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근

by 레일라J



겨우내 추위를 못 이겨낸 몇 개의 식물들을 현관으로 들어오는 입구 근처에 방치를 해두었다. 그 옆에는 모종삽이며 영양분이라곤 남아있지 않은 퍼석한 흙 한통과 음식물 쓰기를 모아두는 통이 있다.


아이를 등교시킬 준비를 하며 현관에서 새벽동안 도착한 식재료를 가지고 들어오고, 아침을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를 버리려다,

흙무더기를 담아두었던 기다란 흰 화분 위에 엎어져있는 스테인리스대야 틈사이로 초록색의 두터운 싹이 보이는 것을 발견하고 대야를 치워보니 튤립 싹이었다.


지난해 화병에 담긴 튤립이 아니라 화분에서 자라는 튤립을 보고 싶어서 구근을 사서 애지중지 키웠더랬다. 꽃이 피고, 또 시들고 나니 마치 입에서 오물거리고 뱉어낸 자두 씨 같은 모양의 구근이 남았다. 동생은 그 구근을 흙에 넣어두면 내년봄 다시 튤립을 만날 수 있다고 했지만 귓등으로 흘려버리고 눈에 보이는 쓰임새가 없는 화분에 말라비틀어져 볼품없는 구근을 던져 놓았었다.



수분하나 없고 돌봐주지 않았던 그 차가운 겨울을 지내고 생명이 없어졌을 거라 생각했던 작디작은 구근에서 새싹이 올라오고, 다시금 새 봄을 맞이하고 있다. 자연의 섭리와 생명의 강인함을 느꼈다.


튤립 새싹들에게 물을 담뿍 흘려주며, 작은 식물조차 겨울을 이겨내고 가진 상황을 감내하며 일어나는데 그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더 많은 것을 가졌으면서도 감사하지 못하는 나를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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