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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일라 Mar 15. 2020

파리에서, 소울푸드

    프랑스 총리가 긴급 공지를 발표했다. 식료품점 (대형마트로는 franprix, monoprix 등 소형마트는 개인 식료품점 등) 주유소, tabac 신문매점, 은행, 공공서비스 기관은 유지하되 이 외의 식당, 카페, 영화관, 나이트클럽은 문을 닫는다. 14일 현재, 전염병 범유행에 대처하는 3단계에 격상한 것이다. 급격한 속도로 늘어가는 확진자 수에 다음주 쯤에는 격상하지 않을까 했는데 주말을 넘기지 못했다. 프랑스 코로나 19대응단계는 1단계 (국내유입 차단), 2단계 (국내감염 확대방지), 3단계 (범유행대처)로 구분되어 있다. 



    이목이 세계 보건 기구 뉴스와 각 나라 정부 대응에 집중되어 있는 이런 시기에는 더욱이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귀를 귀울이게 된다. 실시간 뉴스를 시시각각 지켜보는 친구들이 밤낮으로 안부를 묻고 틀어진 많은 계획들을 논의한다. 매일 변화하는 통계 그래프, 무너진 경제면 기사들, 그 속에서 격리되고 또 코로나와 싸우는 수 많은 의료진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또 묻는다. 두려움 속에 사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우리가 알던 그 날들로 돌아갈 수 있을까. 어둠 속에서 홀로 생각을 하곤 했다. 



    프랑스에 공표된 담화로 인해 프랑스 내 경각심이 공연하게 퍼진 듯 하지만 크게 달라지는 경위는 아직까지 없는 편이다. 마스크/손세정제 없어요 ‘Plus de masque, plus de gel’ 이란 문구를 써 붙여놓은 것만은 한국과 똑같다. 전국 크레슈와 초-대학교에 휴교령이 떨어진 지금, 아이들은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주변에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 집을 보면 서로 근무처와 연락을 하고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기 바쁜 눈치. 프랑스 또한 의과 대학생 및 은퇴한 의사들과 협력해 (이탈리와는 확연히 다른 부분일터) 병상과 의료진 확보에 힘쓰고 있다고 하니, 곧 바이러스가 잡히리라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미국 곳곳에서 대형 마트엔 필생활품들이 사재기로 동이 나는 사태가 벌어지고, 전 세계 국가 간 서로 굳게 문을 걸어잠구는 경우도 매일 늘고 있음을 뉴스를 통해 알 수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현재 살고 있는 곳의 정책과 대응 방법에 눈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나, 개인이 해야할 일들이 정확히 무엇인지 정확히 알기란 어렵다. 건강한 식단과 꾸준한 운동으로 체력을 보강하고 이웃에 대한 따스한 관심을 놓지 않는 것? 인종차별을 금하는 것? 이런 상황 또한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자들을 비난하는 것? 특정 대상을 악마화 하는 것? 



    테러의 위협에도 추모와 일상을 동시에 놓고 공포에 굴복하지 않던 프랑스인들. 간간히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보이긴 하나 대부분 서로 조심하는 정도였다. 3단계가 격상된 오늘 이후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말이다. 오후에 볼일이 있어 시내로 나갔다 저녁에 들어왔다. 물론 한국 언론에서 조장하는 만큼의 심각한 혐오와 공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마스크를 쓴 7,80대로 보이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버스를 타면 다들 달려가서 손을 부축해 앉혀주기까지 하는, 따스한 마음을 잃지 않는 모습을 목격했다.

 


    집 안 팎으로 쏟아지는 뉴스거리와 스트레스에 병드는 몸과 마음을 증진시키고자 소울푸드를 찾아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소울푸드는 삶이 녹아있는 음식을 일컫는다. 언제 어디서든 마음을 녹여주는 그런 음식이다. 나에게는 송송 썰은 고추를 듬뿍 넣고 고수가 위에 풍성히 올려져 있는 베트남 쌀국수가 그러하고, 뜨끈하고 부드러운 콩나물 국밥 한그릇이 그러하다. 언제 먹어도 맛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취향이 한 편으로 확고해지는 떡볶이 또한 빠지지 않는다. 언제 먹어도 집밥같은, 몸과 마음을 든든히 채워주는 음식. 이 중 파리에서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건 쌀국수 한그릇이다.



    프랑스 식민지배 시절, 베트남에서 먹던 쌀국수에 쇠고기 육수를 사용하게 되면서 현재 파리의 베트남 쌀국수 형태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세계 다양한 요리가 모여있는 파리지만, 변치않고 사랑을 받고 또 유명한 쌀국수 한그릇은 파리를 거치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빠트리지 않고 찾는 음식이다.



    10유로, 또는 그를 조금 넘는 가격에 하루종일 든든히 버틸 수 있는 쌀국수를 파는 곳은 파리 곳곳에 있지만, 그 중 단골인 몇 곳을 떠올린다. 대부분은 근처에 중국마트나 한국마트가 있기에 돌아오는 길에 과자나 라면을 한두개씩 사서 돌아오기도 한다. 파리에서 한국 음식 재료 또는 물품을 살 수 있는 K-Mart (또는 Ace Mart) 는 네-다섯 군데, 크고 작은 구멍가게까지 합하면 열 군데가 넘을 것이다. 코로나 사태로 칩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달고나 만들기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최근에 들린 한국마트에서도 달고나가 주 화제였다는 사실. 한국에서 부터 바다 건너 프랑스까지 유행은 넘어오는가 보다.



    파리 13구는 대표적인 차이나타운이라 불리우는 곳인데, 최근 우한의 여파인지 모르겠으나 거리와 중국 레스토랑이 더욱 한산해 보였다. 집 근처에 위치한 중국 음식점 한 군데도 한동안 휴업 공지를 내걸고 굳게 문을 닫기도 했을 정도니, 중국인들이 대부분 모여사는 13구는 분위기야 말해 뭣하나. 쌀국수 집은 체인점이 아닌 이상 점심식사 시간과 저녁식사 시간 사이는 재료준비/쉬는 시간을 갖는다. 시간을 잘 맞춰 찾아 가야 한다. 주방에서 늘 끓고 있는 육수 덕에 앉고 나서 그릇을 받기까지 10분이 넘지 않고, 늘 유지하는 일정한 맛 덕택에 언제 찾아도 만족스런 식사를 할 수 있다. 



    미국에서부터 줄기차게 먹어온 나의 소울푸드, 쌀국수 그릇을 전부 합하면 몇백 그릇정도 되지 않을까? 보통 그릇은 소, 대자로 나눠져 있고 숙주나물과 민트잎 가지 그리고 레몬 한조각을 곁들여 같이 준다. 대중적인 먹는 방법으론 민트잎을 또각또각 따서 국수에 말고, 숙주나물을 취향껏 넣는다. 마지막으로 화룡점정인 레몬을 짜서 넣고, 매운걸 선호한다면 송송 썰어진 빨간 베트남 고추를 투하한다. (씹어 먹으면 너무 매우니 국물에 매운기를 우린 후 빼고 먹는 방법도 있다) 마지막, 경건한 마음으로 오늘도 내게 주어진 한 그릇이 있음을 감사하며 먹는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바이러스가 들어와도 살아남지 못할것이다. 소울푸드 한그릇으로 모두가 기운을 낼 수 있기를. 이럴때 일수록 더욱 희망이 일상 속 음식에 스며들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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