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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yers Nov 16. 2021

수도원의 하룻밤 1.

라 투레트 수도원 Couvent de La Tourette 

1년 넘게 서랍에 넣어두었던 글을 조금 정리해서, 사진은 좀 많이 정리해서 드디어 발행합니다.

이미 한 번 매체를 탔던 글인데도 이런저런 핑계로 너무 더뎠네요. 이제 조금 속도를 내보려고 합니다 :)


건축가의 성지순례 두 번째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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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이라니. 수사들이 수행하고 있는 그곳에서 잠을 잘 수 있다고? 수도원에서 묵게 될 거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템플 스테이 같은 건가 했다. 광장에 자리 잡고 마을의 중심이 되는 성당과 달리 수도원은 속세와 거리를 둔 곳이다. 수사들은 오직 종교적인 활동만 하며 생활한다. 템플 스테이를 떠올린 것도 무리가 아니다.

 
어차피 여행은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긴 한데, 이어지는 질문. 도대체 무슨 수도원이길래 거기서 잠까지 자야 하는 건가요? 아, 이번에도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다. 바로 프랑스 리옹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 에브(Éveux)에 위치한 라 투레트 수도원(Couvent de La Tourette)이다. 1960년에 완공됐으니 롱샹 성당보다 늦게 지어졌다. 몇 안되는 르코르뷔지에의 종교건축이기도 하다.



수도원이라 그런지 이번에도 한적한 산길을 구불구불 올라간다. 솔직히 라 투레트 수도원의 첫인상은 다소 우중충했다. 롱샹 성당을 본 후라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롱샹 성당 주변의 아늑한 분위기와는 전혀 상반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겨울인데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은 너무 무겁고 춥고 어둡고 칙칙했다. 롱샹 성당처럼 하얗게 칠을 한 것도 아니고 정직한 노출 콘크리트 그대로다. 적어도 내가 상상한 건 이렇게 공장 같은 건물은 아니었다. 정말이지 콘크리트에 대해 가지고 있던 모든 부정적인 편견들의 집합처럼 보였다. 아무리 르코르뷔지에라고 해도 조금 실망스러운 마음이랄까.


방문객 주차장에서 바라본 라 투레트 수도원의 첫인상.


설상가상 입구의 매표소 문도 닫혀있다. 잠잘 짐을 챙겨서 오느라 어깨에 멘 가방이 꽤 묵직했지만 건축가 남편은 아랑곳없이 성큼성큼 앞서서 수도원 건물을 구경하러 간다. 어쩌면 짐을 풀러 갔다가 다시 나오는 것보다는 빨리 이 건물을 보고 싶은 마음이 컸을지도 모르겠다.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아, 여긴 참 넓구나. 오늘도 많이 걷겠구나.

라 투레트 수도원은 부지가 꽤 넓었다. 왼쪽 건물은 성당이고, 창이 많은 오른쪽 건물에 수사들의 여러 생활공간이 들어있다.

 
수도원 건물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기둥(필로티)들이 떠받치고 있는 수도원의 건물 앞쪽과 옆, 뒤쪽 삼면에는 작은 창과 발코니들이 쭉 이어져 있다. 모두 수사를 위한 개인침실이다. 지금은 열 명 남짓한 수사가 이곳에 머물고 있지만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80명이나 있었다고 한다. 그땐 저 방들이 거의 찼을 테니 꽤 활기찼을 것이다. 지금 이 텅 빈 수도원을 채우는 것은 방문객이다. 각종 종교행사와 기업 세미나 장소로도 빌려준다고 한다. 물론 건축답사를 오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매주 일요일 오후에는 건축물 가이드 투어도 있다.
 
스위스 출신인 르코르뷔지에는 사실 개신교 집안에서 자란 무신론자였다고 하니 재밌다. 롱샹 성당과 라 투레트 수도원의 설계를 주선한 도미니코회의 쿠튀리에(Marie-Alain Couturier) 신부는 사제이자 예술가였다고 한다. 쿠튀리에 신부는 “미적 감동과 종교의 숭고함을 담은 성당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은 당신뿐”이라며 르코르뷔지에를 설득했다.
 
