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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yers Feb 13. 2022

파리 국제 캠퍼스

Cité Internationale Universitaire


해묵은 추억을 하나 꺼내본다. 때는 바야흐로 1990년대.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배낭여행족이 하나둘 생겨나고, 한비야의 첫 책이 아직 출간되기 전이었던 1990년대 초반의 일이다. IMF가 나라를 덮치기 전까지, 대학가에는 어학연수 바람이 불어 닥쳤다. 방학을 이용한 단기 연수는 물론이고 휴학을 하고 1년씩 외국으로 떠나는 친구들도 많았다. 외국어 학과에서는 학점 교류 형태로 학생들을 보내기도 했다. 당시에 친한 친구가 불어불문학과를 다니고 있었다. 여름방학 동안 학과 선배들과 함께 파리의 자매결연 학교에 연수를 간다고 했다. 국제전화와 국제우편이 아니면 연락이 힘들던 시절이라 방학 동안 연락이 끊겼던 친구는 가을학기 시작과 함께 까맣게 타서 돌아왔고, 친구의 모험담은 한동안 우리를 들뜨게 했다. 그리고 생각지도 않았던 건축가 남편과의 여행에서, 20대의 뜨겁던 우리들을 다시 만났다.


친구의 짧은 파리 생활 가운데 인상 깊었던 이야기 중 하나는 방학 동안 비어있는 시테의 대학 기숙사에서 생활했다는 것이었다. 집에서 부모님과 살고 있던 나에겐 기숙사라는 공간이 주는 매력에, 파리라는 낭만이 더해져서 귀가 쫑긋했다. 파리의 대학생이라니, 상상만으로도 설레던 시절이었다. 머나먼 도시 파리가 실체를 가진 존재로 처음 다가왔다.

 

그런데 나중에 여행을 가보니 지도를 아무리 뚫어져라 봐도 시테는 그냥 파리 한가운데에 있는 조그만 섬이었다. 그곳에는 기숙사나 대학은커녕 노트르담 대성당과 법원, 생트 샤펠 성당이 위치하고 있는 관광의 중심지였다. 이 시테가 그 시테가 아닌가. 내 눈에 잘 안 띄는 곳에 기숙사 건물이 있는 건가, 혼란스러웠지만 첫 여행에서는 하루하루 생존하느라 바빠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 뒤에도 파리의 여러 나라 기숙사에 대한 이야기들을 드문드문 들을 때마다 저기가 친구가 묵었던 곳일까, 떠오르곤 하긴 했지만, 서울에도 고향 후배들을 위한 기숙사를 운영하는 곳들이 있으니까 그러려니 했던 것 같다.

 

해묵은 의문은 뜻밖에도 건축가 남편과의 여행에서 풀렸다. 프랑스에는 정말 많은 시테(cité)들이 존재하고, 한 단어가 하나의 의미만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달은 것이다. 그래도 프랑스어가 제2외국어였는데, 참 무색하다. 프랑스어 시테(cité)는 도시, 발상지, 중심지, 단지, 주택단지 등 다양한 의미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시내 중심의 시테 섬은 파리의 발상지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불타기 전! 센 강 좌안 쪽에서 바라본 노트르담 대성당의 뒷모습. 고딕 건축의 독특한 양식인 플라잉 버트레스(flying buttress)가 성당을 받치고 있다


이렇게 조금 떨어져서 보면 시테 섬이 얼마나 작은 지도 잘 보인다.

 

그리고 친구가 머물렀던 시테는 바로 파리의 대학도시(Cité Internationale Universitaire. 국제 대학 캠퍼스)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오래전 친구가 덧붙였던 설명은 내 기억 속에서 지워지고, 시테라는 이름만 남아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파리 대학도시는 파리 소재 대학의 통합 기숙사촌으로 그 역사는 192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몇 년 후면 100주년을 맞이하는 것이다. 대학도시는 단순히 기숙사만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 도서관, 레스토랑, 극장, 스포츠 시설과 공원을 갖추고 있다. 학생들이 세계의 문화와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가 마련된 그야말로 거대한 대학생들의 도시다.

