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투레트 수도원 Couvent de La Tourette
새소리에 잠이 깨는 건 꽤나 오랜만이었다. 작은 침대에서 담요를 겹겹이 덮고 잤더니 몸이 좀 무겁긴 했다. 그래도 작은 방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아늑했다. 대충 눈곱을 떼고 아직 동이 트고 있는 밖으로 나선다. 어제 오후 동네 사람들이 개와 함께 산책하는 게 많이 보였는데, 수도원 뒤편 언덕 너머로 사라졌다가 돌아오곤 했다. 우리도 그쪽으로 가보기로 한다.
라 투레트 수도원(Couvent de La Tourette) 주변의 공원은 생각보다 꽤 큰 모양이었다. 18세기 대항해시대에는 프랑스에 새롭게 도착한 식물들을 이곳에서 키웠다고 한다. 수도원 건너편 숲까지가 모두 공원인데 우리는 가까운 언덕으로 향했다.
아직 새벽별과 초승달이 반짝이고 있었다. 한겨울이라 공기가 차가웠지만, 맑게 깨어난 기분이 좋다. 상쾌한 짧은 산책을 마치고 하룻밤 새 익숙해진 방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묵은 곳은 건물 뒤편의 4층 방이다. 매표소와 가까운 쪽이다. 반대편 방은 올라가지 못하게 막아놓은 것으로 보아 수사들이 머물고 있는 것 같았다. 라 투레트는 수도원이라 처음부터 1인실로 설계되었고, 지금도 1인 1실로 사용한다. 덕분에 이번 여행 중 처음으로 각방을 썼다.
정말 작지만, 꼭 필요한 건 다 있다. 개인물품이 많지 않은 수사들에겐 충분한 공간이었을 것 같다. 특히 작은 방에도 발코니가 있다는 것이 좋았다. 규율 속에서 단체 생활을 하는 수사들에게는 유일하게 허락된 사적 공간이 이 방과 발코니일 것이다.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는 사람이 쾌적함을 느끼는 최소한의 공간을 이론으로 발전시켜 실제 건축에 적용했는데, 이 작은 방도 그의 모듈러 이론(The Modulor)이 적용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기준이 키 183cm의 남성이라고 하니, 자그마한 나에게는 부족함이 없을 수밖에.
최소 공간에서 최대 효과를 낼 수 있는 공간을 수치화한 모듈러 다이어그램. 르코르뷔지에는 키 183cm의 사람이 팔을 들어 올렸을 때의 높이 226cm를 도출해 냈는데, 건축뿐만 아니라 모든 디자인에 적용할 수 있는 황금비율이라고 생각했다.
이미지 출처는 코르뷔지에재단 홈페이지 http://www.fondationlecorbusier.fr
아침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향한다. 간밤에는 어두컴컴했던 계단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려가는데 문득, 지난밤 나의 길을 밝혀주었던 계단 조명이 눈에 들어온다.
코르뷔지에 할아버지, 참 예쁘게도 심어 놓으셨네요. 고맙습니다, 하고 혼자만의 인사를 건넨다.
식당 앞 로비에서 노수사와 마주쳤다. 어제도 오가며 눈인사를 나눴던 분이다. 산타클로스 중에서도 나이가 아주 많은 산타클로스처럼 생긴 분인데, 얼굴이나 표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어찌나 맑은지 봉주르! 인사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다. 글을 쓰다가 생각난 김에 라 투레트 수도원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단체사진 속에 그 수사님의 얼굴도 보인다. 아직 건강하신 것 같아 괜히 마음이 놓인다.
식당은 수도원 앞쪽의 너른 잔디밭을 향하고 있다. 언덕 위 수도원답게 전망이 훌륭하다. 저녁에는 조명 탓에 보이지 않았지만, 아침에는 온전히 밝아오는 창밖 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
코코아와 오렌지 주스, 우유, 시리얼, 빵으로 차려진 아침식사. 오른쪽에 있는 무섭게 생긴 칼로 빵을 잘라서 빵바구니에 담아 오는 셀프 서비스다. 수사와 방문객의 식사시간은 분리되어 있는지 식당에서는 마주치지 않았다. 단출하지만 여유롭게 식사를 하고, 주방도 구경한다. 오래된 주방이 아니라 세련된 복고풍 주방 같다. 세련된 느낌이 드는 것은 노란 주방가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수도원 곳곳에서 선명한 원색들이 눈에 들어왔었다. 방, 복도, 도서관, 식당, 예배당, 어딜 가나 군데군데 명랑한 빨강, 노랑, 초록, 파랑이 인사하고 있었다. 특히 밖에서 보면 공간마다 다른 원색의 커튼이 알록달록하다. 건물 밖의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다채로움이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생활하는 수사들에겐 이런 시각적 즐거움이 소소하지만 활기를 주지 않았을까.