쿠튀리에 신부는 현대적인 성당건축을 통해 종교의 부흥을 꾀하며, 1930년대부터 예술과 종교의 만남을 통한 프랑스 아르 사크레(L’Art Sacré: 종교예술) 운동을 이끌어 왔다. 프랑스 시골 곳곳에는 그의 주도하에 당대의 예술가들이 참여한 성당들이 남아있다. 이 성당들은 종교에 무관심하던 시대에 지어졌지만, 그 아름다움과 거룩함으로 현대인들의 종교심을 불러일으킨다. 그중에서도 롱샹 성당과 라 투레트 수도원은 쿠튀리에 신부의 유산 중에서도 건축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롱샹 성당이 한껏 개성적이었다면, 라 투레트 수도원은 개성을 꾹꾹 눌러 담아 절제한 것 같다. 수도원답다고 해야할까.


잠깐 옆길로 빠져서 아르 사크레 운동의 일환으로 지어진 성당 몇 개를 살펴본다. 

아시 성당에 대한 모든 이미지와 설명은 파시 공동체 홈페이지 http://passy-culture.com/?page_id=245


아시 성당(Notre Dame de Toute Grâce. 1938)은 스위스와 가까운 알프스의 아시(Assy)에 위치한 작은 마을 파시(Passy)에 있는 공동체의 성당이다. 모리스 노바리나(Maurice Novarina)가 설계를 담당한 건물은 전통적인 성당의 모습과 판이하다. 루오, 샤갈, 마티스, 레제, 브라크 등 당대의 예술가들을 초청해 다양한 예술작품으로 채워넣었다. 이 중에는 쿠튀리에 신부의 작품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개성적인 작품들로 가득 채워져 전체적인 조화는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모든 이미지와 설명은 방스 로사리오 성당 홈페이지 http://chapellematisse.fr

 
프랑스 니스 근처의 방스(Vence)에 위치한 방스 로사리오 성당(Chapelle du Rosaire de Vence. 1951)은 일명 마티스 성당으로 불린다. 앙리 마티스가 디자인한 로사리오 성당은 마티스의 벽화와 스테인드글라스로 예술적인 개성을 뽐낸다. 마티스 박물관도 함께 있다고 하니, 호기심이 생긴다. 
 
다시 라 투레트 수도원으로 돌아와 보자. 라 투레트 수도원의 방문객을 맞이하는 것은 아주 작은 매표소 겸 서점이다. 방문객의 출입이 엄격하게 제한되던 1960년대까지는 수사들이 가족이나 지인을 만나는 면회장소로 쓰였던 공간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출입구의 비밀번호를 받아야 왼쪽에 보이는 빨간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 경사지에 위치하고 있어 주차장과 같은 높이인 이곳은 실제로는 3층이다.

 

초록색 문과 작은 창이 난 둥글게 생긴 작은 방들이 매표소 겸 서점이다.


무거운 콘크리트 건물에 좀 튀는 듯한 빨간 문이 출입구다. 식당과 숙소, 예배당이 몇 층, 어디쯤에 있는지 대강 설명해 준 것 외에는 아무런 정보가 없이 수도원과 만난다. 여기로 가면 되나, 여기로 가도 되는 건가 계속 의심하면서 한발 한발 걸음을 옮긴다. 사실 구조가 복잡하다기 보다는,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함부로 걸음하기가 조심스러운 탓이다.

 
4층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 계단을 통해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3층에는 수사들이 성경 공부를 하는 도서관이 위치해 있다. 엄숙한 도서관이라기보다는 아담한 북카페 같다. 안쪽 서가는 공개가 되지 않지만 바깥의 우중충한 첫인상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도서관에는 천장으로 난 문과 계단이 있는데, 수사들의 숙소와 바로 연결되는 통로라고 한다. 하지만 방문객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길이다.