 

이미지 출처는 대학도시 홈페이지 www.ciup.fr


대학도시는 프랑스의 보조금을 지원받지만, 이곳의 기숙사인 학생회관들은 모두 해당 국가의 정부나 민간의 후원으로 지어진다. 교류를 위해 그 나라 학생만 머무는 것은 아니고, 여러 건물에 흩어져서 배정받게 되지만 자국의 학생회관이 있으면 그만큼 더 많은 지분이 생긴다. 현재 모두 마흔 개의 학생회관이 있는데, 아시아는 일본 학생회관과 동남아 학생회관이 유일하다. 튀니지 같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학생회관이 있는 것은 과거 프랑스의 식민정치와 관련이 있다. 대학도시는 2020년까지 더 많은 학생회관을 건립할 계획인데 그중에는 한국 학생회관도 있다. 이 글을 다시 정리하는 2022년 1월 현재 세 개의 학생회관이 더 지어졌고 그중에는 매우 현대적인 건물로 2018년 완공된 한국 학생회관 Maison de la Corée도 있다.


이미지 출처는 대학도시 홈페이지 www.ciup.fr

 

대학도시의 역사가 워낙 오래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오랜 건축 유산들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건축가 남편과의 여행에서 방문지에 포함된 것이겠지만.

 

지하철역에서 나오면 캠퍼스의 가운데쯤이다. 좌우를 둘러봐도 어디가 끝인지 가늠이 안 되는 넓은 캠퍼스에서 의지할 나침반은 건축가 남편이다. 그는 망설임 없이 구글맵을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이곳에 르코르뷔지에가 설계한 학생회관이 두 개나 있다고 한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고풍스러운 건물들을 지나는데 문득 일본 학생회관이 눈에 띄었다. 건물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이곳에 기숙사를 세웠다는 것 자체가 일본의 국력이나 경제력을 보여주는 것이라 부러운 마음이 앞섰다. 그런데 이 건물이 지어진 것이 일제강점기였다고 하니 더욱 복잡한 심경이다. 어쩌면 이곳에서 유학한 사람 중에는 조선인도 있었을까.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가득하고 녹지가 많은 대학도시 캠퍼스. 오른쪽 사진은 일본 학생회관. 이미지 출처는 모두 대학도시 홈페이지 www.ciup.fr


그렇게 한동안 커다란 캠퍼스를 가로질러 가다 보니 단정한 건물이 하나 나타난다. 스위스 학생회관(Pavilion Swisse)이다.

 

 

일본 학생회관처럼 나라의 정체성이 한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건축가인 르코르뷔지에의 정체성은 잘 드러난다. 필로티 위에 올려진 건물, 모던한 직선과 곡선, 현대적인 창문, 콘크리트와 금속 재료들, 옥상에 보이는 정원까지 모두 현대건축의 틀을 세운 르코르뷔지에의 특징들이다. 알고 보니 1933년 완공된 스위스 회관은 대학도시에 세워진 최초의 현대적인 건축물이었다고 한다. 설계를 맡은 르코르뷔지에는 스위스 학생회관을 통해 도시의 공동주거에 대한 그의 철학을 실험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도 너무 일찍 도착한 탓에 스위스 학생회관은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시간. 가까이에 위치한 브라질 학생회관(Maison du Brésil)부터 구경하기로 한다. 브라질 학생회관도 르코르뷔지에의 건축 철학을 담고 있지만, 디자인의 느낌은 굉장히 달랐다. 스위스 학생회관과 비교하면 좀 더 거친 자연과 토속적인 느낌이 담겨 있다고 할까.

 

스위스 학생회관에서 조금만 가면 브라질 학생회관이 나온다. 역시 필로티가 있고, 1층에 색유리를 끼운 창들이 눈에 띈다
사진에 보이는 작은 별관은 기숙사 사감을 위한 숙소다

 

라 투레트 수도원과 시기가 비슷해서인지, 발코니 쪽 모습이 비슷해 보인다. 발코니 벽에 칠한 색색의 페인트 덕분에 건물이 경쾌해 보인다.  