사진을 정리하면서 찬찬히 보니, 창이 난 방향에 따라 커튼 색을 다르게 한 것 같다. 동쪽은 빨강, 남쪽은 노랑, 서쪽은 초록. 우리가 잔 뒤편 방은 동쪽이라 빨간 커튼이었다.
이제 라 투레트 수도원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인 예배당과 만난다. 예배당은 3~4층 건물 높이의 높은 천장을 가진 커다란 상자 같다. 그 안에 들어서니 내가 아주 작은 존재가 된 것 같았다. 이 빈 상자를 채우는 것은 이번에도 빛이다. 롱샹 성당의 실내가 절대자의 축복을 끌어들이는 것 같았다면, 라 투레트의 예배당은 그에 비해 훨씬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다.
이곳에 80명의 수사가 가득 앉아서 미사를 드리는 풍경을 상상해 본다. 이런 공간에 그레고리안 성가가 가득 찼을 때의 느낌은 어떨까.
라 투레트 수도원 예배당의 빛은 기하학적인 모양의 창을 통해 들어온다. 문을 들어서면 가운데 큰 제단이 있고 한쪽은 의자가 마주 보고 배치되어 있고, 다른 한쪽엔 작은 예배실들이 있다. 그러나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천장에서 내려오는 밝은 빛을 내려보내는 커다랗고 둥근 창이다. 그 유명한 일명 ‘빛의 대포’이다. 세 개의 원형 창은 색깔과 각도가 달라서 시간대마다 공간의 색감을 바꾸어 놓는다. 건너편 붉은 벽에도 네모난 창에서 빛이 떨어지고 있다.
제단의 반대편에 놓인 의자들 뒤로는 가로로 긴 창들이 나란히 햇빛을 끌어들이고 있다. 빨강, 노랑, 파랑을 칠해 색색의 빛이 들어오는 모습이 꽤 잘 보인다. 가까이 가서 보니 꽤 깊이 각도를 내었다. 건물 밖을 구경하면서 봤던 정체불명의 창들이, 안에서 보니 이렇게 드라마틱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빛의 대포는 왜 저 벽 너머로 더 많은 빛이 떨어지는 걸까? 저 빛 아래에 직접 가 볼 수는 없는 건가? 의자 위에 올라가 까치발을 해봐도 담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가 않는다. 저긴 어떻게 들어가지? 혹시 수도사들만 들어갈 수 있는 걸까? 그 먼 길을 날아와서, 이 시골까지 들어와서 잠도 잤는데, 기도실에 들어가 보지 못한다면 너무 아쉬울 것 같다. 결국 건축가 남편이 매표소로 뛰어간다. 돌아오는 그의 손에는 작은 열쇠가 하나 들려있다.
네모창 아래의 붉은 벽 뒤로 돌아 들어가는 작은 문이 열린다. 좁은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예배를 준비하고 비품을 보관하는 공간이 나온다. 조금 더 들어가자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예배당 바닥을 통과해야 하는데 방향도 짐작할 수가 없다. 내가 비명만 지르는 사이, 건축가 남편이 스위치를 찾은 덕분에 무사히 건너편 기도실에 도착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빛 아래에 섰다.
아, 빛의 대포라는 표현과 명성이 허언은 아니구나!
수사들은 매일 개인 예배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이 기도실은 바로 그 개인예배를 위한 공간이라고 한다. 그래서 더욱 비밀스럽게 좁고 어두운 바닥을 통과해서 축복 같은 빛을 맞이하도록 한 것일까.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기도실의 색감들은 선명하고, 탁자 위의 십자가마저 개성적이지만, 그렇다고 가볍지는 않다.
라 투레트 수도원이 지어지던 1950년대는 2차 세계대전의 포화가 휩쓸고 지나간 이후 많은 유럽의 젊은이들이 종교에 귀의하던 시기였다고 한다. 갑자기 늘어난 지망생들을 교육하고 머물 곳이 필요했다. 전쟁의 참상을 겪고 종교를 선택한 이들의 기도실에 쏟아지는 빛이 하필이면 대포라는 이름을 가졌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다시 지하통로를 지나 문을 잠그고, 예배당을 나온다. 들어갈 때는 침잠하는 느낌의 내리막이었던 입구 복도가 이번엔 환한 창을 가진 오르막이 되었다. 빛을 향해 걸어 나온다. 다시 속세로 돌아가는 것이다.
종교가 세상에 큰 위로를 주지 못하는 시대이지만, 나의 종교가 무엇인지와 상관없이, 수도원에서의 하룻밤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뒷모습마저 맑았던 노수사의 인사와 함께 라 투레트의 빛과 그림자, 침묵의 밤과 밝아오는 새벽이 기억될 것이다.
[건축가의 성지순례 두 번째_수도원에서의 하룻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