학생들이 교수님과 토론하는 도서관의 방. 수사들의 숙소와 연결되는 계단이 천장으로 이어진다. 계단 옆 창으로 내다보면, 벽 너머에 있는 큰 서가가 살짝 엿보인다. 복도 쪽에 천장부터 바닥까지 세로로 길게 낸 빨간 창도 한 번 열어 보았다.
 
도서관에는 작은 방이 하나 딸려 있다. 기도실이다. 뾰족한 사각뿔 모양의 천장 덕분에 작지만 경건하고 맑은 느낌이다. 신에게 순명을 바치기로 한 수사들이 성경을 읽다가 이곳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떠올려 본다.


도서관의 기도실은 아주 작은데, 뾰족한 천장이 너무 높아서 한 화면에 잘 담기지 않을 정도다. 기도실 입구의 문은 노란색, 사물함은 초록색이다.
한 층 위 복도에서 바라본 기도실 지붕. 삼각뿔 오른쪽에 튀어나온 부분이 창문으로, 안에서 보면 수평의 빛 그림자를 그린다.

 
도서관을 바깥쪽으로 빙 둘러가는 복도는, 학생 수사들의 강의실과 연결된다. 이곳은 복도라기보다는 길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눈높이에 맞춰 좁고 긴 창이 나있을 뿐, 벽과 천장과 바닥이 모두 침묵하는 길이다. 이 길에 접어드는 순간, 절로 기도하는 마음이 생긴다. 수사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이 길을 걸을 것이다.



길지 않지만, 아득하게 먼 느낌이 들었던 복도. 복도 끝의 창이 특이하다. 열린 덧창 같은 것을 콘크리트로 만들어 놓아서 빛은 끌어들이되 시선은 차단한다. 모퉁이를 돌면 복도가 더 좁아지는데, 도서관을 확장하면서 생긴 변화라고 한다.
 
몇 해 전 방문했던 노르망디 지역의 몽생미셸 수도원(Abbey of Mont Saint Michel)의 꼭대기에 있던 아담한 정원과 회랑이 떠올랐다. 그곳도 사제들이 기도를 하며 걷는 곳이라고 했다. 그 회랑을 걷는데 채 몇 걸음을 옮기기 전에 왠지 눈물이 차올랐었다. 전혀 다른 느낌의 장소인데도, 라 투레트의 좁은 복도에서 바로 그 감정이 되살아났다. 좁고 어두운 복도가 내면에 집중하게 하기 때문이었을까.
 
수도원은 수사들의 신앙생활과 일과에 맞춰 동선을 만들었다. 공부하고 예배드리고 생활하는 것이 동선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공동 생활공간인 2층의 로비는 라 투레트에서 가장 널찍하고 천장도 높다. 이곳을 통해서 많은 사람이 모이는 대회의실과 식당, 예배당으로 연결되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수사님들조차 마주치기 쉽지 않다. 고요한 가운데 우리 두 사람의 소리만 들린다.
 
2층 로비의 큰 창으로 내다보면 중정을 둘러싼 건물이 더 잘 보인다. 처음 밖에서 봤던 것처럼 투박하고 커다란 사각형 건물은 아니다. 세모로 난 창문, 뾰족한 지붕을 가진 방,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창문들. 수도원의 중정에는 밖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여러 구조들이 복잡하게 중첩되어 있다.


건물 밖에서는 보이는데 안에서는 방향과 구조가 헷갈려서 들락날락 하면서 찾아다니기도 했다.

 
로비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아래로 이어지는 경사로였다. 예배당으로 가는 길이다. 예배당 입구는 닫혀 있었다. 혹시나 하고 열어보니 슥 열렸다. 하지만 창이 적고, 예배당이 해가 뜨는 동쪽에 있어서 저무는 햇빛으로는 사진을 제대로 남기기가 어려웠다. 예배당은 내일 아침에 다시 자세히 둘러보기로 하고, 다시 로비로 나와 뜰을 향해 난 문을 열어 본다.


