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구 시장 새싹 비빔밥

통통한 게 싫었던 날들

by 찬란

“선생님 과외비 입금했어요.”

“와, 감사합니다. 우리 서연이 잘 하고 있어요…”

과외 알바를 시작한 지 3개월. 데이트 하랴 학교 다니며 밥 사먹으랴 술술 빠져나가긴 했지만, 조금씩 돈이 모이고 있었다. 이태원에서 짝퉁 바게트백을 사는 건 실패했지만, 또 다른 소유욕이 생기기 시작했다. 예쁜 옷을 사서, 예뻐지고 싶어.

고등학교를 졸업할 시점 내 몸무게는 63kg. 교복 외에 알고 있는 옷이라고는 엄마가 사다주는 옷들 뿐이었다. 몸이 펑퍼짐하니 뭘 입어도 예뻐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에겐 내 몸에 맞춰 정교하게 코디를 할 만큼의 지식도 없었다.

“문제는 옷이야. 예쁜 옷을 사면 해결될거야.”

나는 또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아는 곳이 있는데 거길 찾아가보자.”

“동대문시장에?”

“어, 거기 저번에 가봤는데 괜찮은 게 좀 보였었어.”

과외를 해서 번 돈 20만원이 내 주머니에 고이 접혀 있었다. 엄마는 동대문 시장에 가면 좋은 물건들이 많다고 알려주었다. 모녀는 씩씩하게 동대문에 도착했다.

“가만 있자, 어디 매장이었지??”

나는 심각한 길치였다. 항상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내 그런 성향은 모계 유전이었다. 엄마는 내 손을 잡고 동대문 시장 안의 그 빽빽한 상점들 사이에서 계속 헤매었다. 분명 여기 온 곳인데? 가만 여기서 왼쪽으로 갔나 오른쪽으로 갔나? B-24? 여기 아까 본 데 아냐?

“엄마…우리 지금 계속 헤매고 있는 것 같은데…”

“아니 잠깐만…요 근방 어딘거 같은데…”

밀집한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점차 피로해지기 시작했다. 육중한 체격임에도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나는 바로 진이 빠지곤 했다. 나의 에너지 레벨이 고갈되어 경고등이 반짝이기 시작했을 무렵, 엄마는 간신히 원하던 매장을 찾아냈다. 주변 매장과 딱히 다를 것 없어 보이는 옷 매장이었다.

”아이고 찾았다! 여기야 파인애플, 들어가자.“


”어서오세요, 딸내미 옷 사러 왔어요?“

”네, 저번에 왔었는데. 그 때 괜찮았어서 다시 왔어요. 바지 하나 살까 해서.“

”아유 그러셨구나. 이리 와보세요.“

동대문 아주머니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왠지 모르게 위축되었다. 어제 저녁 먹지 말고 올걸.

”사이즈가…있을지 모르겠네. 이 바지 어때요, 한 번 입어봐봐.”

아주머니는 구석에서 청바지 하나를 건넸다. 엉덩이에 꽃무늬 자수가 눈에 띄었다. 아주머니는 둥그런 커튼봉에 달려있는 큰 천을 내 주위에 둘렀다. 초소형 간의 탈의실이었다. 입어보라고 했다.

“어…안들어가요…꽉 껴요…”

아주머니가 받치고 있는 탈의실 안에서 내 다리는 꽃무늬 청바지에 들어가지 못했다. 갈 곳을 찾지 못한 채 내 다리가 헤매었다.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나는 다시 원래 입었던 면바지를 잽싸게 꿰어입었다.

“따님이 좀 통통하시네. 그럼 이 바지는 어때요?”

아주머니는 한 손으로 탈의실 천을 받친 채 다른 한 손으로 다른 바지를 건넸다. 비슷한 바지 같아보였다. 사이즈도 비슷해보이는데. 역시나 꽉 쪼였다.

“어휴 그럼…이건 맞을까 모르겠다.”

