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일라 Oct 04. 2019

언어의 이주를 경험하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유럽에서 석사과정을 공부하는 덕분에, 늘 여러 언어의 깊은 벽에 부딪힌다. 마지막으로 영어 시험을 본 때가 GRE를 친 2015년이고 현재는 불어를 더 많이 쓰고 있다. 영어로 된 화성과 주법을 사용해 음악을 연주하고 글은 또 한국어로 풀어내니 머릿속이 가끔 질서를 잃고 혼돈에 빠질 때가 많다.



    대학 시절에 한 학기동안 부전공으로 라틴어를 듣기도 했는데, 지속해서 나와 스페인어로 대화해주는 상대가 없으니 현재는 절반도 기억나질 않는다. 밤을 새가며 호르헤 보르헤스를 그렇게 읽었는데… 역시 언어는 계속 써주지 않으면 금방 초기화 상태가 된다.



새로운 언어 안에서 우리는 새롭게 다시 태어난다. 아직 고통도, 사랑의 슬픔도 겪지 않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까? 그 안에 슬픔도, 기억도 가지고 있지 않은 외국의 언어를 배우고 갈고 닦으면서 우리는 마침내 우리 자신을 잊을 수 있는 것이다. -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는 책들> 레진 드탕벨



0개국어의 진실


    영어와 불어는 비슷한 단어들도 많은 덕분에 유학 초기 프랑스어 원서를 읽기 시작했을 때 내용을 반은 이해했지만 반은 버렸다. 다행인 점은 포네틱은 아예 다르고 (똑같은 건 L,M,N,O,S 정도) 프랑스어엔 악센트도 있기 때문에 구분하기가 쉬운데 가끔은 영어가 프랑스어처럼 읽히고 프랑스어가 스페인어처럼 읽히기도 한다.



    실제 프랑스 친구들에게 불어 단어 하나를 설명을 못 해 영어가 튀어나오며 한국 친구들과 페이스타임으로 통화를 하다가도 불어가 툭 삐져 나온다. 제대로 구사하지 못해 대충 얼버무릴때도 많다. 주위에서 나를 Trilingual(3개 국어를 하는 사람)이라며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몇 있는데 알고 보면 0개 국어를 구사한다는 사실…



    굳이 정리해 보자면 지금은 말하기Speaking는 영어가 제일 편하고, 읽고 쓰기Reading and writing 건 한글을 많이 이용하며 듣는Listening건 프랑스에 거주하는 지금 불어를 제일 많이 듣는다. 이러니 한가지 언어라도 제대로 구사하기 힘든 0개국어라는 말이 내게 적용되는데 무리는 없어 보이지 않은가.



    내게 가장 편한 언어는 뭐냐는 질문을 종종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때마다 이러한 복잡한 머릿속을 열어 보여줄 수도 없고 참 난감하다. 글을 한글로 쓰니 한국어가 제일 편한가? 하지만 그 이유를 한국어로 설명하다 보면 1분도 채 가지 않아 막히고 마는데, 짧은 문장실력과 부족한 표현을 남발하는 내 자신 스스로가 부끄러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하는 것처럼 영어로 글을 써보라 하면 그것 또한 심히 괴롭다. 한글을 쓸때 처럼 2차 순환이 이루어지지 얺기 때문이다.



    친구와 한국어를 구사할 때 내가 늘 더듬거리며 찾는 단어는 이것이다. 그거. "그거 뭐더라.. 아 왜 있잖아, 그거!" 한창 그거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다 가끔 애쓰던 단어를 찾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허망하게 얼버무리며 끝나기 일쑤다. 그렇기에 더더욱 언어 공부는 치열하게 물고 늘어져야 하지만, 사실 언어 공부와 노래 연습처럼 눈에 보이지 않게 느는 것도 없어 허무한 기분은 어쩔 수 없다.




언어를 자유의 도구로 삼자


    현재 꾸고 있는 꿈 중 하나를 감히 말해보려 한다. 나 자신과 약속을 하는 것도 아니고 공약을 거는 것도 아니니 말하는 것 쯤이야 뭐 괜찮겠지. 바로 소르본 대학에 입학하여 언어와 심리학을 공부해 학위를 따는 것! 사실 이 꿈은 친구에게 한번 발설한 적이 있는데 (무계획 상태로) 친구의 반응은 의외로, 하면 되겠네, 뭐가 어려워? 였고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더랬다. (너무나 고맙지만 친구야, 너의 묻말따말 지지는 투머치였다구!)



    아무리 AI 인공지능의 세상이 도래한다지만, 후 가장 먼저 없어질 직업이 언어학자라지만, 언어학은 인간의 언어를 연구함으로써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문법과 같은 무의식적인 지식을 체계화, 규칙화하는 것에 연구 목적이 있는 고귀한 학문이다. 그것을 탐구하는 직업은 없어져도 될 만한 것이라 생각치 않는다. 심리학 또한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한번은 제대로 된 탐구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친구에게는 나의 대책없는 포부가 부끄럽기도 해 말을 아끼고 말았지만 사실 배움에 대한 열정은 다른 것보다 깊은 편이다. 언젠간 0개국어를 보란듯이 탈출 하고프달까. 글을 쓰는 것도 기록과 성찰의 목적 외에도 잘 해내고 싶은 비슷한 욕구에서다. 이상문학에 등단하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나의 글이 내가 부끄럽지는 않을 정도의 문장력과 진정성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글을 올리기 전 맞춤법 검사를 따로 하곤 하지만,이 긴 이야기를 끝까지 정독해주시고 부족한 부분에 조언을 해주는 고마운 분들이 있다. 틀린 부분이 있다면 지적을 받고 고치는 것이 좋은 글쓰기의 가장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부족한 글을 읽고 생각을 나눠주시는 친절함에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작가에게 가장 힘이 되는 것은 피드백이다. 물론 악플이 무플보다는 낫다지만 그래도 악의적인 또는 악의가 없다해도 악플을 받고 싶은 작가가 어디 있겠는가. 가장 반가운 것은 '내가 당신의 글을 읽었습니다.' 하고 남겨주는 성의 표시 아닐까. 나의 음악처럼, 아, 그 곡 들어봤어요. 하는 말만큼 기쁜 것은 글의 존재를 알아봐 주는 것! 그렇기에 오늘도 한 문장씩 더듬더듬 진심을 담아 눌러 쓴다. 언젠간 그 마음이 닿기를 바라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서울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