나.

 

하지만 건축 당시에는 집주인인 피에르 사보아가 불만을 품고 르코르뷔지에에게 소송을 걸기도 했다고 한다. 방수나 단열 기술이 지금처럼 뛰어나지 않았던 시절이라 사방으로 길게 난 창 때문에 추웠고, 습기가 빠지지 않아 곰팡이도 많았다고 한다. 수평 옥상의 방수가 제대로 안되어 집에 물이 새기도 했다. 급기야는 아들이 폐렴에 걸렸다고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바람에 소송은 흐지부지 되었고, 사보아 가족도 2차 세계대전 때 이 집을 떠났다고 한다.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했던 집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이 살고 있지 않는 지금, 더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게다가 아마도 이 집에 치를 떨며 떠났을 사보아의 이름이 영원히 이 집에 남아있게 됐다.


다시 거실로 돌아와 큰 방에 놓인 의자에 한참 동안 앉아 있었다. 쉬고 싶기고 했고, 그곳에 앉아 방을 드나드는 사람들과 테라스 정원과 옥상정원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그림자를 보는 것이 이 집에서 가장 좋았기 때문이다. 건축적 산책로라는 것이,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보는 풍경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리라.

 


한참을 앉아 쉬다가 테라스를 통해 옥상정원으로 향한다. 그 의자에 너무 오래 앉아있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 방해가 되는 것 같기도 했지만, 춥기도 했다. 특별히 난방을 하고 있진 않았지만 그래도 털신과 겨울 외투를 입고도 추웠으니 사보아는 르코르뷔지에가 얼마나 미웠을까!


옥상정원의 모습은 상상했던 것과는 좀 달랐다. 겨울이라 조금 황량한 느낌이 들어서일까. 옥상정원은 함께하는 곳이라기보다는 홀로 휴식을 취하며 사색하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테라스에서 경사로를 따라 옥상으로 올라가는 건축적 산책로
둥글게 만들어 세운 벽 덕분에 아늑하고 사적인 공간이 만들어졌다. 옥상정원에서는 사방의 풍경은 물론이고, 2층 테라스도 정원이 된다

 

로비에서 봤던 계단도 옥상까지 이어져 있어 내려오는 길은 계단을 이용한다. 빌라 사보아는 전날 갔던 라로슈의 집보다는 더 복잡하다. 구조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었던 나는 한동안 이 문은 어디로 가는 문인가, 여기에 또 무슨 공간이 나온단 말인가 하며 헤매고 다녀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우연히 만나는 공간들이 이 집의 참모습인지도 모른다.

 

구불구불 계단을 돌아내려 오면 1층 홀에는 여기서 쉬어 가라는 듯이 의자가 놓여있다


계단 옆 조그만 서점을 구경하고, 로비 홀의 창가 의자에 앉아 또 한참을 기다리고 나서야 남편의 빌라 사보아 탐방은 끝이 났다. 이 작은 집에서 몇 시간을 보냈는지, 도시락이라도 싸왔어야 했나 보다.


그런데 이번엔 들어갈 때 대충 지나갔던 도로변 정원사의 집이 발길을 붙든다. 위치도 입구 대문 옆이고, 빌라 사보아가 주말별장이었다고 하니 관리인 숙소 정도 되었나 보다. 비어있는 나의 위장은 빨리 이곳을 떠나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다시 보니 본채만큼이나 매력적이다. 르코르뷔지에는 무슨 정원사의 집도 이렇게 예쁘게 지어놨나. 아무리 힘들고 배고파도 그냥 가는 것은 또 예의가 아니기에 성심성의껏 둘러본다.

 


그리고 마침내 하루를 보낸 하얀 철문을 빠져나왔다. 푸아시 역으로 돌아가는 길은 무조건 버스를 타기로 했다. 버스정류장에서 시간표를 확인하며 어물어물하다가 바보같이 등 뒤에서 또(!) 버스를 놓쳤다. 30분마다 오는 그 귀한 버스를. 어쩐지 정류장에 같이 있던 학생들이 자꾸 우리를 쳐다보더라니. 그래도 올 때처럼 걸어가기엔 이미 방전 직전이라 그냥 눌러앉아 빌라 사보아를 이야기한다. 이야기가 많은 집이라 30분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다. 따뜻한 버스에 궁둥이를 붙이자 어느새 지치고 힘들었던 기억은 멀리멀리 사라졌다. 푸아시는 여전히 아기자기하고 정겨웠다. 우리에겐 어느 멋진 하루만이 남았다.


* 르코르뷔지에와 빌라 사보아에 대한 정보는 코르뷔지에 재단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www.fondationlecorbusier.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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