아주머니는 카키색 카고 바지 하나를 건넸다. 노동이 약간 힘에 부치지 시작했는지 말 속에 약간의 힘듦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후다닥 바지를 입었다. 다행히 이번엔 잘 맞았다. 나는 단추를 잠그고 지퍼를 올렸다.

“어우 괜찮네, 잘 어울려.”

“얼마에요?”

“이거 내가 칠만원에 떼오는 거에요, 근데 나도 벌어먹어야 하잖아. 팔만원만 줘요.”

“칠만 오천원엔 안되나?”

엄마와 아주머니가 흥정하는 동안 나는 구석에 놓인 거울을 발견했다. 카키색 카고 바지를 입은 나 자신은 방금 벙벙한 청바지를 입은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올리브온 채널에서 보면 옷을 어떻게 입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보이고 완전히 변신해 버리던데. 가십걸 세레나랑 블레어는 늘 완벽했는데. 나는 뭘 입으나 똑같아 보였다. 거울 속 내 바지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카키색 주머니와 벨트줄들이 너풀거렸다.

“어유 알겠어요, 칠만 오천원.”

“파인애플, 칠만 오천원이래.”

“아…여기요. 감사합니다.”

“입고 가실거지? 환불은 안 되요. 입고 온 건 여기 넣어드릴게.“


나는 벙벙한 표정으로 카고바지를 입고 매점 밖으로 나왔다. 손에는 방금 입고 온 청바지가 곱게 접혀 빔닐백에 담겨 있었다.

”다른 것도 살거니?“

”아, 아니. 엄마 그냥 밥 먹으러 가자.“

“그럴래? 뭐 먹을까?”

“맛있는 거 먹고 싶어.”

근처 눈에 띄인 식당에 들어갔다. 협소했지만 생기 넘치는 식당이었다. 육회비빔밥이 전문인 식당 같았다. 나는 주변 테이블을 슬쩍 훔쳐보았다. 사람들은 반짝이는 양푼에 담긴 육회와 채소, 밥을 비벼 한 술씩 뜨고 있었다. 육회 비빔밥, 맛있겠다. 쫄깃하고 고소한 육회를 고추장에 비벼 뜨거운 밥이랑 먹으면…

“난 된장찌개 먹어야겠다. 넌?“

”아…나는…“

‘육회비빔밥’이라고 말하려다 침을 꿀꺽 삼켰다. 벽에 걸려 있는 메뉴판 중에 ‘새싹비빔밥’을 발견했다. 이걸 먹으면, 살이 덜 찔까? 새싹이니까.

“나는… 새싹비빔밥.”

“그래, 여기 된장찌개랑 새싹비빔밥 하나요.”

연두빛 하얀빛 새싹들이 복닥복닥하게 양푼에 담겨나왔다. 테이블 위의 고추장을 한 술 퍼 양푼에 탁탁 털었다. 참기름도 한 바퀴 둘렀다. 연두빛 새싹들과 빨간 고추장, 하이얀 밥이 마구 비벼졌다. 한 술 떠 입에 넣었다. 채썬 양배추의 달큰한 맛이 입안에 가득했다.

“엄마, 나 살빼야겠더라.”

“그런 생각을 다 했어?”

“응, 옷 사는 것보다 그게 먼저인거 같아.”

“그래. 근데 또 통통한 것도 나름의 매력이 있어. 괜찮아.”

“응, 알아…”

알아, 통통한 것도 매력이 있다는 거. 그래도 한 번 빼 볼래. 그러고 싶어. 수없이 많은 여자들이 수없이 다짐하는 그 결심. 살 빼야겠다. 살을 빼면, 그럼 나도 어쩌면…

입안에는 쌉싸름하고도 달큰한 새싹의 향이 가득했다.




오늘의 기부: 서울시 동대문구재가노인복지기관

조리시설이 협소하거나 사정이 여의치 않은 어르신들에게 맛있는 밥 한끼 드리는 활동에 후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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