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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일라 May 16. 2020

여행을 말하기 좋은 때는 여행에 굶주렸을 때 - 1


01 - 남부로, 칸느 영화제로



    자꾸만 어깨가 안으로 굽는다. 공을 들여 뒤로 젖히고 펴고 판판히 꺾어 두어도 그때뿐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책상 앞에서 자꾸 고개가 아래로 숙여지는 탓에 모니터 눈높이보다 조금 더 높은 창문에 지난 여행에서 찍어온 사진 한 장을 붙여두었다. 노란색의 건물들 사이를 걸어가는 뒷모습에서 왠지 모를 가벼움이 묻어나는 사진. 포모도로 기법으로 하는 연습과는 달리, 글쓰기는 집중의 순간이 제각각이기에 정해진 시간을 두고 몸을 펴거나 늘리기 어렵다. 그래서 글을 쓸 때 눈길이 닿을라 치면 머리가 들어지도록, 어깨가 펴지도록 사진을 두는 방법을 쓰는 것이다. 결과로 보자면 섬세한 각도로 붙여놓은 사진은 종종 굽은 내 어깨를 펴는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말아지는 어깨는 망토처럼 몸을 감싸기에 여념이 없다.





    레일라 님은 담백하게 바라보아도 멋진 분이세요. 사람들에게 받은 수많은 엽서 중 하나, 바로 좋아하는 작가님이 자필로 써준 편지를 눈으로 훑었다. 멋지다니, 사실은 그게 아니라 할지라도 이런 용기에 고백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런 용기와 사랑이 적혀있는 엽서와 사진을 자잘하게 벽에 붙여두고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가끔 눈길이 닿으면 없던 불쑥 용기가 나는 것만 같다. 나의 작고 보잘것없는 한 부분을 아름답게 봐주는, 그리고선 그게 마치 대륙인 것처럼 나 전체를 좋게 바라봐 주는 좋은 마음을 목도할 때, 내 작은 세포들은 스스로 최면에 걸린다.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 돼보자고 말이다. 타인을 아름답게 볼 줄 안다는 것은 필시 그가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엽서를 받은 것이 작년 겨울인데, 이후 아직 한 번도 여행을 떠난 적이 없다. 하지만 떠나게 된다면 (어느새 여름이지만 언젠가는) 이 엽서를 챙겨서 나와는 아무 연관 없는 장소와 시간에서 도달한 뒤, 한 자 한 자 소리 내어 읽고 싶다. 박연준 작가는 여행은 단단한 생각에 마침표를 찍는 것이라 했다. 그렇다면 나의 마침표는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나의 생각 조각들과 함께 뭉뚱그려 놓은 처참함, 결과, 고찰, 비통, 우울증 같은 것들이 될 것이다. 그리고선 긴 여행에 새로운 탭을 누르는 거지, 이 엽서와 함께. 늘 읽을거리와 생각거리들을 안고 자는 터라 늘 미세하게 찌푸린 채 아침을 맞곤 한다. 마침표라는 것을 찍는 것이 정녕 여행이라면 오랫동안 갈망해 온 깊은 수면 또한 얻어질 것 같기도 하여 꾸는 망상이다. 여행을 간다고 갑자기 편안한 잠을 얻을 리는 없지만-그것도 새롭고 불편한 잠자리에서-가끔은 망상적인 바람을 한편에 간직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 여행을 발목 잡는 것은 안전보다는 경제적 물음표와 시간적 여유였다. 이것보다 더욱 우선시 되는 다른 요소가 일상을 차지하고 있는 이상 여행은 저절로 떠나 지지 않는다. 게다가 어딘가에 도달하는 것만이 여행은 아닐 것이다. 생각해보니 최근 3년 동안 설렘을 안고 떠난 여행은 단 한 번 뿐이었다. 프랑스 남부 두 도시로 떠날 계획을 세웠던, 여름이 오기 전 어느 날. 숙소 비용을 지불한 뒤, 아슬아슬한 통장 잔고를 확인했다. 오늘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Ne remets pas à demain ce que tu pourrais faire le jour même는 속담도 있지만, 난 미래의 나에게 뒷일을 맡기고 훌쩍 떠나기를 택한 것이다. 생활고로 시달리던 날들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며.



Aéroport nice Côte d'Azur 을 향해서



    한창 칸느영화제로 들썩이는 남부로 가는 방법은 한 가지, 비행기를 타야 한다. 같이 여행을 떠난 친구와 각자 배낭 하나씩을 메고 파리에서 출발하는 공항으로 향했다. 떠나는 길 평소 감흥 없이 걷던 거리가 어찌나 즐겁고 가벼이 걸어지던지! 비행을 벌써부터 걱정하는 친구 손을 꼭 잡아주며 말했다. 가면 아무것도 하지 말고 우리 쉬기만 하자. 친구는 끄덕였다. 파리에서 니스까지는 비행기로, 니스에서 칸느까지는 기차로. 역을 하나, 둘씩 지나쳐 가며 파리에서 멀어질수록 미묘하게 달라지는 공기가 새로웠고, 우리는 다른 기분의 이방인이 된 느낌을 서서히 만끽하기 시작했다. 어딜 가나 이방인이었으며 앞으로도 어디에나 속할 일 없는 사람들. 서로가 그렇게 보였고, 모두가 그렇게 갈 길을 찾아 나선다는 것을 잊고 지냈다.




