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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일라 Sep 26. 2019

서울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비행기 안에선 분명 앞으로 그 어떤 물체보다 빠른 속도로 나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멈춰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시간이 멈춰있는 듯한 그리고 이 공간이 멈춰있는 듯한 아찔한 착각이 든달까. 이 착각 속에서 가만히 앉아 조용히 지나가기만을 바라다 보면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그럴때면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무얼 할까, 둘러보는 혼자만의 탐험을 떠나곤 한다. 우연하게 빈 내 옆자리 덕분에 살짝은 여유있는 자세로 앉아  음악을 틀었다.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은 이러한 때 가장 유용한 면모를 보여준다. 3만피트가 넘는 상공의 기압으로 힘들어하는 내 귀를 조금은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도와주니 말이다. 일년에 적게는 여섯번, 12시간의 장거리 비행을 하는 나는 상공 위에서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가 큰 숙제인 셈이다.



 내 앞의 모니터는 계속해서 비행기가 앞으로 움직일 루트를 바꿔서 보여준다. 참 세상 좋아졌다 싶다. 어떤 항공에서는 와이파이도 된다는데, 아직까지 이용해볼 기회는 없었지만 된다면 참 신기할것 같다. 어디에요? 물어보는 문자에 태연하게 나 지금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위야, 할 수 있는건가? 몇시간 후면 홍콩에 도착해, 라는 말은 21세기 최첨단 문장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세상은 참 다양하고 많은 방법으로 지어져있고 굴러가는데 그 속의 작디 작은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었다. 이 당연한 걸 깨닫게 해주는 곳이 나에겐 상공 위 비행시간이다.



 보통은 미국 또는 유럽 횡단을 주로 하기에 3-4시간의 짧은 비행은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진다. 짧아도 10시간, 길면 13시간 이상을 날아가는 비행을 주로 타기에 그 긴 시간동안 뭘 하느냐, 어떻게 효율적으로 보내느냐는 꽤나 중요한 이슈라고 볼 수 있다. 해서 비행 며칠 전, 아니 몇 주 전부터 마인드 컨트롤에 들어가지만 또 이런 일은 막상 부딫혀 보면 (한달 전 13시간 비행을 마쳤을때는 다시는 밤낮 시차 바뀌는 이 지겨운 일을 하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하며 돌아왔는데) 또 언제 걱정했느냐는듯 잘 굴러간다. 늘 머릿속 생각이 복잡하고 어렵지, 현실은 담담히 나를 반겨준다는 말이다. 그래, 뭐든 마음의 자세가 중요하니까.



옆자리에 누가 앉느냐에 따라 나의 비행 경험또한 완전히 달라진다.




 주위를 둘러보면 사람들은 잠을 청하거나 (또는 눈을 그냥 감거나), 영화로 시간을 때우기를 선택하거나 또는 책을 읽는다. 가끔 보면 비행기 위에서 아이처럼 곤히 잠을 잘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참 부럽다. 이유로는 예민한 잠자리로 평소에도 깊은 잠을 자지 못하는 나는 온갖 기압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1시간 같은 1분을 견뎌야 하기 때문인데, 어떻게 하면 그렇게 아이처럼 푹 잘 수 있나요? 비결을 공유해주시길 바입니다. 여태 꽤나 많은 비행을 경험했지만 도저히 익숙해질 수 없는 일 중 하나이다. 대체 어떻게 하면 시간이 빨리 가지?



 컴퓨터에 쓸 글 목록을 꽉꽉 채워넣고, 들어야 할 앨범들을 정리하여 플레이리스트에 담아놓고, 읽을 책을 두권 챙긴다. 처음 비행기를 타자마자 읽을 한 권, 어쩌다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났을 때 피곤한 눈을 달래주기 위한 용으로 한 권. 확실히 모션픽쳐(영화)같이 계속해서 움직이는 물체를 따라가야 하는 일보다는 글자를 읽는 것이 눈이 덜 피롭기 때문에 책을 선호한다. 하지만 가져간 책을 한 번도 펼쳐보지 못한 비행도 있었다. 잠이오는 알레르기 약을 복용한 탓인지 도저히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 포기하고 반수면 상태로 괴로운 12시간을 버틴 것이다. 이러한 예외의 경우 말고는 대부분의 비행 시간을 책을 읽는 것으로 때우곤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 여름방학 비행때는 들고 탈 책이 없었다. 정신없이 나오기도 했지만서도, 한국에서 이북을 살 계획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또다른 종이책을 살 생각을 하지 않기도 했다. (세상에 읽을 책이 없나, 의지가 없는거지!) 그래서 비행 전 걱정이 되었는데, 잠을 단 한숨도 못자고 열 몇시간을 버티는 일은 생각보다 꽤나 괴롭기 때문에 이번엔 그 전날밤을 꼴딱 새고 비행을 택했다. 잠을 자고 시차를 맞추는게 몸에 무리가 더 안갈거라는걸 알고는 있었지만, 정신적인 괴로움보다야 그래도 피곤함에 지쳐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는게 낫지 않겠나 싶어 시도 해본 것이다. 결과는...뭐, 그럭저럭 만족? 11시간 반 비행중 6시간은 정신없이 잔듯 하다. 물론 내 집 내 침대 위에서 편한 옷을 입고 깊은 잠을 자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수면이지만 그래도 벌게진 눈으로 그 시간 내내 상공 위에서 버티는 것보다는 훨 나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 바로 인천에 도착 한 후의 시차적응이였다. (이래나 저래나 비행은 피곤합니다)