라 투레트에서 건축면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예배당. 내일 다시 구경하기로 한다.
예배당 입구와 반대편에 있는 문을 열면, 정원으로 나가는 계단이 있다.


어두운 예배당에 있다가 밖으로 나오니 환하고 시원해서 좋다. 천천히 한 바퀴 돌면서 비로소 자세히 건물 밖을 둘러본다. 여유가 생겨서인지, 안에서 구경을 한 다음이라 그런지, 아니면 해질녘 햇빛을 받아서인지 처음 도착했을 때와는 좀 다르게 보인다. 한결 편안하고 온화하게 이 건물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로비의 창문으로 보였던 필로티 구조도 건물 아래로 들어가서 구경했다. 경사를 그대로 두고 건물 전체를 필로티 위에 올려서, 아래에 꽤 높고 넓은 공간이 생겼다. 길을 만든 것은 아니지만, 기둥들이 저절로 길이 되어 준다. 비가 오는 날에도 이 아래는 꽤 운치있는 산책로가 되겠다.


다양한 모양의 필로티가 보는 방향과 햇빛에 따라 건물 아래에도 표정을 만든다.


이윽고 어둠이 내렸다. 수사들은 따로 식사를 하는지, 식당에는 우리 부부를 포함한 다섯 명뿐이었다. 다음 날 수도원에서 열리는 청소년 행사에 자원봉사를 하러 파리에서 온 의사선생님과 행사 진행을 담당하고 계신 키가 큰 수사님 한 분, 그리고 독일에서 온 건축가였다. 한국어와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쓰는 사람들이 저마다 짧은 영어로 몇 마디 인사를 나눈다. 자연스럽게 수사님과 의사선생님이 호스트 역할을 하며 음식을 나눠주었다. 독일 건축가는 우리가 부부인 것을 알고 나서 자기는 이번 주말 자유라고 하며 즐거워 한다. 아, 이것이 독일식 유머인가.
 
식사는 빵과 함께 쌀로 만든 샐러드 같은 것과 생선 요리, 간단한 디저트가 준비되어 있었다. 추워서 따뜻한 음식을 먹고 싶었던 나의 바람과는 달리 음식이 모두 차가워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수행을 하는 수사들의 식사니까 매번 더운 음식을 먹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와서 돌아보니 함께하는 식사자리에서 실례가 될까봐 사진을 남기지 못한 것이 더 아쉽다.


오후에 건물을 구경하며 식당문을 열어봤을 때 준비되어 있던 다섯 명의 자리. 어쩌다보니 우리가 이곳에서 저녁식사를 한 유일한 기념사진이 되었다.

 
오랜만에 낯선 이들과 어색하지만 훈훈했던 저녁을 마치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간다. 저녁을 먹으러 올 때는 그래도 어슴푸레하게 길이 보였는데, 이제는 그야말로 칠흑 같은 어둠이다. 계단에서는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 깊은 어둠 속에서 수사들은 일생을 보내는구나. 신에게 온전히 의지한 이들의 삶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어둠 속을 더듬어가며 동행에게 의지한다. 산다는 건 그렇게 한치 앞을 모르는 날들을 곁에 있는 누군가에게 조금씩 의지하고, 조금씩 의지가 되어 주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한참 계단에서 헤매고 있을 때 건축가 남편이 계단 조명 스위치를 발견했다. 최소한의 빛이지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혼자 잠드는 수도원에서의 밤은 나를 향한 질문과 함께 깊어 갔다.


저녁을 먹으러 갈 때는 식당의 불빛을 보고 찾아갔는데, 돌아오려고 나오니 건너편에 아무런 불빛도 보이지 않는다. 수도원의 밤은 적막하다.



 <수도원의 하룻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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