왼쪽이 스위스 학생회관, 오른쪽은 브라질 학생회관


스위스 학생회관에 비해 브라질 학생회관 외벽의 돌은 자연 그대로의 돌을 그대로 붙인 느낌이다. 두 건물 모두 1층에 별관처럼 만들어진 건물의 외벽에 돌을 사용했다. 

 

브라질 학생회관은 1959년에 완공되었다. 스위스 학생회관과는 무려 26년이라는 시간차가 있다. 롱샹 성당과 라 투레트 수도원보다도 늦게 완성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원숙기에 다다른 르코르뷔지에가 다양한 층위를 가진 필로티 구조를 가지고 논 느낌이라고 건축가 남편이 즐거워한다. 그러고 보니 얼마 되지 않는 건물 아래 공간에 오밀조밀 뭐가 많기도 하다. 그렇다고 복잡하게 엉켜있는 것이 아니라 공간이 확실하게 구별되면서도 각각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아마 그의 눈에는 더 잘 보였을 것이다. 비 내리는 눅눅한 아침에 콘크리트 기둥들 사이에 오래 서 있는 것은 별로였지만, 그가 즐거워하니 나도 좋았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다. 이벤트 경품 번호표 같은 조그만 종이가 입장권이다. 구경할 수 있는 곳은 로비가 있는 1층뿐이었지만, 르코르뷔지에가 만든 개인 주택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로비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맞이하는 유리 우편함. 그 뒤로 안내하는 아주머니가 계시고, 왼쪽으로 보이는 알록달록한 홀이 커뮤니티 공간이다


 

안내에 따라 널찍한 커뮤니티 공간에 들어선다. 창이 큰데도 어둑어둑하다. 아마 색색의 원색으로 채워진 창 때문인 것 같다. 마치 몬드리안의 그림을 창에 옮겨놓은 것 같다. 게다가 창문의 강렬한 빛이 광택이 있는 검은 바닥에 반사되어 공간 전체가 현란하다. 아침인데도 파티장 같은 분위기다. 들어서자마자 이 강렬함에 온통 시선을 빼앗기게 된다. 그래, 이것이 브라질이지! 하는 느낌도 들었다.

 

밖에서 볼 땐 이 정도로 화려해 보이진 않았는데, 안에서 보니 압도적이었던 색유리창. 노출 콘크리트 천장과 검은색 바닥에, 기둥과 벽면을 화려한 원색으로 칠했다
가구도 모두 콘크리트로 만들어 배치되어 있었다


커뮤니티 공간에는 콘크리트로 만든 테이블과 의자가 배치되어 있고, 실제로 우리가 머무는 동안에도 학생들이 계속 이곳을 드나들고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파리 대학생의 생활을 살짝이나마 엿보는 것 같아 두근거렸다. 이 화려한 색감들 사이에 학생들이 북적이면 어떤 모습일까도 상상해 본다. 들뜬 젊음이 느껴진다.


사진의 구도를 잡는다는 핑계로 의자에 앉아 쉬다 보니, 건축가 남편이 한동안 보이지 않는다. 아! 1층이 이게 다가 아니었다.

 

로비를 중심으로 한쪽엔 커뮤니티 공간이 있고, 반대편에는 작은 도서관과 계단 등이 있는데 U자 모양으로 깊게 파고 창을 내어서 안과 밖의 구별이 잘 되지 않는다
천장의 둥근 채광창. 라 투레트 수도원의 빛의 대포가 떠오른다


