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에게 쓰는 편지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는 여전히 매일 크고 작은 것들에 대해서 글을 쓰고 지내고 있습니다. 제 삶 속에서 일어나는 어디에선가 에너지가 빠져나가고 있음을 느끼지만, 이를 모두 붙잡아둘 수는 없기 때문이죠. 선생님과 나누는 것들에 대해서도 쓰고 읽고, 다시 마음을 다잡고는 합니다. 늘 잘 되지는 않아요. (하하) 하지만 마주하는 감정만을 생각해서 피해버리거나 꾹 참으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사실을 이제는 인지하고 있고, 예전보다는 훨씬 좋아지고 있습니다. 전부 선생님 덕분입니다.
선생님, 서울 하늘에서 별을 발견하는 일은 마음이 관통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것 같아요. 저는 성큼 다가선 나의 용기에 살짝궁 등을 밀어주는 그런 존재는 사실 반짝거리는 위성이 아니라 바로 고개를 든 나 자신이라는 걸 자주 잊어버리곤 해요. 그리고 저는 늘 시간이 지나고 난 한 숨 식은 시점에야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곤 합니다. 늘 틀어놓는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음악과 함께 길었던 오늘 하루 빛났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어떻게 쓰일지 가늠되지 않는 마음을 조용히 붙잡고 있어요. 설령 글로 기록되지 않더라도, 제 기억 안에서 아주 오랫동안 반짝반짝 빛나고 있을 그런 시간들이겠지요.
요즘 사랑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며 지냅니다. 정신의학자 스캇 펙이나 작가 벨 훅스가 이야기하는 단지 돌봄이나 애정 같은 요소가 아닌, 진정한 상대방의 영적인 성장을 위한 그런 사랑요. 선생님. 지금 내가 붙들고 있는 사랑이 나를 떠나가지 않기를, 이 행복 또는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별에 빌어 본 적이 있나요? 온갖 심리에 관한 서적과 글을 접하며 심리학적 연구를 행해오신 선생님은 어땠을까요? 사실 저는 없어요. 20대에는 오히려 지금보다 더욱 시니컬한 태도를 취해왔어요. 사랑을 갈망하고 원하면서도 제가 원하는 사랑이 진정 무엇인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답니다.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사랑의 정의 따윈 없다고 생각했지만, 나름 저만의 기준은 있다고 믿기는 했어요. 그리고 그 기준은 새로운 사람, 새로운 사랑, 새로운 환경을 마주할 때마다 조금씩 변해왔고요.
시작은 별 것 아니었어요. 처음 간직하기 시작한 사랑의 불완전한 형태의 시초는 언제 어떻게였는지, 그리고 어떤 과정을 겪으며 지금의 모습을 간직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종종, 내가 어떤 행동을 해도 상대는 일정 상처받을 수밖에 없다고 하셨죠.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 있듯이, 그 또한 감당해야 할 몫이 있다고요. 제가 무엇을 해던 관계에서는 늘 상처받는 메커니즘이 있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는 늘 땅따먹기 같이 느껴지던 버거운 사랑으로부터 조금은 숨통이 쉬어지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입이 막힌 듯 답답한 적도 많았지만 결국에는 나와 상대방을 향한 노력이 통하는 때가 있기도 했고요.
알랭 바디우의 사랑에 관한 대담인 <사랑 예찬>에서는 ‘사랑의 낭만적인 개념이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며 다소간 이 개념은 만남에다 사랑을 소진시켜 버린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사랑은 만남에서, 즉 있는 그대로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마술적인 외재성의 한순간을 맞이하여 불타버리고, 소진되며, 동시에 소비된다는 말입니다. 또한 바로 여기에서 바로 기적의 범주에 속하는 어떤 것, 즉 존재의 강렬함, 완전히 녹아버린 하나의 만남이 도래합니다.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사랑이 이렇게 전개될 때 우리는 "둘이 등장하는 무대"가 아니라 "하나가 등장하는 무대"와 마주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급징적이고 낭만적인 사랑 개념이며, 저는 이 개념이 거부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라고 말해요. 알랭의 말처럼 사람들이 흔히 '빠진다'라고 착각하는 대중적인 사랑의 의미에서 개개인은 무엇을 취하고 있었었던 건지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기애, 무조건적인 사랑의 이상화, 숭고한 사랑, 카스텍시스, 사회에서의 사랑의 부재, 철학, 결혼 등 사랑에 관한 제 궁금증과 기준은 점점 더 서로를 교차하고, 복잡해지고 있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에 관해 이렇게 답답한 사람이 또 있다면, 식사라도 대접하며 담화를 나누고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사실 아직 회의적인 스탠스를 전부 버리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관계 안에서 연습하고 훈련되고 서로 잘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은 조금은 쥐고 있는 상태입니다. 누군가를 '통제'하려는 욕구에 사로잡힌 눈먼 사랑이 아닌, 감정적으로 소진하고 낭비하는 사랑이 아닌, 행동과 존중으로 제 영혼에 사려있는 사랑의 힘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사랑을 하고 싶어 졌어요.
그래서 사랑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초고 작업은 봄이 오기 전에 얼추 끝날 것 같아요. 아마 출판사와 큰 무리 없이 일정 소화가 된다면, 책은 올해 여름이 되기 전 세상에 나올 수 있겠지요. 지난번 출판한 책을 선생님 주소가 적힌 선물함에 넣어 보냈던 때가 떠오릅니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이었는데 그 후로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네요. 곧 맞이할 새로운 계절과 시간 속에서 저는 어느 정도 답을 찾은 상태일까요, 아니면 아직도 헤매고 있는 중일까요. 곧 그 이야기와 함께 선생님을 찾아뵐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