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감성을 건드린 카피 한 줄

by 레일라노트

일상에서 스쳐 지나가는 광고는 많다.
지하철 안, 버스 정류장, 유튜브 영상 앞, 인스타 피드까지.
대부분은 그냥 배경처럼 지나치며, 딱히 집중하지도 기억에 남지도 않는다.


그런데 가끔 문장 하나가 딱 걸릴 때가 있다.
읽는 순간 ‘어?’ 하고 고개가 멈춘다.
그 짧은 문장이 이상하게 마음 한쪽을 툭 건드린다.


광고지만 광고 같지 않은 순간.
그럴 때면 나는 다시 화면을 되감거나 한 박자 더 머무른다.
그 문장이 뭐였더라, 하면서.



#1. 누구나 나만의 피로가 있다


평범한 하루였다.

야근하고 지하철 타고 집에 가는 길.

몸은 무겁고 정신은 멍하고, 아무 생각 없이 유튜브를 틀었다.


그런데 광고 영상에서 문장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누구나 나만의 피로가 있다.”


뭐지? 싶어서 그제야 광고 상품을 확인했더니 박카스였다.


그 문장이 괜히 마음에 남았다.
그때의 나는 딱히 힘들다고 말할 틈도 없이 피로가 쌓이고 있었다.
겉으론 멀쩡하지만, 속으로는 한없이 고단한 상태.
누구한테 설명하기도 애매한, 그냥 내 안의 피로가 쌓인 상태.


그날의 나는 지쳐있었고, 박카스는 그런 내 상태를 조용히 짚었다.


그래서 편의점에 들러 박카스맛 젤리를 샀다.
박카스 음료는 솔직히 좋아하지 않지만, 젤리는 꽤 맛있었다.

달고 쫀득하고, 한 입 먹는 순간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느낌.

대단한 건 아니지만, 그날의 나는 카피 한 줄과 젤리 한 줌에 위로를 받았다.



#2. 어느 날 문득, 고길동의 삶이 눈에 들어왔다


최정훈과 마주 앉은 고길동.

술잔을 기울이다 정훈이 묻는다.
“원래 이렇게 맛있었나?”
그리고 고길동이 웃으며 답한다.
“그치? 너도 이제 어른이구나.”


그 한마디가 나에게 꽂혔다.
아, 나 요즘 고길동이 좀 이해돼. 그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걸.


어릴 적 나는 둘리의 편이었다.
둘리와 친구들은 자유롭고 귀여웠고,

둘리에게 짜증 내는 고길동은 괴팍한 아저씨일 뿐이었다.


근데 이젠 보인다.
고길동은 출근하고, 야근하고, 생활비를 걱정하고,
제 몫도 벅찬데 떠안아야 할 책임들이 늘어난 사람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주말에도 보고서를 쓰고,
밥 먹다 말고 상사한테 전화받는 일상.
요즘 내 일상이 딱 그랬다.


이 광고는 그걸 정확히 짚었다.
백세주는 그 장면에 고길동을 불러냈고,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내 감정을 끄집어냈다.


그래서 하필, 왜 백세주였을까 생각해 보면

소주였으면 너무 가볍고, 위스키였으면 또 괜히 멋 부린 느낌이었을 거다.

백세주는 그 사이 어딘가에 있었다.

묵직하진 않지만, 가볍지도 않은.



#3. 틀려라, 트일 것이다

영어회화 광고는 많다.
대부분은 “한 달 만에 원어민처럼” 같은 뻔한 말로 귀를 간질인다.


그런데 이건 달랐다.

“틀려라, 트일 것이다.”

이 짧은 문장은 영어회화 학원을 찾아보던 나의 정곡을 찔렀다.


사실 대개의 사람들은 영어를 잘 못해서가 아니라, 틀릴까 봐 말하지 않는다.
특히 말하기는 머리보다 입으로 해야 되는 영역인데도, 자꾸 머리로만 연습한다.


그런데 이 문장은 ‘틀려도 돼’가 아니라, ‘틀려야 트인다’고 말한다.
틀림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는 듯이,
시작은 어설퍼도 그게 곧 열린다는 믿음처럼 들린다.


생각해 보면 해외여행 중엔 말문이 트인다.

발음도 엉망이고 문장도 어설픈데,
’어쨌든 전달은 해야 하니까‘라는 절박함이 먼저다.
그 순간 틀림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연습이 된다.


이 카피는 그걸 정확히 짚었다.
단어는 단순한데 구조는 강력하다.
틀림 → 행동 → 성장


결국 영어는 용기를 연습하는 일이라는 걸,
그리고 그 용기를 꺼내게 하는 브랜드라는 걸

이 짧은 문장 하나에 다 담은 것이다.



결국 광고는 말 걸기의 기술인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물건을 팔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 순간의 나한테 딱 맞는 한 줄을 던지는 것.

기억에 남는 건 늘 그런 문장이다.


의도하지 않아도 다시 떠오르고,
어느새 그 브랜드를 한 번 더 보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그 한 줄 덕분에,
나는 젤리를 샀고, 술잔을 들었고, 영어 한마디를 더 내뱉었다.

광고지만 광고 같지 않았던 순간.

그래서 더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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