밖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부분들도 안에서 보니 많이 보였다. 천장에 난 둥근 창도 재밌었지만, 둥근 곡선을 가진 중정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U자 모양으로 둥글게 파서 들쑥날쑥하게 만들어진 중정은 안에서 보면 안뜰 같지만 건물 밖에서 그냥 연결된 공간이다. 아늑하게 싸여있어 밖에선 잘 보이지 않고, 안에서는 내부 공간처럼 보였다. 안에서도 겹겹이 유리 너머로 보면 어디가 안이고 어디가 밖인지 잘 구별되지 않았다. 다소 어두운 반대편 커뮤니티 공간과는 달리 환한 빛을 끌어들이고 있는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유리로 만든 우편함. 지금은 다소 위태로워 보이긴 해도, 숫자를 붙인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유리에 새겨 넣은 디테일은 여전히 세련되고 예쁘다
스위스 학생회관과 브라질 학생회관은 모두 프랑스 문화부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내부에 건축물과 관련된 안내가 되어 있다


브라질 학생회관은 원래 브라질의 유명 건축가가 설계를 했는데, 스위스 학생회관을 지어 본 경험이 있는 친구 르코르뷔지에에게 도움을 청했다. 결국 르코르뷔지에가 많은 변화를 주면서 마무리까지 하게 됐다고 한다.

 

강렬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브라질 학생회관 구경을 마치고, 다시 스위스 학생회관으로 향한다. 다시 돌아와 보니 브라질 학생회관과는 정말 결이 다르다는 게 실감난다. 외관도 내부도 그렇다. 모르고 보면 밝고 깔끔한 스위스 학생회관이 나중에 지어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눈 덮인 스위스의 산처럼 고요하고 차분한 느낌이다.

 

화려한 색감의 브라질 학생회관이 드라마틱한 경험을 하게 해 준다면 전혀 다른 감각의 스위스 학생회관은 하얀 천장과 따뜻한 색감의 바닥으로 밝고 온화하게 맞이한다


색색의 철제의자와 금속 우편함. 우편함에 붙어있는 아크릴 번호표가 어쩐지 낯설지 않다. 아크릴에 글자를 새기는 기계는 무척 오래된 것이었나 보다


브라질 학생회관은 1층에 별관도 앞뒤로 두 개나 있고 넓었는데, 스위스 학생회관은 로비에 들어서서 한 바퀴 빙 둘러보면 전체가 보일 정도다. 대신 스위스 학생회관에서는 2층의 기숙사 방 하나를 구경할 수 있었다. 구세군 회관에서도, 브라질 학생회관에서도 금단의 구역이었던 계단을 올라가 볼 수 있는 것이다. 입장료가 조금 더 비싼 보람이 느껴졌다.

 

직선으로 짧게 만들어도 될 공간이지만, 모양을 내고 중간참도 길게 만들어 표정을 준 계단
간유리와 유리블록으로 변화를 준 창과 르코르뷔지에의 작품 사진이 걸려있는 2층 복도. 르코르뷔지에가 스위스 출신이라 이곳에서 좀 더 대접받는 것 같기도 하다


청소 수레를 보니 실제로 학생들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학생들은 없었지만 괜히 복도를 걷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마침내 열린 노란 방문.

 

라 투레트 수도원과 거의 비슷한 크기로 느껴졌던 방. 가구배치도 다르고 개인 샤워실과 변기도 있다. 대신 라 투레트 수도원과 브라질 학생회관에는 있는 발코니가 이곳에는 없다


어쩌면 다른 방의 가구배치나 모습은 이 방과는 다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최초의 모습을 간직한 방을 보는 것은 늘 설렌다. 이곳의 방들을 거쳐간 사람들 중에는 건축학도도 있었겠지. 외국의 어느 나라에서 와서 르코르뷔지에가 설계한 방에서 생활하는 기분은 어땠을까. 어느새 청춘의 열정마저 달콤하게 느껴지는 걸 보니 나이를 먹어가나 보다.

