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싸이코패스인가봐, 아니 나르시스트인가?
“감귤!! 나 어떡해?”
“파인애플? 무슨 일이야?”
“나…나…”
“?”
“사이코패스인가봐아아아아…”
“……”
12년간의 학교에서의 영어수업보다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 건 미드였다. ‘프렌즈’를 보며 단어를 익히고, ‘가십걸’을 보며 뉴욕에 대한 로망을 키웠다. 길모어걸스, 빅 뱅 이론…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매료시켰던 건 ‘닥터 하우스’였다.
“하우스는 옳았어, 언제나 그렇듯이.”
절대적으로 유능한 까칠한 의사. 부족한 매너와 까칠한 성격조차 매력으로 보여지는 마법. 나와는 다른 종류의 사람인 것만 같은 압도적 지적 능력. 항상 수수께끼에 대한 답을 찾아내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건 유니콘 같은 존재였다. 그는 드라마 안에서만 실재하는 사람이었지만, 어느 순간 나는 그와 같이 지적으로 우월해지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혔다.
“나 어쩌면 싸이코패스인지도 몰라. 동정심이나 공감능력이 없는 거 같아.”
“…그런데 너 얼마 전에 나랑 ‘노트북’ 보면서 울었잖아.”
“……”
감귤은 화내지 않고 차분히 내 말의 모순을 집어주곤 했다. 우리는 헤어진 다음에도 평화롭게 지냈다. 주로 내가 소소한 별 일 아닌 일로 연락하면 감귤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주고는 하는 식이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연인이자 가장 친한 친구로 지냈다. 사정상 나는 중국으로, 감귤은 군대로 떠나야 해 헤어지기는 하지만 이미 익숙해진 옆자리를 한 순간에 잘라내는 건 무리였다.
“그럼…그럼 나는 싸이코 패스 아닌가...”
“걱정할 거 없어. 진짜 싸패들은 자기가 싸패인지 아닌지 생각도 안할거야.”
“그런가…”
시덥잖은 얘기를 다 들어주고 나면 감귤은 다시 연락하자며 전화를 끊었다. 마음이 허전했다. 나는 내 마음을 가라앉히는 방법으로 다시 미드의 세계로 들어가고는 했다. 나는 중도의 멀티미디어 실로 향했다. 프렌즈 DVD를 빌려서 잔뜩 봐야지.
”감귤 감귤!!“
”무슨일이야? 괜찮아?“
”나…나… 나르시스트인가봐……“
”……“
우리는 마주 앉아 육개장을 먹고 있었다. 육개장은 내 최애 음식이었다. 푹 끓인 양지국물에 동동 뜬 뜨거운 고추기름 속에서 고사리를 건져 먹고 나면 기분이 정말 좋았다. 감귤은 늘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자고 했다. 그래서 찾아온 홍대 앞 육개장집.
”항상 나는 내 마음대로 하잖아. 메뉴 정하는 것도 그렇고, 생각해보니 너를 조종하려고 한 거 같아…“
”……“
”육개장도 내가 좋아해서 온 거구, 내 마음대로 안 되면 화나기도 해. 미드에서 봤는데, 이런 게 나르시스트의 특징이래…”
말없이 감귤은 수저질을 계속했다. 내 말은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너를 군대에 보내려니 걱정되어 죽겠어. 네이버 고무신 까페에 나 가입 했는데, 거기서 내가 뭘 봤거든? 내가 인터넷에 편지를 쓰면 프린트해서 전달해 줄 수 있다고 하던데 맞아??”
“음, 그런 것 같아.”
“내가 나르시스트가 아니란 걸 증명할거야. 매일 매일 편지 쓸게. 중국에도 편지지 가져갈거야.”
“……육개장 식어. 얼른 먹어.”
우리는 어떤 관계이고, 어떻게 되는 걸까. 나는 싸이코패스 또는 나르시스트가 맞나. 감귤은 아무 말 없이 내 말을 들으며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감귤을 군대에 보내는 나의 지금 심정은 어떤가. 군대에 가면 얼마나 힘들까? 내가 상상할 수조차 없는 많은 고생을 할 텐데. 이런 생각을 하는 나를 보니, 역시 싸이코패스는 아닌 건가? 하지만 나는 분명 감귤에게 너무 많이 의존하고, 이기적으로 굴고 있었다. 때로는 연애를 실험하듯이 하기도 했다.
입가에 묻은 고추기름을 닦으며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틀 뒤면 나는 중국으로 간다.
그리고 이틀 뒤면 감귤은 논산으로 간다.
육개장을 먹은 오늘이 마지막이다.
“조심해서 중국 가. 해외 나가는 거 처음인데 얼마나 떨리겠어.”
감귤이 다정하게 말하며 내 코트를 여며 주었다. 순간 눈물이 났다.
“으앙 ㅜㅠㅠㅠ 으허허엉…흑흑……ㅠㅜㅠㅠㅠ”
나는 감귤을 끌어안고 흐느꼈다. 눈물 콧물을 다 흘리며 얼굴을 그의 가슴에 부벼댔다. 홍대 앞 번화한 거리에서 사람들은 끌어안고 우는 연인을 흘깃흘깃 보며 지나갔다. 한 명은 중국으로 한 명은 군대로. 흔하디 흔한 젊은이들의 이야기였다.
이별이란 건 생각보다 쉽게 할 수 없었다.
가슴이 텅 비어버린 것 같은 슬픔 속에 그제서야 느꼈다.
나는 싸이코패스도, 나르시스트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