Gare de Cannes 에 드디어 도착했다



    칸느에 도착한 뒤 우리는 곧 파리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양식의 건물들에 흥분했다. 남쪽의 많은 것들은 조금 더 땅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스페인과 맞닿아 있는 툴루즈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나 멀리 남쪽으로 내려온 건 처음이다. 숙소를 찾아가는 길을 조금 헤매 길에서 30여분을 버린 후, 해가 지기 전 도착할 수 있었다. 대충 짐을 푼 후 호스트와 마을에 관한 짧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추천하는 로컬 레스토랑과 명소 몇 곳을 알려주어 적어두었다. 그녀는 영화제 때문에 이 곳을 찾는 관광객이 늘었다며 근처에 있을 테니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했다. 여행을 완성하는 데에는 필요한 굵직한 요소가 몇 가지 있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어떤 식으로든 나와 연결된 낯선 이들과 장소를 공유하는 것.



칸느의 첫 인상은 대략 이러했다. 초점이 맞지 않는 사진 그대로



    저녁으로는 평소에 입에도 대지 않던 버거집을 찾았다. 칸느의 앞바다가 보이는 뷰를 가진 식당이었기에 망설임 없이 들어갔는데, 예상외로 맛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쌉쌀하게 밀려오는 바다 냄새, 때때로 훅 불어오는 바람, 영화제 이름표 목걸이를 건 기자들. 셰이크에 감자튀김을 푹 찍어 입에 밀어 넣고선, 음. 이런 이방인 느낌도 괜찮네 싶었다. 음미하는 것이 음식인지 풍경인지 모를 나를 두고 친구는 사람 구경엔 이골이 난 듯, 먹은 후엔 해변 쪽으로 나가자며 손을 털었다. 첫날밤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칸느에서도 가장 번화가인 플러스 우 디즈 윗 쥬앙 밑으로 쭉 내려가다 보면 휘황찬란한 형광색의 카페 로마 Caffé Roma가 보인다. 항구와 가장 가까이 맞닿아 있는 카페인데, 밤이 되면 찬란한 오색 네온사인을 켜 두어 바다가 한층 반짝여 보인다. 가장 사람이 많았던 팔레 데 페스티벌 근처엔 교회의 십자가도 보였고 유명한 호텔이 주욱 늘어져 있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영화 한 편은 보고 가자, 라는 나의 주장에 친구는 쁠라쥬 마쎄에 세워진 야외 영화관으로 날 잡아끌었다. 칸느 페스티벌이란 글귀가 적혀있는 진 초록색 의자들이 모래사장 위에 주욱 늘어져 있었고, 이미 군데군데 채워진 사람들 머리 위로 땅콩을 파는 아저씨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적당한 자리를 골라 앉았더니 이내 아저씨가 우릴 향해 다가왔다. 괜찮아요, 손을 내저었다. 이미 버거에 셰이크까지 누리는 사치를 부렸는데 땅콩은 무리다 싶어서. 누군가는 폭죽을 터트렸고 하늘은 점점 어두워진다. 한숨 돌리며 오늘 파리에서 칸느까지 달려온 길을 테이프 돌리듯이 떠올렸다. 춥진 않았지만 습한 기운이 서려있는 해변은 조명을 받아 반짝거렸다.



사람들 사이를 지나다니며 cacahuètes! 를 외치던 땅콩아저씨



    여행 중에 내리는 선택은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성질을 띄기도 한다. 가령 해변에 울려 퍼지는 레게풍 음악에 들썩이는 사람들의 몸이 흥겨워 보여 나도 덩달아 춤을 춘 것과 같이 말이다. 친구와 나는 모래사장 위에서 춤추고, 뒹굴고, 쉴 새 없이 키득거렸다. 밤색 나무와 퍼런 하늘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배경에 파도 소리가 잔잔히 들려오는 야외 영화관에서의 생생한 경험이라니, 지금 이 순간을 위해 그 먼 길을 달려왔네 하면서. 지나고 생각해보니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땅콩을 사 먹을 걸 두고두고 후회했다는 점. 굳이 여행지에서까지 인색하게 굴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다. 상상 속의 그 고소한 맛은 밤 새 혀 위에서 맴돌았고, 그때의 갈망으로 아직도 길거리에서 땅콩을 보면 꼭 1,2유로어치 사는 습관이 생겼다.



    여행 중에도 나는 고요와 고독 속에 홀로 있어야 함을 모르지 않는다. 여행을 떠난다고 해서 갑자기 나라는 사람이 마법처럼 채워지거나 변하지는 않는 법이다. 그럼에도 여행을 떠나고 싶었던 이유는 낡아가는 나 자신을 멀찍이 떨어져서 볼 여유를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코가 시리는 겨울에도, 모든 게 버거워지는 한 여름에도 쉬지 않고 책을 기획하고, 원고를 쓰고, 무대를 채우고, 악기를 연주하는 나의 별 볼일 없는 일상은 아주 다른 것 같지만 각자가 매우 비슷하다. 물론 고요한 성질의 두 일 외에도 나를 점점 낡게 하는 요소들은 많았다.



    이번 여행으로 어떤 마침표를 찍을까. 나를 180도 달라지게 하거나 우울증을 들어낼 수는 없을 테고, 오히려 빈약해진 통장은 나를 찌는 생활고에 밀어 넣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 내 눈앞에는 넘실대는 칸느의 바다가 있었고 파리에선 볼 수 없었던 보랏빛의 하늘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어떠한 생각들이 나를 이곳까지 데리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침표는 찍어진 셈이다. 나는 도심 속 살아내고 피어내려 고군분투하는 떠돌이의 모습에서 벗어나 사진 같은 풍경 속에 담겨 고단한 나 자신을 그리고 싶었나보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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