 몸은 단순히 자는 시간을 하루만에 달리한다고 해서 그에 따라 맞춰지는 것이 아니다. 주기적인 생체리듬이 깨지는 것이기 때문에 밤낮 바뀌는 시차를 가진 곳으로의 장거리 비행은 적어도 6개월에서 1년에 한번 정도가 적당하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늘 적당히가 어려운 것이 아닌가. 중간에 일어나서 화장실로 가 거울을 보았는데, 며칠 전부터 무리한다고 피부가 뒤집어져 있다. 육체 중 가장 약한 부분은 피부이기에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바로 표시가 난다. 스트레스를 조금만 받아도 바로 붉은끼가 슬금슬금 올라오고, 잠을 좀 푹 자고 스트레스에 비교적 자유로웠던 며칠을 보내고 나면 눈에띄게 매끈하게 피부가 차오른다.



    여행으로, 비즈니스로, 또는 유학, 이민 다양한 목적으로 공항을 찾는 사람들.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비행기가 이륙하기 까지의 경험은 참으로 특별하다. 매번 가는 공항이지만 플랫폼도 다르고 시간마다 업데이트 되는 알림판도 확인해야 하며 매 시즌 규정이 바뀌기도 하니 미리 잘 준비하고 가지 않으면 당황스런 상황이 종종 벌어진다. 게이트 번호, 좌석 지정, 체크인은 또 뭐고 수화규정은 또 뭔지. 처음 비행기를 타던 13살의 나는 상상이나 했을까. 한참 후의 나는 복잡한 비행 루틴을 매 계절마다 경험하게 될 거라는 것을!



상공위에서 바라보는 하늘엔 평온함이 서려있다.




    한국에 최근 인천 제2국제공항이 신설되었다. 이번에 처음 가보았는데 확실히 1공항 보다 깔끔하고 편리해진 부분이 눈에 많이 띄었다. 매번 가장 긴 줄을 서야하는 소지품 검사(체크인) 하는 곳도 섹션대로 잘 나눠져 있어 빠르고 수월하게 끝났고 출국심사 하는곳도 짧은 줄로 탑승객들이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동선으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막힘없이 술술 풀린 입국 심사와 짐찾기에 오히려 어리둥절 했던 나. 뭐야, 벌써 입국 끝난거야? 이럴리가 없는데? 프랑스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이 편리함. 이 스피드. 한국땅에 발을 붙이는 순간 느껴지는 이 온도차는 무엇이냐고요. 반갑기까지 하다 못해 마음에 궁금증이 슬금슬금 올라온다.




    그런데 이 기분은 뭘까. 한국에 올때마다 몸과 마음이 동시에 몇년씩 폭삭 늙는것만 같다. 이제는 이별과 새로운 만남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난 사소한것에 불안하고 흔들리며 흘러가는 시간이 두렵다. 잡아두고만 싶다. 떠나고 싶지 않다. 한곳에 머물며 안정된 삶을 살고 싶다는 복잡한 마음들이 두리뭉실 올라온다. 사실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도 수십번 생각하는 일이다. 지금이라도 티켓을 취소할까? 아니야, 가서 할일들이 많음에 감사해야 한다. 앞만 보고 가자. 나 자신에게 몇번이고 다짐을 해야하는데, 설렘과 불안함이 교차하는 내 머리속은 이미 아수라장이다.



    어디를 가든 늘 상반된 감정이 들곤 한다. 계절마다 유럽을 횡단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시차에, 소지품 챙기기에, 컨디션 관리에.. 비행기를 타면서 나만의 루틴이 생겼지만 이 또한 그리 달갑지는 않다. 그만큼 익숙해졌다는 뜻일까. 공항은 없던 용기를 훅 불어넣어주기도 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제 떠날거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이 불현듯 생기기도 하고 곧 몇천피트가 되는 상공 위로 떠오르는 비행을 앞두고 있어선지 대담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현재는 집이 두개인 셈이다. 파리에 하나, 서울에 하나. 내 마음 속에서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 확실히 두개가 된 것. 이쪽 어디를 정리하던 아니면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 하나 더 늘어나던, 그냥 그 안에 채워져 있는 것들은 사랑으로, 행복으로 가득 채워졌으면 좋겠다. 다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는 또 어떤 시공간을 보내게 될지, 마음을 단단히 먹지만 또 시간이 지나 부딫히면 알아서 흘러갈 일이다. 담담해지고, 후회하지 않고 또 사랑을 전파하고 기운을 받고 돌아올 수 있기를. 더욱 배우고 도전하는 용감한 나로 성장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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