 

방 구경을 끝내고 나오면서 벽에 걸린 르코르뷔지에의 작품 사진들을 보면서 복도를 천천히 걷는다. 흰 벽에 흑백사진들 사이로 등장하는 방의 문들은 색깔이 제각각이다. 그런데도 브라질 학생회관에서처럼 알록달록 화려한 것은 아니고, 라 투레트 수도원처럼 통일된 노랑과 초록이 주는 밝은 기운과도 다르다. 색은 다양하지만, 차분한 가운데 변화를 주었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빨간 문마저도 차분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스위스 학생회관의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었다. 1층에 마련된 르코르뷔지에를 기념하는 방이다. 학생들의 공동 휴식공간을 원형 그대로 남겨둔 곳이다. 이 방의 가구 하나하나 모두 오리지널 제품이라고 한다. 앉아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황송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보나 마나 건축가 남편이 아주 오랫동안 둘러볼 것이기 때문에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 유명한 코르뷔지에 의자다.

 


어느 예술가의 거실이라고 해도 믿어질 만큼 감각적인 코르뷔지에의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잔디 덕분에 겨울인데도 정원이 참 좋다. 벽에는 원래 자연의 사진들이 있었는데 건축 당시 스위스 학생회관을 둘러싼 수많은 비판과 논쟁 가운데 그 사진들이 학생들을 현혹시킨다는 주장도 있었다고 한다. 현재의 벽화는 1948년 르코르뷔지에가 다시 그려 넣었다.

 


르코르뷔지에 아틀리에의 의자들은 르코르뷔지에 체어 LC라고 불린다. 제일 왼쪽의 금속 프레임에 검은 가죽 의자가 낯익다. LC2 “Grand Confort”, 위대한 편안함이라는 이름을 가졌는데 지금도 생산되고 있다. 실제 가구 디자인은 코르뷔지에 아틀리에의 유일한 여성 디자이너였던 샬롯 페리앙(Charlotte Perriand)이 담당했는데, 그래서인지 대학도시 공식 홈페이지에는 샬롯 페리앙의 가구들이 그대로 남아있다고 안내되어 있었다.


뒤늦게 오래전 친구가 묵었던 곳이 어딘지 궁금해졌다. 친구에게 다시 물어보니 자신만만하게 “한국관! 허접했어!”란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한국관에 머물렀을 리는 없으니 아마도 1930년에 인도차이나의 집으로 문을 연 동남아시아 학생회관(Maison des Étudiants de l’Asie du Sud-est)인 모양이다. 사진을 보니 불국사 아래에 있는 싸구려 모텔 같았다는 친구의 설명이 이해가 됐다. 오래된 만큼 낡았던지 친구 방은 입주 첫날부터 물이 새서 결국 방을 옮겼다고 했다. 100년쯤 전의 프랑스인들이 기와를 얹은 콘크리트 건물은, 태생부터 한계가 있었지만, 지어질 당시에는 꽤나 앞서가는 건물이었던 모양이다. 대학도시 홈페이지에는 ‘대학도시의 보석(architectural jewel of the International Campus, inspired by Asiatic designs)’이라는 표현도 등장한다.

 

이미지 출처는 대학도시 홈페이지 www.ciup.fr


시간은 흐르고 모든 것은 변한다. 좋았던 것이 구닥다리가 되기도 하고, 이상하게 여겨지던 것이 새로운 가치를 상징하며 각광받기도 한다. 모든 것이 변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오래도록 가치를 지니는 건축물을 만들어야 하는 건축가의 일은 얼마나 무거운가. 대학도시를 지키는 마흔 개의 학생회관은 그 무게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여전히 반짝거리는 젊음이다. 지금 이곳에서 행복한 우리들의 기억이다. 시테 섬 건너편 골목에 있는 작은 레스토랑에서 배를 채우고, 빛이 쏟아지는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모네의 그림을 바라보며 오후를 보낸다. 오늘치 행복은 이걸로 완벽하다. 거리마다 건물마다 이야기가 있는 도시 파리에, 오늘도 나의 이야기와 추억을 하나 더 남긴다.



* 르코르뷔지에에 대한 정보는 코르뷔지에 재단 http://www.fondationlecorbusier.fr

* 파리 대학도시와 건축에 대한 정보는 http://www.ciup.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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