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일라 Apr 12. 2020

프랑스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하기


   프랑스는 전염병 대응단계 3단계 격상 이후로 (3.14일) 현재까지 이동제한 조치중이다. 식료품점, 주유소, Tabac/신문매점, 은행, 공공 서비스 기관은 유지하되 이 외 식당과 카페, 나이트 클럽, 영화관은 문을 닫았다. 학교는 모든 수업을 온라인 줌으로 전환했고, 오늘부터 시작된 4월 부활절 휴가 동안 이동제한을 강화하고 여행을 금지하는 공지가 내려졌다. 이를 어기고 검거에 걸렸다간 벌금을 물고, 예정되 있던 기차나 비행 또한 탈 수 없다. (지금 여행을 갈때야? 집에 있으라고!)



     3.31일 14시, 코로나19 현황은 확진자는 5만명, 사망자는 3천5백명이 넘었다. 더욱 심각한 사실은 전일대비 증가수가 급진적이라는 것. 전일 대비 확진자 7,578명, 사망자만 499명이다. 이번 주가 가장 전례없는 숫자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자가격리, 개인위생을 철저히 해야 할 때.



     코로나로 전세계가 멈췄지만 어느새 봄이 성큼 다가왔다. 창 밖 꽃샘추위은 끝나고 한결 부드러워진 날씨와 환한 햇볕-그리고 썸머타임 때문이기도 한-에 밖에 나와 찰나의 자유를 만끽하는 사람들 또한 늘었다. 나 또한 창문 끝에 얼굴을 내밀고 느껴지는 봄내음에 마음을 달래고 있다.



     집에 하루종일 박혀있다보니 처음에야 밀린 원고, 프로젝트, 녹음 등을 오히려 기회 삼아 끝내야겠다 싶었다. 하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가고....이젠 건너편 아파트의 이웃과 손짓으로 대화를 나누는 상황이 반가울 정도로 일상으로의 귀환이 절실해지고 있다. 다들 집에서 뭐하고 살지 궁금해 SNS을 들여다봐도, 특별히 주목할 것은 없다. 다들 하루하루 힘겹게 버틸 뿐.



     더 이상 앉아있는 자세가 힘들어지고, 글도 음악도 써지지 않기 시작한 시점부터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보는 시간이 늘었다. 이 시대에 정답이란 것이 과연 존재할까. 그 정답을 찾으려 나 자신에 대해 더욱 성찰하고 고민하며 그저 묵묵히 하루를 사는게 아닐까. 일주일, 한 달이 지나간다. 어떤 시선을 가지느냐, 나의 인풋을 어떠한 것들로 채우느냐를 고찰하다 보면.




1. 청소를 시작했다



     더 이상의 무료함을 참을 수 없다! 침대 시트를 벗겨 빨고, 이불의 묵은 먼지들을 털어내고, 벽에 묻은 점 하나까지도 닦아가며 시간을 보냈다. 단순 노동의 반복 속에서 우연히 창작의 산물을 발견하기도 하며,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작업을 이어나가다 지겨워질 때쯤엔 다시 청소, 요리, 빨래 같은 집안일에 몰두했다. 청소란 체감상 시간이 가장 빠르게 가는 일이기도 했고, 눈에 보이는 결과가 있으니 찰나의 만족을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청소란 치워도 치워도 돌아서면 무너지고, 또 반복해야 하는 일. 괜히 '단순 노동'이란 타이틀이 붙여진 것이 아니다. 또한 내 삶의 구체성을 알게 해주기도 하는, 생활의 가장 필수적이면서도 영위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기이한 일이기도 하다. 기면서 바닥을 닦고 욕실 용품을 정리하면서 그동안의 내 생활 패턴, 소비 습관을 돌아보게 된다. 목수정 작가의 신간 <밥상의 말>에서 처럼 말이다.



"더러운 걸레 하나를 깨끗히 빨아낸 적 없는 사람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호령하면서 지구별 골짜기마다 비참이 수북이 쌓여간다. 인간들이 고루 나누어 행하는 건강한 노동이 인간을 마침내 구할 것이다. 누군가 과하게 그것을 독차지하더라도 1차적인 노동으로부터 온전히 비껴간 그 어떤 삶도 건강하게 균형을 잡으며 살아갈 수 없다." <밥상의 말>,목수정 지음



     그리하여 잠자던 선반을 들어나고, 묵은 책들을 정리하고, 박혀있던 옷들을 꺼내 개어보니 집이 다른 세상에 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이 갑갑한 환경에서 용케 버텨왔던 내가 장할 정도. 1차적 노동을 함으로서 코로나를 이겨내는 개인적 승리가, 이토록 다양한 사유를 안겨줄 줄 누가 알았을까.



     1년 전부터 거슬려왔던 벽에 붙여논 매그넘 사진들도 재배열하고, 선물 받은 엽서와 편지들도 새로 붙여둔다. 이번 한국행에서 얻어온 따듯한 마음들을 매일 목도할 수 있도록, 가장 눈에 띄는 곳에. 매그넘을 방문해 사진집을 사오게 되면, 이번엔 빈틈없이 벽을 메워볼까? 올해 한국에 한 권 가져가야 하는데.




