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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일라 Oct 26. 2019

[LAB2050] 고교 자기 설계 학기 정책실험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프랑스에서도 끊임없이 계속해서 아이들을 가르쳐왔다. 교육에 있어서 한 가지 답이란 존재할 수 없겠지만, 한국에서 만큼의 교육은 확실히 학생들에게 불평등했음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공정성 문제가 지치지 않고 논란이 되는 것이 늘 안타까웠던 나는 ‘교육’에 대해 무엇이 학생들에게 더 나은 방향인지를 고찰하고 있던 중,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정확히 짚어내는 LAB2050 신철균 교수의 ‘고교 자기 설계 학기 정책실험’ 글을 읽고 무릎을 탁 쳤다. 그는 한국 교육현황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제안을 제시한 후, 실험 결과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을 알려주고 있다. 처음 ‘고교 자기 설계 학기’ 란 단어를 보았을 때, 어렴풋이 내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겪은 내가 원하거나 또는 필요한 과목을 ‘선택’ 할 수 있는 것과 연관이 있는 건가 짐작했는데 글을 읽은 후 역시나. 내가 늘 생각해오던 부족한 '자율성’과 통하는 구석이 있었다.



    신철균 교수는 대입에서 시작해 교육 전반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이 아닌,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다시 대학으로 밀어 올리는 전략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다. 바로 달라진 교육을 학생들이 직접 체험하게 하는 것(대안이랍시고 교육정책을 바꿔도 실질적으로는 지진 부진했던 지난 시도들). 그 제안의 가운데엔 표준화된 평가와 교육 과정에서 벗어난 고교 자기 설계 학기 도입이 세워져 있다. 다름 아닌 학생들 스스로가 구성하고 설계해서 진행하는 ‘자기 주도적 교육’인 것이다. 매일 주어진 과목과 범위와 하루 10시간 넘게 앉아서 씨름한다는 것은 고문이나 다름없다. 학습의 즐거움이 사라질뿐더러, 내가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인생의 경로를 탐색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험이 없다면 어떻게 학생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을까? 교육과정 운영은 제대로 이루어질까? 모두가 걱정하는 내용임을 감안해서 기획된 실험은 ‘중학교 1학년’에 자유학기제를 시범으로 선보이는 것이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고 한다. 글에선 자유학기제를 거친 학생들은 학교 생활의 행복감과 자기 주도 학습력, 자기 관리 역량이 높아진 데다가 친구들과의 네트워크까지 왕성해졌다고.



    ‘시험이 없는 교육’, ‘표준 과정 없는 교육’을 이미 실시하는 나라가 있을까? 기존 교사들의 평가체제에 대한 문제점을 파악하고 학생들의 학습력을 끌어올린 사례를 찾아보았는데, 학생들에게는 ‘변화의 주체가 되는 경험을, 교사에게는 기존 제도에 도전하는 경험을 제공한 몇 사례가 있었다.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촉진’하며, ‘서열’을 중시하기보다 ‘성장’을 중시하는 평가를 실시한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고등학교와 영국의 메튜 고등학교. 모두 이런 활동을 통해 진정한 학습과 실전적 경험을 했다는 연구 결과를 선보였다. 그렇다면 우리도 조금은 희망을 품어도 되지 않을까.



    어릴 적 미국을 가기 전, 한국 학교를 다니던 시절-아직도 선명한 기억이 있다. 옆 반의 선생님은 성적을 중요시하기로 소문난 호랑이 선생님이었는데, 기말고사가 끝나고 학생들을 모두 교실 밖으로 보낸 후 한 명씩 불러 들어오게 한 후 성적확인과 동시에 틀린 만큼 매로 회초리질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들을 부르는 순서가 정확히 1등부터 꼴등 순서였다. 각자의 성적 외에는 몰랐던 아이들이 그 일로 인해 나보다 더 잘 본 친구는 누구인지, 나의 서열은 어디인지- 그로 인해 나의 ‘위계’는 어디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1등으로 들어간 친구는 ‘한 대’를 맞았고, 그 후로 들어온 친구들은 줄줄이 엄청나게 맞았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꼈던, 그때의 그 모멸감은 잊히지 않는다. 그때, 옆 반 선생님은 우리의 ‘성장’과 ‘배움’에 관심이 없었다. 처참한 교육 현장을 온몸으로 느낀 쓰라린 기억이다.


    이미 짜여있는 입시 교육의 한계적인 틀 안의 학생들은 자신들이 공부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들을 선택할 수 없는 현실에 놓여있다. 이는 곧, 배움에 대해서 학생들은 선택권도, 구성과 결정을 할 권한도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나도 늘 동의해왔고, 글로써 조금 더 명확해졌다. 한국 학생들을 만나 처음 상담을 했을 때, 그들은 늘 ‘교육’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고 재미가 없었다고 불만을 토로해옴을 볼 수 있었고, 재미있고 자율성이 부여된 스스로가 주체가 되는 교육의 이미지로 바꾸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자신이 공부하고 싶은 분야를 스스로 정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탐구하고 직접 체험하는 방식은 ‘틀 깨기’로 알려져 있고, 아직 한국에서는 적극적으로 시행되지 못하는 부분이다. (아마 앞으로 시행되지 못할 수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어려울 것이 없지 않은가. 한국 교육은 미래가 없다는 말을 자주 들어왔는데, 이렇게라도 난맥상을 풀어낼 수 있는 기회를 쥘 수 있다면 얼마든지 적용할 수 있다고 본다.


    재밌고 즐겁다면 공부는 스스로 알아서 하게 된다. 탐구욕은 저절로 생기기 마련이다. 재미있는, 실용적인 배움을 학생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좋은 교육이란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어른들과 학생들 사이에서 올바른 답안이 찾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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