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온 지 5일 만에 방문에는 이런 종이가 붙었다.
나는 귀가 얇다.
물리적으로는 꽤 두꺼운 귓불을 갖고 있지만, 남의 말에 쉬이 흔들거린다는 면에서 나는 귀가 매우 얇다. 어떻게 보면 장점일 수도 어떻게 보면 단점일 수도 있는데, 이게 화근이었는지도 모른다. 해보지도 않고 선배들이 해주는 조언에, 친구들이 해주는 말에 너무 귀를 팔랑거렸던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해보기도 전에 이미 포기했다. 취업 말이다. 대학교를 다닐 때 1년 휴학을 했었는데, 그때 에버랜드에서 기숙 알바를 했었다. 그때 세상 진상이란 진상은 다 만나보고 서비스직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배운 후로 공부 의욕이 솟았다. 그래서 복학을 기점으로 내 학교 성적은 눈부신 상승세를 이어나갔고, 4학년 1학기에는 꽤 많은 과목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분자생물학과 경영학, 그리고 교양까지 모든 과목에서 A+를 맞는 쾌거를 이뤄냈다.
그런 성취도 잠시, 취업의 문은 상당히 높아 보였다. 나는 취업 멘토링이나 대외활동을 해본 적도 없었고, 영어도 잘 못하는 데다가, 인턴쉽도 안 해봤고, 무엇보다 다들 그렇게 찾으라는 내가 하고 싶은 직무 또한 찾지 못했다. 뭐가 뭔지를 알아야 나한테 맞는 게 뭔지 알 것 아닌가. 그래서 도망치듯 대학원을 선택한 것이었다. 물론 중간에 영국을 다녀오고 한국에서 인턴을 하기도 했지만, 결국 내가 "다음 단계"로 지정한 것은 대학원이었다. 석사를 하지 않으면 전공을 살려서 취업을 하기 어렵다는 말에 그런 결정을 했던 것이다. 참 어리석게도 그 당시에는 한 번도 취업공고를 살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괜히 들여다봤다가 낙담만 할 것 같아서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석사를 오고 나니, 또 다들 박사를 하라고 했다. 한국 대학원에 비해서 우리 학교 우리 과는 PhD 진학률이 80%나 된다며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학장님이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이 난다. 동기는 20여 명 정도였는데, 대부분 다 PhD에 관심이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독일에서는 대학 진학률이 우라 나라만큼 높지 않다. 우리나라만큼 대학 진학에 사활을 거는 나라가 아니고, 랭킹이란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없다. 이미 대학교들이 평준화되어있어서 독일 아이들은 대학교에 진학할 때에도 집 가까운 데로 간다. 상황이 이러하니 공부를 진짜로 더 하고 싶은 아이들만 대학에 진학한다. 또 그중에서 진짜로 진짜로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애들만 대학원에 진학한다. 이렇게 거르고 걸러진 공부 덕후들이 대학원에 있는 것이다.
나는 그저 취업이 안될 것 같아서 취준의 일환이라고 생각하고 대학원에 진학한 것이었기 때문에 (게다가 학비도 공짜라고 하니 안 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처음에 동기들과 괴리감이 많이 느껴졌고, 스스로 부족하다는 생각도 많이 했었다. 나는 소위 말하는 "과학자로서의 열정" 따위는 없고, 그저 졸업장 한 장 따러온 생각 없는 애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자주 사로잡혀 누가 나무라지도 않았는데 괜히 혼자 주눅 들기도 했다. 이러한 또래 압박이 있는 상황에서 PhD가 아닌 다른 진로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왠지 나를 "학계를 저버린 배신자"로 만드는 것 같았다. 그래서 문득문득 "와 진짜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다."라고 수없이 되뇌는 한편, PhD 공고가 이메일로 날아오면 꼼꼼히 살펴보곤 했었다.
2년의 석사 유학 동안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 한 가지를, 정말 딱 한 가지만 얘기해보라고 하면 나는 이 종이를 내 기숙사 방문에 붙인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정말 크기만 컸지, 끔찍할 정도로 못생기고 지저분했던 기숙사 방을 조금 사람 살 만한 곳으로 바꿔놓고 나서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바로 이 종이를 방문에 붙이는 일이었다.
당시 내 룸메이트들은 모두 유러피안들이었고, 주변에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이용해 대놓고 한국어로 떡하니 써서 붙여놨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드라마 주인공들이 목표하는 것을 책상이나 벽에 붙여놓는 걸 보고 따라 하길 좋아했었다. 처음에는 그냥 있어 보이려고, 열정 쟁이인 척하려고 붙여놨었는데, 지금의 나는 이 종이의 힘을 믿는다. 내가 이렇게 종이에 써서 붙여놓은 주문들은 언젠가는 꼭 이루어졌다. 토익 800점 이상을 맞아야겠다고 적어놨을 때도, 전과목 A+를 맞아야겠다고 적어놨을 때도, 독일 대학원에 가겠다고 적어놨을 때도.
그래서 이번에는 해외취업을 목표로 삼았다. 내가 유학을 온 가장 큰 목적이 외국에서 살기 위함이니, 2년이라는 기간은 그걸 위해 준비하는 기간이다, 그러므로 2년 안에 나는 내 목표를 이뤄야 한다라는 마음으로 연습장 한 장을 북 찢어서 매직으로 쓱쓱 적고 가위로 너덜너덜한 부분을 잘라내고 저렇게 방 문에 붙여뒀다.
그 후로 저 문구는 차츰차츰 잊혔고, 종이 또한 너무 조악하게 붙여둔 탓에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무의식 중에 내 목표가 상기가 되었던 것인지 나는 꾸준히 공부하는 와중에도 CV를 업데이트해두었고, 간간히 취업정보를 찾아보면서 독일에서 내가 석사학위로 할 수 있는 직무들에 대해서 찾아봤었다. 처음에는 PhD를 하기가 싫어서, 공부는 제발 좀 그만하고 싶어서 research assistant나 research associate, lab technician으로 검색해서 찾아봤었다.
Linkedin, indeed, stepstone과 같은 잡 포털에서 생명공학, 생명과학, 생물학 등등 biology 쪽을 공부한 석사가 지원할 수 있는 직무들을 살펴보다 보면 진로는 PhD 아니면 위의 세 가지로 나뉘는 것 같은 착각을 쉽게 하게 된다. 그리고 나의 경우에는 독일어로 일을 할 수준이 전혀 안됐기 때문에, German proficiency를 요구하는 일자리나 아예 독일어로 올라오는 공고 자체는 제외대상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독일 취업은 참으로 암담해 보였다. 전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은 내가 갈 곳이 없었다. 한국을 가야 하나? 하는 생각에 한국 취업 준비도 사실은 조금씩 조금씩 병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의감이 들었다. 학사 졸업할 때에도 학사로는 취업이 안될 것 같아서 석사를 온 건데, 석사 졸업할 때에도 석사로 취업이 안될 것 같아서 박사를 가야 한다니? 그런데 박사 따면 취업 잘되나요 라고 묻는 내게 누구도 뾰족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팔랑거리던 귀가 멈춘 건 바로 그때였다.
아, 이대로 가다간 평생 공부만 하다가 죽겠구나?
결단을 내렸다.
저 이제 공부는 그만 할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