2. 원고 쓰기



    미뤄오던 프로필 생성을 끝내고 원고를 끝냈다. 출간 준비중인 책에 삽화될 사진들을 고르느라 현상하거나 파일로 저장해두었던 파리의 사진들. 언제 이것들을 솎아내나 싶어 은근슬쩍 미뤘는데 지금이 기회다 싶어 해치우니 속이 다 시원하다. 한번 시작하면 일이 커질듯 하여 망설였던 초조한 마음이 막상 달리기 시작하면 기어코 끝을 보고야 만다. 



     쓸만한 사진들과 글을 골라 맞는 자리에 넣어두고 나니 이젠 다음 책 기획서가 떠오른다. 미팅에서 이미 주제들을 선별해 정리는 해둔 상태. 머릿속으로는 그려놓은 그림에 퍼즐조각처럼 단계별 작업이 이미 진행되고 있으나, 대화의 기록을 꺼내보니 상세하게 적어둔 것이 없어 다시 몰두해야 할 판이다. 늘 편히 쉴 데를 찾지 못하는 글 가운데 어딘가를 전전긍긍 떠다닌다. 어디서나 품 안에서 노트를 꺼내 글을 쓰고 생각을 기록하기를 멈추지 않아야, 일상 속에 사유의 닾을 깊이 내릴 수 있다. 이 작업을 게을리하면 재료 소진에 다다르기도 한다.



     준비하는 원고 중 몇 시리즈 중 <미술관>, <책방>, <카페/바리스타> 는 현장 답사를 나서야 시작을 끊을 수 있는데,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지금은 잠시 정지해놓은 상태. 온라인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란 생각보다 파이가 크지 않다. 한계적인 부분도 있고, 인용할 수 있는지의 여부와 저작권도 따져가며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하거나 몸으로 부딫히며 얻는 소스가 유용한 부분을 적절히 이용한다. 기대되는 올해 몇 프로젝트 중 하나이다.




     원고를 쓰다보면 하루 쯤이야 금방 간다. 하지만 바로 눈 앞에 잡히지 않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수정, 퇴고까지는 생각보다 큰 인내심을 요한다) 하룻밤을 묵히거나 적당한 자극을 찾아 지치지 않게 단련해야 한다. 




3. 책 읽기



     책 <라틴어 수업>에선 이런 문구가 나온다. "Non efficitur ut nunc studeat multum, sed postea ad effectum veniet." 지금 많이 공부해서 결과가 안 나타나도, 언젠가는 나타난다는 뜻이다. 기록과 공부에 대한 자세를 끌어올려주고 다듬어주는 책이라 학생들에게도 종종 추천하는 책. 진정한 배움에 대한 사유가 담겨있어 일상이 무너질때 다시 집곤 한다.



     독서는 한달을 거점으로 리스트를 만들어 두는데, 3월동안 읽어야 할 책의 85%를 도달했다. 나머지는 언제나 그랬듯 자연스레 이월하게 된다. 4월이 되고 늘 그랬듯 구매한 책을 다 읽지 않으면 새 책을 사지 않겠다. 라는 다짐은 무너지고 또 다시 장바구니를 결제했다. 한국책 서점이 없는 파리에선 신간을 바로 접할 방법은 없으니, 조금 기다렸다가 독자들의 리뷰를 읽거나 아니면 e-book 이 등록될 때까지 참아야 한다. 정 읽고 싶은 책은 국제배송으로 주문을 하지만.



     지난 달 완독한 책. <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 할란 엘리슨 지음, <모월 모일> 박연준 지음, <비판적 사고 가르치기> 벨 훅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글>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어휘 늘리는 법> 박일환 지음, <학교에 페미니즘을> 초등성평등연구회 지음, <세상을 바꾼 101가지 사건> 여성신문사 지음, <문장 수집 생활> 이유미 지음, <평범한 미덕의 공동체> 마이클 이그나티에프 지음.




     이번 달 읽을 책. <을들의 당나귀 귀> 한국여성노동자회, 손희정 지음, <뒤에 올 여성들에게> 마이라 스트로버 지음, <시네페미니즘> 주유신 지음, <이이효재> 박정희 지음, <넘나들며 배우기> 엘리엇 워셔, 찰스 모즈카우스키 지음, <예술하는 습관> 메이슨 커리 지음. 찾고보니 아뿔싸. 리스트를 정리해 적어둔 노트가 없어졌기에 다시 장바구니를 채워야 할 판이다.




     3월달엔 두 권의 책을 무려 추천을 부탁하는 네명에게 선물했다.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 박정훈 지음, <두번째 페미니스트> 서한영교 지음. 집에 몇권 사다 놓고 추천을 받을때마다 줘야 할 듯 싶다. 




     매일, 저녁 8시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전하는 감사의 메시지, 환호와 갈채에 동참하며 현재 코로나를 이겨내는 수밖에. 코로나 사태에 맞서 수고하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와 응원을 멈추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글을 쓰는 도중에도 폴폴 날아다니는 먼지가 눈에 띄인다. 생산적인 단순 노동과 창의적 활동을 구현할 4월 목표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럽 사람들은 왜 반려동물과 늘 함께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